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나 - 나의 재능을 성공으로 만드는 13가지 습관
존 맥스웰 지음, 한근태 옮김 / 다산라이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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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우주관의 핵심은 삼재라 하여 흔히 천, 지, 인으로 요약된다. 하늘과 땅이 만나 만물이 이뤄지며, 그 만물의 핵심에 사람이 있다. 따라서 사람은 만물의 도를 아우르는 존재이다. 그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에 서서 우주를 관통하여 이가 바로 왕(三+ㅣ=王)이다. 굳이 왕이라는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을 흔히 소우주라 하는 소이연(所以然)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자칫 ‘나’라는 존재에 대한 오만함과 방자함을 가지기 쉽다. 물론 사람은 우주를 아우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아우를 우주가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있는 것이다. 우주만물과 나의 부단한 관계는 그렇기에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손자가 말한 ‘지피’와 ‘지기’의 이념에는 이렇게 거대한 이상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고의 ‘나’가 되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멕스웰이라는 사람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이채롭다. 마치 동양사상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한 사람 같다. 그렇다. 사람마다 재능이라는 것은 다 가지고 있다. 나처럼 남들보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좀 더 잘 아는 이가 있는 것처럼, 빌 게이츠가 세상 누구보다 컴퓨터에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 재능이라는 것도 결국은 절대적이 될 수만은 없다. 그 속에 지닌 상대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서는 너무도 많이 보인다. 그것은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의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치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재능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한다면 그렇게 수많은 정치인이 낙마할 필요도, 재산공개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재능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겉으로 성공한 것 보여도 나중에 쓸쓸히 퇴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그런 오류에는 우리 자신도 흔히 빠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성공으로 향하는 길일까?

오륜의 맨 마지막에 있는 붕우를 보자. 달리 표현하면 피아를 말함이다. 그들 사이에 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바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붕우유신이 오륜의 맨 마지막에 있는 것은 매우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지피와 지기의 출발이자 핵심은 바로 믿음이다. 이 책이 믿음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믿음은 모든 것의 기저이다. 당연히 여기서 이끌어져 나온다. 믿음을 ‘재능을 이끌어내는 힘’이라 표현한 것은 그래서 탁견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 모든 것이 이뤄질 수는 없다. 믿음은 때로는 배신이라는 것을 동반한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나’의 마음도 ‘나’를 배신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내가 만물을 아우른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상황은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이 ‘나’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기에 그 믿음을 기어코 실현해줄 수 있는 나름의 요소들이 필요한 것이다. 믿음 뒤에 제시되고 있는 12개의 조건들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좋을 것이다.

믿음의 중요함을 알았다. 그렇다면 나와 너의 믿음의 명확하고 좋은 관계가 이뤄져야 하며, 그것이 호흡을 맞추게 되면 바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나’로 가는 길이다. 이 책의 종반이 관계와 책임감, 팀워크로 이뤄져 있음은 그래서 절묘하다.

다소 아쉽다면 최고의 ‘나’라는 개념을 진정한 최고가 무엇인지에 관한 담론으로 이끌지 못한 것이다. 덕목의 소개나 배치, 수많은 일화나 예시는 매우 좋았다 해도 그것을 묶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그 점은 옮긴 이의 말이 어느 정도 보완해주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왕이라는 존재에게는 그 관통의 요소로 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왕도정치의 핵심을 덕치(德治)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재능보다 덕이 우선임을 강조한 옮긴이의 말은 그래서 공감이 간다. 우리가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이 단순히 인간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진정한 이상의 실현의 핵심에 덕이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쓰면서 문득 다음의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나 이를 활용하였습니다.

