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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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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도서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엮음,『조선 국왕의 일생』, 글항아리, 2009.
 

 

1
 
 

올해 조선왕릉(朝鮮王陵)이 세계문화유산에,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면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다시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궁중문화이다. 조선왕릉과 동의보감을 포함하여 이제껏 세계문화유산, 기록유산,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들 가운데 대부분이 궁중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은 바야흐로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바람을 일으켰는데, 그 바탕에 궁중문화가 있었다. 우리의 궁중문화가 지닌 진면목과 매력이 전세계에 어필된 것이다.
 

우리는 궁궐과 궁중문화에 대해서 그다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일본에 의해 철저히 파괴, 변형, 왜곡된 탓이기도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황실과 황실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간 문화에 대한 오해, 무지, 편견이 크게 작용을 한 탓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내는 한편, 역사 연구가 다양화되고 심화되면서, 그리고 경복궁을 비롯한 각 궁궐들의 활발한 복원 정비와 더불어 거기에서 재현되는 각종 의례, 행사가 화제가 되면서, 무엇보다 문화사와 생활사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에서 궁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다. 궁중문화와 관련된 자료의 양질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음양에서 궁중문화를 전수하기 위해 노력해온 분들의 활발한 활동과 더불어 학자들의 궁중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 비록 그 일부만이 우리에게 드러나 있음에도 그 무서운 역량은 가히 엄청나다.
 

궁중문화(宮中文化)는 한 나라 문화의 종합이자 정수이다. 궁중문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길이다. 민중들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지배층의 역사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궁궐은 왕조의 정점인 국왕으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양한 계층이 한데 어울려 살고 일하던 곳이었다. 역사는 대립과 갈등적인 측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화합과 조화의 측면으로도 이해를 해야 한다. 바로 그 속에서 자부심이나 사명감이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궐은 참 답답한 곳이다. 감옥 같은 곳, 그래서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만을 한다면 역사에는 발전이 없다. 역사의 진정한 발전은 긍정과 부정의 균형적인 인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궁중은 답답하고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한 나라 문화의 종합이자 정수인 궁중문화의 주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진 이들의 활발하고 역동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으로서의 궁중문화의 이해는 궁중문화, 나아가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드라마 <대장금>이, 등록된 여러 세계유산들이, 궁중문화가 관광산업에 끼치는 영향력 등등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궁중문화의 주체는 바로 궁중에서 살고 일했던 저 수많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모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정점에 있는 이는 바로 국왕(國王)이다. 국왕의 올바른 이해가 바로 궁궐과 궁중문화의 올바른 이해의 시작이자 마침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왕에 대해서 심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사극이나 역사소설이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국왕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그들의 업적이나 정책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그들의 삶과 죽음, 활동에 관해 알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역사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준다고 여겨지는 사극이나 역사소설이 큰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사극이나 각종 역사 관련 프로그램의 방영은 물론 환영할만한 일이다. 문제는 잘못된 내용을 전하는, 사극의 벗어날 수 없는 기본적인 한계에 있다.
 

사극을 보면 국왕은 거의 매일 술에 쩔어 있다. 궁녀도 자기 마음대로 불러서 밤을 지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국왕과 신료들과의 연회는 그야말로 술파티에 다름 아니다. 국왕의 옷은 매일 화려하다. 왕비와 후궁은 국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밤낮 질투하고 궁리하는 것밖에 하지 않는 듯하다. 궁녀는 마치 왕비와 후궁의 첩자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과연 국왕의 제대로 된 모습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흥미롭고 명쾌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2

 

