배움의 기쁨 - 길바닥을 떠나 철학의 숲에 도착하기까지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다산북스 / 2022년 2월
평점 :
절판


배움의 기쁨

"이 책은 타락한 힙합 문화에 취한 또래 집단을 향한 절연장이자 주변의 어리석음에서 나를 지킨 아버지에게 바치는 감사의 편지이자, 상상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독창적이고 강력하고 매력적인 문화를 쌓아 올린 이전 세대 흑인들을 향한 헌사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감동으로 다가 온 『배움의 기쁨』은 원제loging my cool 답게 솔직한 작가의 멋진 기록을 3부로 나누어 적어놓았다.

1부 이중생활
백인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혼혈이지만 세상의 기준으로는 흑인임을 일찍이 알았다. 싫든 좋든 -흑인답게 보이고 또 흑인답게 행동(p25)하며 -흑인남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p21)했던 작가는 흑인 아이들이 그러하듯 폭력배나 깡패를 흉내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p55)-모종의 흑인다움을 표출하는 법을 배우면서 단순한 보호막을 넘어 진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체감한다.(p40) 그렇게 학교에서는 힙합이 지배하는 거친 문화 속에서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고 집에서는 친구 찰스와 함께 아버지의 훈육에 따라 공부에 파묻히는 이중생활을 해 나간다.

2부 결별
아버지의 훈육 덕분에 조지타운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알려고 하지 않고 동경하던 래퍼와 깡패처럼 오만과 허세라는 넝마로 자신을 무지를 가리고,개성있는 인격체로서 자신을 계발하는 것보다 힙합 문화를 유일한 진리로 떠받들고, 젊지 않고 검지 않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가차 없이 거부하는(p144-145)생활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고향의 여자 친구 스테이시를 데리고 간 파티에서 그녀가 대학친구들에게 장벽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얼굴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과 그녀의-두 세상이 사각형 나사와 삼각형 구멍처럼 서로 부합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p168)시작한다. 자신이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알아가는 그는 팬우드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외딴섬처럼 떠 있던 아버지의 서재가 '진짜' 세계로 향하는 길목임을 알게 되고 -제대로 보기만 하면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음을 깨달(p195)아 간다.

3부 자유롭게
조지타운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을 뜯어 고칠 작정을 하고 세심하고 신중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말쑥한 옷차림으로 꼬박꼬박 수업을 들으며 우등생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새로운 여자친구인 베트리스를 사귀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를 존중하는 법을, 여자를 철전지원수가 아닌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법을 배워가면서(p211) 세상을 보는 기준점이 바뀐다.

그렇게 자신을 찾으며 종일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버지의 세대가 수치심을 이겨내며 이루어 놓은 토대위에 만들어진 즐거움이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발생한 911사건으로 답답함과 무력감이 합쳐진 무식함을 느낀 작가는 흡사 탐정처럼 지성의 땅에서 아버지가 밟았을 경로를 좇기 시작했다.(p239) 그 길에서 냉혹한 시기를 살았던 아버지에게 온기처럼 작은 위안이나마 안겨줬을 문장을 만나니 니체가 친구처럼 고마웠다(p239)말하고, 자신이 알아가는 철학의 세상에서 실존이 본질에 선행함으로 스스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함을 배우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어린 시절 선택한 길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한 명의 나'로서 나답게 살아가야 할 존재가 '나'임을 알아간다

후기
집단의 악영향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단절시키기 위해 미국을 떠나 도착한 프랑스에서 타인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자라온 나라의 문화 때문에 지독한 제약을 받고 자라왔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들에 스스로가 속아 왔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자기의 무지를 공동 설계한 공범임을 깨닫는다.

"아들아, 너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 세상은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야. 그러니까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겠지. 너는 이런 변화가 어떻게 느껴지냐?"(p298)

"책만 있으면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괜찮아. 나는 너와 너희 어머니와 네 형을 빼면 여기 이 책들이 유일한 친구다. 아들아, 책과 대화하면 천재들과 대화할 수 있어."(p195)

흑인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막다른 벽을 마주할 때마다 답은 항상 아버지의 서재에 있었던 작가의 삶도, 아들에게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아닌 더 나은 삶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한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도 소회를 말하기가 어렵다. 감히 흑인의 삶을 이 책 한권으로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만 오천 권의 책을 구하려고 작가의 아버지가 무슨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지독한 환경속에서도 죽을 각오로 책과 분투하며 공부를 해왔던 그 시간들로 아들의 시간이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그 고생을 자연스럽게 겪으며, 세상의 부조리함을 받아 들여야만 했던 아버지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나 역시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금의 내가 있음에 부모님을 자랑스러워 하는 세대임으로.

길바닥을 떠나 경제인의 세계로 가려던 그를 철학의 숲에 도착하도록 그래서 세계적인 비평가로 이끌어 준 아버지와 아버지의 책장이 궁금한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다산책방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열심히 읽고 작성한 주관적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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