신명호,『조선의 왕』, 가람기획,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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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4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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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에서 세종대왕과 같은 군주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행복이라 자신한다. 강한 군주라서가 아니다. 정치를 잘해서만도 아니다. 많은 치적을 남겨서도 아니다. 진정 백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놓은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동아시아의 전근대 사회에서 요순은 성인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 시대에서 이상을 이룬 군주들이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달랐다. 그는 현실 속에서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그런 모습을 이뤄냈다. 600년 전 이 땅에는 여자 종과 그의 남편이 출산휴가를 가고, 죄수가 머무는 옥사를 관리하면서 죄수가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제도화시키는, 파천황(破天荒)에 가까운 일이 일어난다. 바로 세종대왕과 그를 받든 충직한 신하들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만세불변의 법전인『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고도의 문명을 이루고 있다는 오늘날에도 남편들의 출산휴가를 찾아보기 힘들고 죄수가 인권을 보장받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아쉽다면 그것이 일제에 의해 단절되고 왜곡되었으며, 해방 후 우리들에 의해 그 귀중한 유산이 남김없이 버려졌다는 사실이다.

왜 지금 세종대왕인가? 사회는 민주화되었고, 먹을 것, 입을 것 부족함이 없는 지금이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속은 곪아 썩어들어가고 있다. 당장의 우리 정치를 보자. 한 나라의 저력인 역사와 문화를 갉아먹는 좀 같은 존재들인 탐관오리들이 날고 기고 있다. 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아래인 우리도 정신이 썩어 있긴 마찬가지다. 그런 좀 같은 존재들을 뽑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 년이 지나 그들이 사건을 터뜨리면 그제서야 후회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나의 탓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린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우리의 모습이다.

나 자신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를 돌아보면 내 얼굴에 침 뱉는 식으로 끝모를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태평의 시대, 성군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세종대왕의 치세나 정조대왕의 치세를 대하면 더욱 그러하다. 어진 지도자 밑에 어진 관리가 있게 마련이며 또한 백성들도 어질게 된다. 마찬가지로, 백성이 어질어야 어진 관리가 있으며 어진 지도자가 있는 것이다. 정치가 민주화되고 먹고 살기가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지금,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문화와 도덕이다. 우리가 세종대왕의 시대를 다시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다.

박영규씨는 ‘역사 대중화의 기수’이다. 이 점은 나도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그의 책에 대해 많은 혹평을 했지만, 세종대왕에 쓴 그의 책만은 예외로 둔 바가 있다.『세종대왕과 그의 인재들』이 바로 그것인데, 이 책을 증보한 것이 바로『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이다.

내가 이 책을 특별히 눈여겨봤던 것은 세종대왕과 그를 따른 수많은 충직한 신하들을 균형있게 다뤘다는 사실과 그들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사람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은 역사를 만들어간다. 한 사람만의 힘으로 역사가 바뀐다면 그 역사는 지극히 나약한 것이다. 세종대왕에 대해 다룬 수많은 책들이 범했던 오류가 바로 이것이다. 한편 최근 역사서들 가운데는 세종대왕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보인 바 있는데, 그 또한 심한 오류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 주변 인물들을 꿰는 역할을 하는 세종대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보배로 엮어지지 못한 서 말의 구슬 같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세종실록』을 요략한 부분과 세종대왕, 친인척, 인재들, 그의 업적을 전반적으로 다루면서 균형을 지닌 서술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가장 중요한 사료인『세종실록』을 기본으로 하여 엄정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요즘 세종 시대를 다루면서 야사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면이 많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한글의 기원에 관한 여러 설을 이야기하면서이다. 한글의 글자가 고전(옛 글자)를 모방했다는 점에서『환단고기』에 실린 가림토 문자를 언급한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환단고기』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거짓 서적이다. 따라서 가림토 문자를 모방했다는 것도 황당하며 믿을 수 없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한글의 창제 동기라든지 원리를 밝힌『훈민정음』이 엄연히 전해오며, 그 글자의 만들어진 원리를 살펴볼 때 가림토 문자와의 연관성은 전혀 없음이다.