정조 즉위년(1776) 정조는 동궐(東闕, 창덕궁과 창덕궁)의 후원 초입 부용지의 북쪽에 2층의 건물을 짓는다. 2층은 주합루(宙合樓), 1층은 규장각(奎章閣)이었다. 규장각. 바로 정조의 탕평정치의 산실이었다. 이후 규장각은 200여 년 간 파란만장한 역정을 겪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규장각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최대의 국학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곳에는 26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왕실에 관련된 자료도 수만 점이 넘는다. 하나같이 국보이거나 국보급 자료들이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러한 왕실 관련 자료들에는 왕실 사람들은 삶은 물론 그들의 삶과 죽음, 의례의 공간들, 그들이 만들어간 궁중문화에 관한 내용들이 무수히 실려 있다. 이러한 방대한 자료들에 대한 연구는 최근에야 시작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우리는 지금껏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국왕이, 왕비가, 왕세자가 어찌 살았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왔던 것이다. 수많은 오해, 편견, 무지에 우리는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그러한 오해, 편견, 무지를 바로잡아줄 자료들에 대한 연구는 지금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은 대부분 한문이나 한글로 쓰여 있더라도 고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접근하기가 어렵다. 대중들을 위한 사회 봉사를 자임하고 있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규장각 자료들을 전시하는 박물관 기능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규장각 자료들을 활용한 흥미롭고 새로운 대중들을 위한 강좌를 열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열린 '규장각 금요시민강좌'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작년 2008년 하반기에 열렸던 제1기 강좌의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방대한 왕실 자료들을 바탕으로 국왕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습, 정치, 학문, 문예, 음식, 혼례(가례)에 관한, 사실상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국왕의 거의 모든 면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아울러 국왕과 관련하여 왕비를 비롯한 왕실 여인들의 삶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강좌에 강사로 나섰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좌에서 다뤘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이 책에 담고 있다.
 

이 책이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은 국왕이 지닌 상징과 그 본연의 모습이라는 전제 속에서 국왕에 관해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국왕이 술마시는 모습, 궁녀와 지내는 모습 등등 앞에서 이야기한 우리의 편견, 오해, 무지는 국왕이 어떤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개념 및 상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왕은 왕조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지도자이자 정치가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데서 그러한 편견, 오해, 무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 나라를 지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바로 연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의 대통령보다도 훨씬 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국왕이라는 저 평범한 사실을 잊어버림으로써 우리는 국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대한제국을 불법으로 강점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그들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왜곡, 조작했다. 그 일차적인 대상이 바로 대한제국 황실 사람들과 그들이 활동했던 궁궐을 비롯한 수많은 공간들이었다. 우리의 국왕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출발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국왕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곧 우리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한 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국왕이 왕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상상해보라. 이것은 어찌보면 참으로 무섭고 소름끼치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국왕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곳곳에서 보이는 재미있는 서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왕실 관련 유물들을 촬영한 사진 및 그림 자료들을 풍부하게 제시한 점 등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때문에 어디서 이름 없는 궁녀의 처소에 군주가 갑자기 방문을 한다거나, 거기서 무언가 썸싱이 발생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낭만적일지는 모르지만, 가능하지는 않다는 이야기이다. ……. (장지연,「임금이 사는 집, 궁궐」,『조선 국왕의 일생』, 글항아리, 2009, 154쪽.)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두 가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첫째는 국왕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국왕이 시문을 활용한 문예정치를 펼치는 모습이라든지 국왕의 행차에 담긴 정치적인 의미, 그들이 공식적으로 임어하는 궁궐 전각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 등등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그의 은밀한 삶조차 국왕은 정치라는 테두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둘째는 매우 힘겨운 삶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은 문치(文治)의 나라였다. 국왕에게조차 강도 높은 수양과 학문의 연마가 요구되었다. 이것은 국왕의 권한을 견제하는 역할도 띠고 있었다. 아무튼 국왕은 한 나라를 이끌 만한 자질을 갖추는 것은 물론 학문 또한 뛰어나야 했다. 그리고 이 학문 수준이 신하들에 버금가거나 이를 능가할 때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거나 주도할 수 있었다. 세종과 영조, 정조가 바로 그러한 국왕들이었고, 이들의 시대를 태평성대, 중흥기, 문예부흥기 등으로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다른 국왕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면을 겸비하기 위해서 국왕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지는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왕은 각종 국가적인 의례와 행사들에 참여해야 했다. 그야말로 그들에게는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런 상황에서 매일 술을 마신다든지 궁녀와 노닥거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3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아쉬움도 발견된다. 우선 윤문의 실수와 같은 사소한 실수가 몇몇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창덕궁의 희정당(熙政堂)을 희정전(熙政殿)으로(21쪽), 연산군에게 탄압받은 덕종의 비 소혜왕후를 세조의 비 정희왕후로 잘못 쓴 것(47쪽)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연구 성과에 비추어서 보이는 문제도 있다. 방금 소개한 희정당의 경우가 그것인데, 희정당은 최근에 편전으로 보아야 한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그것은 희정당의 가운데에 '정'자가 들어간다든지 편전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기록들, 건축 구조 등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용마루에 관한 서술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왕비의 침전에 용마루가 없다 했지만, 경복궁의 경우에는 국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에도 용마루가 없다. 만약 희정당이 국왕의 침전이었다면 왜 여기는 용마루가 있는 의문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여전히 왕비나 왕실 여인들의 삶을 다룬 부분에서 오해를 지닐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병설,「"다시는 궁궐에 살지 않게 하소서."」) 글에서는 분명히 왕비가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서술하고 있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연구라든지『한중록』(閑中錄) 등의 궁중문학작품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함으로써 왕비나 궁중 여인들이 가련한 존재라는 인식을 주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궁중 여인들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주의를 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4

