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오주석 지음, 전2책, 솔, 1999·2006)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움이란 나와 내가 즐거워하는 대상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하면서 그것은 막연함에서 확신으로 돌아섰다. 공자(孔子)가『논어』(論語)의 첫 머리에서 이야기했던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의 참뜻이 비로소 조금이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강렬한 충격. 참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일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싫어했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것은 중학교 때. 그러나 학창 시절 국사, 세계사 점수는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틀에 박힌 작은 내용을 몇 년 간 반복적으로 배우는 것이 너무 지겨웠다. 어쩌면 이것은 내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을 합리화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공부가 싫었다. 고3이라는 처절한 시절을 나처럼 태평하게 넘긴 이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달랐다. 도서관은 나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평생 읽어도 다 접하지 못할 수많은 책들은 나를 학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멀고 먼 학문의 길.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조차 즐겁다. 그것은 학문의 본질을 조금씩 깨달을 때부터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야생에서 단련된 한 진정한 공부꾼의 이야기이다. 초반은 너무 뜬 구름 같았다. “뭐 이래?” 그러나 그 뜬 구름은 그 위의 푸른 하늘을 덮고 있는, 일종의 연막 같은 것이었다. 점점 분명해지는 명쾌한 이야기들, 내 마음 속을 수없이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이 이야기들은 종종 무릎을 탁 치게도 했고, 울고 웃게 하기도 했다. 

단순한 개인의 공부 이야기라면 어쩌면 그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쯤으로 생각하고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교육 전반을 적나라하게 꼬집어나가는 부분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학문의 크로스오버, 법고창신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 진정한 학문의 즐거움 등을 끄집어내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과연 대학자다.

우리는 왜 배우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즐거운가? 단지 어떤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어서? 아니면 그것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를 쥘 수 있어서? 물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배우는 것이 즐거운 것은 진리를 향해가는 우리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내가 배우는 대상, 그리고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왜 즐거운가? 왜 아름다운가? 상대방과 내가 비록 둘이지만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그렇다. 배우는 대상에 대한 참 사랑이 배움이 즐거운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을 돌이켜 보면 배움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와 권력, 명예가 아무리 많은들. 왜 그럴까? 배움에 대한 거짓 사랑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들이 현실에서 벌이는 추악한 모습이 뉴스에서 심심치않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거짓 사랑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내가 상대방을, 상대방이 나를 믿는다면 거짓 사랑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렇다. 우리는 진정한 배움이 주는 아름다움, 즐거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믿지 못하니 하나가 되지도 못하고, 당연히 즐거울리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학문에 대한 참 사랑은 우리가 깊이 공감해야 할 부분이다. 이 세상이 점점 아름다운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원동력은 세상에 대한 참 사랑이다. 세상에 대한 거짓 사랑은 때로는 큰 비극을 불러왔고, 역사의 퇴보를 가져오기도 했다. 세계 대전이 그러했고,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으며, 전두환 정권의 횡포가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역사가 오랜 동안 흘러오면서 우리에게 준 가르침이자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에서 여실히 보이고 있다.

학문의 참맛을 안다는 것은 정말 즐겁다. 그 길에 이르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너를, 우리를, 세상을 향한 일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가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가고 싶다. 나는 현재 공부를 하고 있다. 힘들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즐거움이 훨씬 크기에 멈출 수가 없다. 나도 점점 학문에 대한 참 사랑이 커져가고 있음을 느낄 때면 한없이 기쁘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막연한 생각에 강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런 즐거운, 행복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도둑질이라면 앞으로도 기꺼이 계속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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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2008-05-0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저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바를 정확하게 읽어 내신 것 같습니다.
따뜻한 석학 장회익 선생님의 공부도둑...배움에 대한 열정, 그것은 내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닌 세상을 위한 공부인 것 같습니다.
공부해서 남주는 공부. 그 참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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