현재『환단고기』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여기에 실린 가림토 문자라는 것이 일본의 신사에 새겨져 있는, 또는『신자일문전』과 같은 조작된 서적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거짓 서적에 실린 문자를 주장하는 것도 터무니없거니와 자칫하면 일본의 문자를 모방했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일본의 황당한 논리에 설득력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으로도 연결된다.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이런 황당하고 무서운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소개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조그만 지적을 하나 더 한다면『세종실록』을 번역한 곳에 관한 것이다. 일러두기에 보면 민족문화추진위원회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윤문 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인다.『세종실록』은『세종장헌대왕실록』이라는 이름으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의해 국역되었으며, 실록 가운데 최초로 국역되기 시작한 것이다.『조선왕조실록』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민족문화추진회 두 기관에서 나누어서 번역했는데,『태조실록』부터『성종실록』,『경종실록』부터『철종실록』까지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연산군일기』부터『현종실록』까지는 민족문화추진회가 국역했다. 단,『정조실록』은 두 기관이 공동으로 국역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것이 이 책이다. 세종대왕과 그의 치적, 주변 인물들을 그 시대의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적절하게 서술하면서 거시와 미시의 균형을 가진, 밀도 있는 서술은 세종의 시대에 관한 적지 않은 정보와 감각을 얻기에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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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E1014 2008-10-2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쯤 읽어봐야겠습니다. 하지만 필자인 박영규는 이 "가림토문자"와 "환단고기"를 정사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그 설에 대해서 한번 언급한 것일 뿐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꿈꾸는 다락방 -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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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지방대학에 합격하여 다니려고 한 시점, 2월 어느 때인가였다. 나는 새로운 다짐과 목표를 세웠고 그에 관한 꿈을 꾼 기억이 난다. “나는 외모나 여러 가지로 보아 사랑을 할 자격이나 조건이 되지 않는다. 사랑은 먼 훗날 꿈꾼다. 대신 지금 나에게 꿈이 있다. 우리 역사를 평생토록 공부하여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리고 공부를 재미있게, 잘 하고 싶다.” 이 꿈은 생각보다 매우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꾸었으며, 그것을 아무 종이에나 적고 끊임없이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심지어 나는 이런 고백을 가족들에게 서슴없이 했었다. 가족들은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노라 약속하셨다.

그런 이후 나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는 강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입학한 지 일주일, 중앙도서관 속 수많은 책들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내가 말했던 저 외침은 거짓말처럼 조금씩 실현되어 나갔다. 나는 비록 지방대학에 다니고 있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연애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성적은 늘 잘 나왔으며 등록금 전액 면제를 세 번 경험하는 등 매 학기 장학금을 받았다. 2학년 때는 문화유산이 나의 관심대상에 들어와 꿈을 가졌고, 답사지에 가서 문화유산을 멋들어지게 해설할 수 있게 되었다. 야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선생님의 꿈을 키워나갔다. 몸은 약했지만 1인 다역을 지칠줄 모르고 실행했던 나. 한편으로는 내 자랑같은, 다른 이들에게 호감을 안겨주지 못하는 이런 나의 경험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나는 거의 청교도에 가까운 생활을 했었다.

지금의 나. 나는 여전히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발전의 속도는 이전만 못하다. 그 사이에 직장도 다녔으며 돈도 벌었음에도 그러하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깨달음이었을까? 아니었다. 나는 이전보다 꿈을 생생하게 그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치열한 그림 작업에서 잠시 손을 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거의 읽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주는 대답이 적지 않은 탓이다. 그러니 이 책 역시 주는 대답은 그저 그러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강한 반작용 때문일까. 아니면 요 몇 주 사이의 쓰라린 경험 때문일까. 꿈을 꾼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지극히 평범했었다. 그리고 원칙이라는 것에 대단히 집착했다. 이 길이 아니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내 꿈을 참으로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말처럼 조금씩 실현되어 간다.