 

그러나 이와 같은 단점들은 단지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국왕의 다양한 모습을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고 치밀하게, 그러면서도 대중들을 위해 쉽고 흥미있게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동안 국왕에 대한 오해, 편견, 무지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21세기는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왔고, 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통문화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함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전통문화라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한국적이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이는 과거 우리 선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왔는가를 현재의 우리 눈과 과거 그들의 눈 양자를 통해 동시에 바라보는 노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눈으로만 과거를 바라봐왔다. 균형있는 바라보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균형있는 바라보기의 출발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과거에 신분이 있었고 왕조가 있었다는 그 지극히 평범한 사실에 있다. 왕조의 정점인 국왕의 이해는 궁궐과 궁중문화의 문화콘텐츠로서의 현대적 활용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균형있는 바라보기, 나아가 우리 역사와 문화의 올바른 이해의 토대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대중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준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크다 할 것이다.
 

세종이 다스리는 30년 동안 백성들은 그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기뻐했다. (김문식,「왕은 어떻게 교육을 받았을까」,『조선 국왕의 일생』, 글항아리,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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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변명
신명호 지음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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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국왕,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대상 도서 : 신명호,『왕을 위한 변명』, 김영사, 2009.

 

 

1

 

내가 대학에 들어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식민주의사관을 어떻게 하면 깨뜨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 또래 학생들이 가졌던 관심과 다소 동떨어진 이유였다. 90년대 중, 후반에도 학생들은 민중이나 투쟁이라는 단어 등에 익숙했다. 물론 그 흐름 또한 의로운 흐름이었음은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올바른 역사와 문화의 길이 식민주의사관을 깨는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고, 그쪽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고구려나 백제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달리 신라와 불교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또한 고려에서도 광종과 최승로, 서희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식민주의사관에 대한 비판의 시각은 2000년대 초반 조선왕조 초기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중기와 후기로 이어졌다. 바로 그 때 나는 궁중기록문화, 왕실기록물의 참으로 놀랍고도 무서운 역량의 매력에 흠뻑 빠져 궁중문화와 왕조의 정점인 국왕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공부가 이제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과정에서 식민주의사관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궁중문화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국왕(國王)이 한 왕조의 최고 통치자이자 정점이며, 궁중문화가 한 나라 문화의 종합이자 정수라는 저 평범한 사실 때문이었다. 올바른 우리 역사와 문화의 이해를 위한 첩경이 바로 이에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일본은 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황실 인물들의 상을 철저히 왜곡시켰으며, 황실의 유물, 유적들을 파괴, 변형, 왜곡시켰던 것이다. 조선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던 경복궁에 식민통치의 본산이었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섰던 것, 궁궐이 속절없이 파괴되었다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제모습을 찾고 있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책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는 내용이 바로 국왕과 그 국왕의 업적에 관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사극을 보아도 궁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거의 대다수임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국왕을 대단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국왕을 잘 알까? 단언하건대 우리는 국왕을 전혀 모른다. 지식을 다루는 유명한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무신정권을 이룬 대표적인 한 사람인 최충헌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가 얻은 호의 글자 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았으며, 그것을 방송하면서 버젓이 고급 지식인 양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것을 찾아내었던 초등학생에게는 경의를 표하면서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적어도 영조(英祖)가 받은 존호(尊號)라든지 고종 때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던 신정왕후 조씨(神貞王后 趙氏)가 받은 존호의 글자 수만 봐도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못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지식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와 같이 국왕의 호의 글자 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국왕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만용이며 무모하기까지 하다. 신명호 선생의 이 책은 그 점에서 우리에게 국왕을 보는 또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