물론 지금은 그 때보다는 실현의 속도가 더딘 편이다. 원칙과 변칙의 조화가 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의 삶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지금껏 그 아름다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생생한 꿈을 그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삶은 좋지만, 그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제 더 나은 삶을 위한 진정한 도약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이들은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꿈을 그려야 한다. 그것이 추상적이든 구체적이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물론 거기에는 자신의 생각과 철학, 강한 목표와 의지를 담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와 그 속에서 제시되는 지침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이 책이 여느 것과 다르게 느껴진 것은 성공을 보는 독특한 시각과 아울려 깨달음으로 그치지 말 것을 유달리 강조하는 별난(?) 모습일 것이다. 이는 앞에 소개했던 나의 스무 살 때의 경험을 생각해볼 때 큰 공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불교에는 이른바 ‘돈점 논쟁’이라는 큰 사상 논쟁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깨달음 이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 논쟁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깨달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행으로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나의 스무 살. 단지 꿈을 머릿속에만 두지 않았다. 그것을 종이에 적었고, 통하는 대상이라면 누구에게든 이야기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고 있지만, 그 때만큼 제대로 하지는 않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나의 타성에 강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안에 나오는 중요한 지침과 나의 꿈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보았다. 물론 정리하고 상상하며 이를 위한 실천 작업은 나의 지속적인 과제일 것이다.

꿈은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그려야 한다. 그리고 활짝 펼쳐야 한다. 그러면 그 꿈은 그대에게 아름다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크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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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2008-04-30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동적인 내용이군요...
그래도 세상엔 "장미의 이름"님 같이 자기를 성찰하고 책을 통해 꿈을 키워가는 분들이 계시니, 아직도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살다보면 주변에 흔히 보이는 그저 꿈없이 그 불안전하기 짝이 없는 현실과 상황에 무책임하게 맡겨버리며 자기 감정대로 살아가는 모습들...
그것도 부족해 꿈을 키워 나가려는 사람들을 무침히 깍아 내리거나 아예 무참히 그 꿈의 싹을 짖밟아 버리는 경우가 많아 힘 빠질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주변에 싸여 있다보면.. 저도 가끔은 힘이 빠져 정말 희망이 없는듯 멍해질때가 있답니다...
그러다 순간 아, 이건 아니지 하며 스스로를 다시 깨우는 작업의 연속일 때가 많아요...헤헤... 저도 잠시 꿈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라...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인 원대한 꿈은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그 꿈을 시간으로 환산해 놓은 목표의 단계들을 만들지 않고 있다는거죠... 게으름과 나태함으로...쩝...
ㅎㅎ.. 암튼.. 님의 글을 통해 저도 다시한번 제 꿈을 생생히 그리며 다잡아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되네요...
이 책도 사놓았으니 당장 읽으며 말이죠...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 힘을 얻어가야 겠어요....
요즘은 정말 이리 좋은 환경과 사람들을 찾아 다녀야하는 것 같아요....
소중한 보석을 찾은 느낌입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활기차고 뜻있게 보내세요...

장미의 이름 2008-04-3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추상적인 상태에서 그대로 머무르게 하는 경우가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저 또한 그런 오류를 수도 없이 범했었으니까요. 저의 20대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30대라 해서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었는데, 초심이 많이 흔들렸음을 자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단히 노력해야 할 나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구요. 저는 FREEDOM님께서도 꿈을 향해 항상 부단히 전진하시는 모습을 둘러보는 속에서 느끼게 됩니다. 꿈, 그리고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좋은 이웃을 만난 것이 저도 무척 반갑고 좋습니다. 행복하고 뜻 있는 하루 보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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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상 도서 : 이덕일,『사도세자의 고백』, 휴머니스트, 2007년. (새로운 판)


역사는 사람을,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역사는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사람과 그 사람이 만드는 역사. 역사는 사람이 있어야 빛을 발하며, 그 빛 속에서 사람은 그 빛의 따스함을 맛본다. 우리가 역사를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둘을 균형과 조화라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아니 이 둘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비단 역사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새가 한 날개로만 날 수 없는 것은 틀림없지만, 새는 날개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몸통과 머리, 다리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정확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흔히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서 의외로 상식에서 벗어나 바라볼 때가 적지 않다. 이는 우리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매우 큰 장애가 된다. 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그 역사의 물줄기가 쉽게 바뀐다면 그것은 우리 역사의 저력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그렇게 허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식민주의사관에 사로잡혀, 그리고 해방 이후 위정자들에 의해 알게 모르게 이런 행동을 해왔다.