 

 

 



 

저자는 잘 아시다시피 궁중문화(宮中文化, 王室文化)를 연구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 또한 그의 책을 읽음으로써 궁중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책들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궁중문화에 관한,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쉽고 흥미 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 그의 여러 저작들과 비교해도 이 책은 참 독특한 면이 있다. 


 

이 책은 기존에 국왕을 다루었던 책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국왕을 다룬 글이나 책들을 보면 국왕의 생애의 전반을 언급한 다음 국왕이 이룬 업적과 그 역사적 의의에 치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국왕의 업적이나 그 역사적 의의에 관한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 국왕이 즉위하기까지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역정이라든지 역사적인 격변기 속에서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등 한 인간으로서의 국왕의 모습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글쓰기는 어찌 보면 상당한 위험(?)을 담보로 한다. 기록의 행간을 들추어보는 작업은 물론 역사학자들이 일상으로 하는 일이지만 그 행간이 국왕의 내면의 모든 것까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러한 위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험을 했다. 그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 역사의 주체는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사람을 만든다.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제대로 파고들지 않고서는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뿐더러 그러한 역사 이해는 무의미한 작업일 뿐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여느 대중서와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흔히 일반인들이 쓴 국왕에 관한 책들을 보면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다루는 속에서 사료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함은 물론 근거도 없는 사료를 가지고 온다든지 사료에 대한 철저한 비판 없이 무분별하게 인용하여 이것이 도대체 제대로 된 책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더욱 탁월한 면을 지닌다 하겠다. 저자는 이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통찰을 반드시 사료에 근거해서 철저하게 비판하고 해석하고 있다. 이 점은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맞물려 더욱 탁월하고 돋보인다 하겠다.

 

 

 

3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 대해 적지 않은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가장 아쉬운 점은 어떠한 한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우유부단한 것이다. 이 책을 흥미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 그 시대의 역사상, 문화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하기가 여건상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이다. 그 때 하나의 문제를 독자의 판단으로 미룰 때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영조에 관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부담을 지니고 있던 것이 있었다. 하나가 미천한 신분인 숙빈 최씨(淑嬪 崔氏)에게서 태어났다는 것, 다른 하나가 경종 독살설에 대한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저자는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의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영조는 왕위에 오른 후 진심으로 이복형 경종에게 감사해하고 또 미안해했다. 실제 영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경종 때문이었다. 그것이 경종의 호의와 양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영조의 음모와 술수에 의한 것인지는 영조와 경종 단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문제이다. …… 

 

…… 그런 면에서 영조가 ‘형님의 지극한 우애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오늘까지 살았으랴.’라고 언급한 것은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혹 이런 말이 지난날의 악업에 대한 반성이었다면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참회와 자기개발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런 말이 진실이었다면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명호,『왕을 위한 변명』, 김영사, 2009, 329~330쪽)

 

 

물론 이 시기가 당쟁이 격심한 시기이고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디.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숙종 때 정국이 일시에 바뀌는 환국이 여러 번 일어났는데, 이를 서인과 남인의 권력다툼과 그 속에서의 당쟁이라는 시각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일본은 식민주의사관을 바탕으로 이를 당쟁의 전형이라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 바로 환국의 중심에 있었던 숙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숙종은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는데, 그 어린 나이에 그 전대왕인 효종과 현종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던 서인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의 잘못한 점을 거침없이 꼬집었음은 물론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국을 바꾸는 기사환국 때는 그를 사사하기까지 했다. 이는 숙종의 대담함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환국의 주체는 서인이나 남인이 아닌 바로 숙종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국왕과 그 왕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더불어 이 시대의 수많은 정황들이 경종의 독살설 또한 하나의 가설이요 상상일 뿐임을 알게 해준다. 영조가 재위 기간 내내 보여주었던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모습과 자신의 이복형을 독살했다고 하는 그 이중성은 너무나 배치될 뿐이다.