우리는 흔히 조선이라는 나라를 사대주의와 당쟁 때문에 망하고 일제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조선이 중국에 끊임없이 굽신거렸다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오리엔탈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당쟁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었으며, 다른 나라나 왕조의 사례를 볼 때 오히려 조선은 그 강도가 약했다. 오히려 의견이 다른데 토론하고 다투는 것이 없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되지 않을까.

영조와 정조가 실시한 탕평 정책이라는 것이 붕당 정치의 폐단을 고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탕평 정책이라는 것이 여러 당파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여 국정 운영의 균형을 꾀하고 왕권과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정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붕당 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탕평 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붕당 정치를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붕당 정치의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다만 영조와 정조는 그 과정에서 왕을 요순과 같은 성인의 위치로 끌어올려 왕권을 강화, 안정시키고 국정 운영의 중심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외척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그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왕이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면 몰라도, 왕이 허약하면 외척에 의한 권력 장악이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조의 죽은지 5년 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거둔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승하하고 노론 벽파가 김조순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에 의해 정계에서 쫓겨난 이후에 나타났다. 정조는 순조의 사위였던 김조순에게 순조를 부탁하면서 그 자신 스스로 세도정치의 단초를 열어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정조의 죽음이라든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시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아울러 기록의 철저한 분석과 엄격한 사료 비판은 두말할 나위 없는 기본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이덕일씨를 넘어서서 냉정하게 우리의 조선 후기를 바라봐야 한다.
 

역사적 진실을 도외시한 꿈같은 이야기

이덕일씨는 최근 대중 역사서 바람의 중심에 있다. 특히 드라마「이산」의 방영으로 그의 저술이 또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출판된지 어느덧 10년 된『사도세자의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 이 시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데, 또한 우리 역사를 대중화시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점에서 유의할 것이 있다. 그가 한 역할은 분명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일지 모르나 그것은 역할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견해라는 것이 타당하고 의미있는 것이 있는 반면, 역사적 진실을 완전히 도외시한 꿈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사도세자 및 정조의 죽음을 연구하면서 여러 충격적인 해석을 내렸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혜경궁 홍씨에 대한 견해, 정조 독살설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 속에서의 혜경궁 홍씨, 영조, 홍봉한 등 주변 인물들 및 그 시대의 정치, 역사적 상황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사료를 엄정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점은 물론이고 역사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구수한 입담까지 갖춰 사도세자의 죽음을 치밀하게 추적해 들어갔으며, 그 결과 이 책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강한 흡입력은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였고 나 또한 그 박진감 넘치는 문체에 밤새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다시 든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에서 지극히 이중적인(다중적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드라마「이산」의 경우 극적 재미에 대한 칭찬을 던지는 한편으로 역사 왜곡이라는 시각에서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드라마라고 혹평했었다. 물론 그 이후「이산」은 보지 않지만. 그런데 그런 이중적인 나를 이덕일씨의 책에서도 똑같이 찾을 수 있었다. 그 책의 박진감과 흥미, 명쾌한 논리에 감탄하면서도 “이렇게 역사적 진실을 마구 왜곡하고 상상으로 가득찬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과 분노 말이다. 나는 그 때문에 2년 전 서평을 쓰면서 혹평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다시 든 이 순간은 오히려 그런 답답함과 분노가 증폭되었다. 공부가 조금씩 늘면서 그 오류가 더 크게, 더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기본도 모르는 사료 읽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게 사료를 엄정하고 날카롭게 바라보는 사람이 사료 읽기의 ‘가, 나, 다’, ‘A, B, C’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혜경궁 홍씨가 쓴『한중록』과『영조실록』의 다른 점에 꽤 충격을 받았고,『한중록』을 주로 거짓의 기록으로,『영조실록』을 주로 진실의 기록으로 바라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덕일씨에 대한 비판을 날릴 수밖에 없다. 이런 양면적인 시각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영조실록』과『한중록』은 모두 큰 장점과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영조실록』은 관찬이라는 장점과 함께 2차 사료이며, 편찬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한계가 있다.『한중록』은 생생한 증언이지만 개인의 기록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 점이 이 책에서는 충분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 두 자료에 의존해서는 곤란하다.『승정원일기』,『일성록』,『의궤』,『비변사등록』,『왕세자일기』및 이들이 남긴 어필, 어제 등 모든 자료를 충실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는 이런 자료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역사는 이미 이런 연구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덕일씨의 견해는 오히려 지금의 역사 연구 흐름에서 퇴보했다고 보일 정도이다.  