 

저자의 위와 같은 문제 제기는 독자가 은연중에 영조가 경종을 독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경종은 영조를 보호했고 영조는 그래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경종의 호의와 양보와도, 영조의 음모와 술수와도 모두 관계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모호함이 몇 군데 보이는 것은 다소 아쉽다.

 

 

 

4

 

그러나 이와 같은 단점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책이 지니는 무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도는 매우 참신하며 폭넓다. 물속의 열 길보다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한 길이라고 기록과 그림,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역사적 인물들의 모습을 온전히 알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한 인물에 대한 꼼꼼한 추적은 그 인물 자체는 물론 그 인물이 살아갔던 시대의 실상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특히 한 왕조를 이끌었던 정점의 위치에 있던 국왕은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은 그러한 국왕의 또 다른 면(특히 내면을 중심으로)을 신빙성 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고 치밀하게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인물과 역사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준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한 사람으로 역사적 인물 연구의 또 다른 지평을 연 하나의 의미 있는 결과물을 대하고 있는 내 마음은 그래서 더욱 행복하다.






 

 

♧ 참 고 문 헌 ♧

 

이 책을 읽으면서 참고한 문헌은 다음과 같다.

 

신병주,『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랜덤하우스 중앙, 2003.
신명호,『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이태진,「사화와 붕당정치」,『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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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오주석 지음, 전2책, 솔, 1999·2006)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움이란 나와 내가 즐거워하는 대상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하면서 그것은 막연함에서 확신으로 돌아섰다. 공자(孔子)가『논어』(論語)의 첫 머리에서 이야기했던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의 참뜻이 비로소 조금이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강렬한 충격. 참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일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싫어했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것은 중학교 때. 그러나 학창 시절 국사, 세계사 점수는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틀에 박힌 작은 내용을 몇 년 간 반복적으로 배우는 것이 너무 지겨웠다. 어쩌면 이것은 내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을 합리화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공부가 싫었다. 고3이라는 처절한 시절을 나처럼 태평하게 넘긴 이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달랐다. 도서관은 나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평생 읽어도 다 접하지 못할 수많은 책들은 나를 학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멀고 먼 학문의 길.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조차 즐겁다. 그것은 학문의 본질을 조금씩 깨달을 때부터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야생에서 단련된 한 진정한 공부꾼의 이야기이다. 초반은 너무 뜬 구름 같았다. “뭐 이래?” 그러나 그 뜬 구름은 그 위의 푸른 하늘을 덮고 있는, 일종의 연막 같은 것이었다. 점점 분명해지는 명쾌한 이야기들, 내 마음 속을 수없이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이 이야기들은 종종 무릎을 탁 치게도 했고, 울고 웃게 하기도 했다. 

단순한 개인의 공부 이야기라면 어쩌면 그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쯤으로 생각하고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교육 전반을 적나라하게 꼬집어나가는 부분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학문의 크로스오버, 법고창신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 진정한 학문의 즐거움 등을 끄집어내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과연 대학자다.

우리는 왜 배우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즐거운가? 단지 어떤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어서? 아니면 그것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를 쥘 수 있어서? 물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배우는 것이 즐거운 것은 진리를 향해가는 우리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내가 배우는 대상, 그리고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왜 즐거운가? 왜 아름다운가? 상대방과 내가 비록 둘이지만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그렇다. 배우는 대상에 대한 참 사랑이 배움이 즐거운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을 돌이켜 보면 배움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와 권력, 명예가 아무리 많은들. 왜 그럴까? 배움에 대한 거짓 사랑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들이 현실에서 벌이는 추악한 모습이 뉴스에서 심심치않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거짓 사랑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내가 상대방을, 상대방이 나를 믿는다면 거짓 사랑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렇다. 우리는 진정한 배움이 주는 아름다움, 즐거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믿지 못하니 하나가 되지도 못하고, 당연히 즐거울리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학문에 대한 참 사랑은 우리가 깊이 공감해야 할 부분이다. 이 세상이 점점 아름다운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원동력은 세상에 대한 참 사랑이다. 세상에 대한 거짓 사랑은 때로는 큰 비극을 불러왔고, 역사의 퇴보를 가져오기도 했다. 세계 대전이 그러했고,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으며, 전두환 정권의 횡포가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역사가 오랜 동안 흘러오면서 우리에게 준 가르침이자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에서 여실히 보이고 있다.