무수한 의문, 그러나 명쾌함이 없는 풀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노회한 정객이라는 혜경궁 홍씨, 그의 아버지인 홍봉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영조가 처했던 당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사도세자의 죽음에만 초점을 맞춰 바라본다는 것이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죄인의 아내’가 되었다. 당연히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었다. 영조는 당시 나이가 만 70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사도세자를 대신할 만한 왕세자는 없었다. 나경언의 고변사건에서 모종의 결심을 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나경언이 동궁을 모함하고 해괴한 흉언을 일삼았다고 신하들이 주청하여 영조가 처형해놓고 그것을 빌미삼아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정조는 (이덕일씨의 견해대로라면 정조의 최대 정적이었을지도 모를) 혜경궁 홍씨에 대해 극진한 효도를 다했음은 물론 1795년에는 천 년 만의 경사라 일컬어지는 회갑연을 위해 화성 행차까지 감행하였다. 왜 그랬을까? 

혜경궁 홍씨는 화성 행차 이후『한중록』을 쓰기 시작하였지만, 그 이후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고 벽파에 의해 정권을 잡은 5년 후, 곧 죽기 10년 전에서야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상 폭로 성격의 한맺힌 글을 남겼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은 이 말고도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단 하나도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 그저 사도세자의 죽음에 모든 초점을 맞출 뿐이다.

물론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신병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견해임은 이미 공론이다. 그러나 그가 소용돌이치는 정국 속에서 희생이 되었다 해도 그 때문에 다른 인물들에게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 뻔뻔한 처사가 아닌가? 

 

이덕일을 넘어서

이덕일씨는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공감갈 수 있는 견해도 물론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의 큰 가치는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큰 획을 그은 것만으로도 마땅히 기억되어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30만이, 300만이 이덕일씨의 견해를 지지한다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유홍준씨는『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써서 우리 인문서의 한, 중요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획일 뿐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곤란하다. 이덕일씨의 견해는 하나의 견해로서, 이 시대의 역사 이해에 대한 하나의 자극으로서는 큰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이제는 그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견해에 매몰되지 말고 진지하고 냉철하게 이 시대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                     *                     *

  

[참 고 문 헌]

다시 서평을 쓰면서 꼼꼼하게 읽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덕일씨의 견해의 잘못된 점을 제시하는 사료나 논문, 저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역사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이 많은 것들은 바로잡아줄 것이다. 수도 없이 드러나는 그의 잘못된 견해를 서평이라는, 짧으면서도 형식에 어긋난다 할 수 있는 이 글에 모두 풀어 일일이 반박하느니 학자들의 치밀하고 엄정한 견해들을 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다만 그 가운데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일부만, 이 책을 대하면서 반드시 같이 접해야 할 몇 개의 문헌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유봉학,『한국문화와 역사의식』, 신구문화사, 2005.
2. 유봉학,『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2001.

정조 독살설과 혜경궁 홍씨에 대한 가장 설득력있고 타당한 견해가 이 속에 담겨 있다. 연암 일파의 북학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특히 화성 연구와 정조대왕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책은 이덕일씨의 견해가 얼마나 빈약한 논리로 일관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꼬집어줄 것이다.

3. 정옥자,『조선 후기 역사의 이해』, 일지사, 1993.

정옥자 선생은 우리나라 정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중화주의가 담고 있는 뜻, 조선 후기 중인문화 연구에도 큰 획을 그었다. 조선 후기 역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또 정조대왕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지 않고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큰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4. 한영우,『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3.
5. 한영우,「정조의 화성건설과 화성행차」,『민족문화』제23집, 민족문화추진회, 2000.

한영우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시대 연구의 권위자이다. 영, 정조의 정책이라든지 정조의 화성건설과 화성행차가 담고 있는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속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6. 오주석,『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솔, 2003.
7.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한국생활사박물관』2, 사계절, 2004.

조선 후기 문화가 지닌 역동성, 다양성을 그림이라는 소재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푼 책이다.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대중서인, 전형적인 책이다. 조선 후기 문화의 올바른 이해가 없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올바로 바라보기는 힘들다.

8. 이성무,「조선왕조실록」,『한국의 고전을 찾아서』4, 휴머니스트, 2006.
9. 신병주,『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랜덤하우스 중앙, 2003.
10. 신병주·노대환,『고전소설 속 역사읽기』(개정판), 돌베개, 2005.

이덕일씨의 견해가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실록과『한중록』의 사료로서의 가치와 한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기본이다. 이 책과 글들은 그 길잡이가 되어준다.

11. 이이화,『한국사이야기』15 (문화군주 정조의 나라 만들기), 한길사, 2002.
12. 박현모,『세종의 수성 리더십』, 삼성경제연구소, 2005.

정조 독살설은 사도세자의 죽음과 맞물려 피해갈 수 없는 키워드이다. 앞서 유봉학 선생의 책과 더불어 이 두 책 또한 정조 독살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13. 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

영, 정조 시대 정치와 역사, 그 속의 사람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박광용 선생의 명저이다. 저자는 탕평 박사로도 정평이 나 있다.

14.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이덕일씨의 견해는 사료를 찾아보면 금세 그 허점이 드러난다.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이제는 그 누구도 다 접근해볼 수 있다.

(도서 이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index.l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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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이다 -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왕 세종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드라마「대왕 세종」이 조선 초기의 역사를 너무 왜곡해서 소개하고 있는 탓에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어차피 극이라는 한계가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는 이런 논란에 끼어들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극은 극일 뿐이며, 올바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 드라마의 영향이란 무서운가보다. 드라마「이산」의 방영으로 서점가에 정조대왕 열풍이 거세게 일더만 이번에는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랍시고 우후죽순처럼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 모두가 제대로 된 책들인지에 대한 나의 시각은 지극히 회의적이다. 그런 가운데 나에게 온 한 권의 책이 바로 이것이다. 

꽤나 독특한 시각으로 세종의 시대를 풀어가고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 시대의 인물과 찬란한 문화도 물론 적지 않게 다루고 있지만, 세종 시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강조한다든지 세종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서술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저자의 말처럼 빛이 강하게 내려쬘수록 그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아무리 태평성대라도 신분제라는 것이 인간을 옥죄고 있는 이상 한계란 없을 수 없으며, 너무나 찬란했기에 뒷 시대에 벌어지는 그 참담한 일들이 더욱 가슴 쓰라리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의 감상만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그러기에 역사를 바라볼 때 따뜻한 감성과 냉철한 이성이 균형을 갖추어야 함이 지극히 당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록을 비롯한 각종 사료라든지 여러 저서와 논문을 참고하여 세종 시대의 사람들을 치밀하게 다루고 있다. 때로는 무릎을 칠 만큼 탁견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적지 않다. 특히 세종 시대가 탄생되는 배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서술은 매우 깊은 공감을 가지게 할 만큼. 세종의 백년지계를 커다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저자의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그러나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짙다고 했는가. 그런 실수를 저자도 범하고 있을 줄이야. 탁견이 많은 만큼 오류도 적지 않게 보인다. 몇 가지만 이야기하면 이렇다. 

우선 세종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다. 세종 역시 한 사람의 왕이기 이전에 아들, 아버지의 역할을 한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점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세종의 참 모습을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된다. 나는 그 점에서 세종이 쉴새없이 공부를 하는 그 모습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서’를 그 하나의 이유로 끌어온 저자의 견해가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종이 즉위한 이후 32년 동안에도 병까지 앓아가며 일 중독, 공부 중독에 빠진 것을 설명하는 데 장애가 된다. 이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공부를 좋아했고 거기에 엄청난 노력파였다는 것이 결국 천성에 가까운 것임을 드러내준다.

특히 ‘선량한 독재자’라는 표현 자체를 동의하기가 힘들다. 저자는 딱히 그렇게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그 말고도 부를 수 있는 용어는 많다. 물론『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은 대단한 고집과 집념을 가지고 있었던, 강인한 면을 지니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례로 양녕대군에 관한 수백 여 건의 상소를 모두 물리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고집과 집념은 독재와 다르다. ‘독재’라는 것은 모든 일을 혼자 처결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세종이 독재자라면 이 책의 저자가 그렇게 강조하는 세종 시대의 인물들을 다루는 것이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세종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강조한 왕이었다. 의정부 서사제는 그 중요한 증좌이다. 이 하나만 봐도 ‘독재’라는 용어를 쓰는 데 얼마나 신중해야 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세종 시대의 외교를 낙제점으로 봤는데, 그렇다면 조선의 표준을 만들려고 했던 그런 유산들에 대한 설명과도 배치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낙제 외교를 한 사람들이 어떻게『칠정산』을 만들고『훈민정음』을 만들고『오례』를 만들었겠는가? 이는 조선이 중국과 거의 대등한 또 하나의 ‘중화’이며, 중국과 분명히 다른 나라임을 천명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유산들이다. 중국보다 더 나은 ‘중화’를 만들어 조선의 만년대계를 이끌었다는 세종과 그 시대 사람들의 원대한 이상을 본다면 세종 시대의 외교를 겉면으로만 파악해서는 곤란하며, 사대주의라는 용어도 좀 더 신중과 정확을 기해 써야 할 것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세종 이후의 시대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다. 세종의 시대는 표준이었다. 이것이 조선 500년의 기반이 되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후의 발전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서술이 자주 보이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심각한 오류이다. 조선의 무서운 기록유산인『승정원일기』,『의궤』등만 보아도, 18세기 영, 정조 시대의 역사와 문화만 봐도 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승정원일기』에는 280여 년간의 날씨 기록이 하루도 빠짐없이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지는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 단적인 오류의 예가 영조의 질문에 대답하는 신하들의 대답을 한심하다고 이야기한 대목이다(95~96쪽). 이것은 영조가 어떤 왕인지를 안다면, 이 시대의 정치 판도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안다면, 이 신하들의 대답은 한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답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조는 잘 아시다시피 탕평정치를 펼친 왕이다. 그러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 왕권의 강화와 안정이었으며, 그 모델을 요순에서 찾았다. 그런데 그 요순에 버금가는 칭송을 받는 왕이 바로 세종이었다. 이미 당대에 ‘해동의 요순’으로 불릴 만큼. 선조 때 훌륭한 인재가 나와 이른바 ‘목릉성세’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세종 때와 비교해서 못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영조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발언이다. 신하들은 그런 영조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이것이 어찌 한심한 답이겠는가?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렇게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오류에 대한 지적이 너무 지엽적인 것이기에 여기에 지나치게 마음을 쓸 필요는 없다. 더구나 이 책이 지니는 가치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엄정한 사료 비판과 철저한 탐구 정신이 가미되어 인물들에 대한 냉철한 묘사와 비판을 가하고 있는 부분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견해에 큰 공감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오류라는 것이야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비뚤어진 사람의 시각과 생각은 쉬이 고쳐지기 힘든 것이다. 더구나 사료 비판과 탐구 정신은 모름지기 역사를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그리고 역사서를 낸다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이다. 무엇보다 세종을 ‘조선의 표준을 세운 왕’임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서게 해주었다. 이 두 가지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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