학문의 참맛을 안다는 것은 정말 즐겁다. 그 길에 이르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너를, 우리를, 세상을 향한 일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가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가고 싶다. 나는 현재 공부를 하고 있다. 힘들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즐거움이 훨씬 크기에 멈출 수가 없다. 나도 점점 학문에 대한 참 사랑이 커져가고 있음을 느낄 때면 한없이 기쁘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막연한 생각에 강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런 즐거운, 행복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도둑질이라면 앞으로도 기꺼이 계속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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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2008-05-0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저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바를 정확하게 읽어 내신 것 같습니다.
따뜻한 석학 장회익 선생님의 공부도둑...배움에 대한 열정, 그것은 내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닌 세상을 위한 공부인 것 같습니다.
공부해서 남주는 공부. 그 참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 유고집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잘 우는 편이다. 물론 나 자신 때문에 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름다운 사람을 볼 때, 우리의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를 볼 때, 나는 그들을 위해 운다.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천만 번, 억 번 우는 것도 아깝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경우가 그러하고,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를 가꾸어왔던 선비들의 경우가 그러하고, 세상을 위해 헌신한 학자들의 경우가 또한 그러하다. 그 가운데 한 사람. 바로 故 오주석 선생이다.

그만큼 우리 그림을 제대로 본 이가 있었을까? 그림 한 장에 담긴 그 무수한 의미들, 그것이 주는 세상에 대한 깊은 마음. 미처 읽지 못했던 것들을 그는 읽어냈다. 선비의 마음은 선비가 안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 자신이 참 선비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선생이 고인이 된 지도 벌써 3년이 넘어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의 반가운 유고집이다. 오래 전부터 내고 싶어하던 수필집이란다. 그렇다. 예술은 우리의 눈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뜨거운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그런데 차가운 이성을 담보로 하는 논문이나 학술서는 그것을 담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물론 뜨거운 마음을 담은, 그래서 뜨거운 감동을 안겨주는 논문, 학술서가 무수히 많기는 하지만. 아무튼 선생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지 따로 수필집을 내고 싶어했는데 불행히도 그가 세상을 등진 후에야 나왔다.

선생은 진실했다. 정직했다. 의리가 있었다. 바로 선비였다. 그렇기에 거짓과 헛된 욕망을 준엄하게 꾸짖을 수가 있었다. 시중에서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글들을 정말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담보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남을, 세상을 가차없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끝간데없는 왜곡과 조작의 덮개를 씌우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그렇고, 우리의 국수주의가 그렇다. 그것은 거짓 사랑이다. 거짓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의 주위에는 거짓 사랑이 넘쳐난다.

어디 그뿐인가? 사회 전반을 보면,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텅 빈 경우가 적지 않다. 남을 위해 기꺼이 발자국 역할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 뒤만 졸졸 따라간다. 교양과 천박함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리듬앤 블루스풍의 노래를 부르면 고급스럽고, 트로트를 부르면 저급스러운가? 그것은 도대체 누가 만든 규정인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을 포장하기에, 내면의 참된 아름다움을 숨기기에 바쁘다. 선생은 그런 세상,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일갈한다. 이 책을 보며 내 얼굴에 침을 뱉는 듯한 쓰라림과 끝모를 부끄러움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 책을 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아름답게 살다간 이를 추도하는, 아름답게 살고 있는 이들의 추도사이다. 아마 추도사가 책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것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를 잃은 것이 우리에게는 큰 손실이었음을 보여준다. 과연 그와 같은 진정한 학자를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니, 나는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역사는 더디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주었고, 그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부끄럽지만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그 국사 교과서조차 식민주의사관의 뿌리 깊은 악습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면? 하기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헌신짝처럼 대하는 시대에 그나마 배울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할까? 조선총독부 건물을 한 나라의 중심 박물관으로 사용했어야 할 만큼 우리의 역사의식, 문화의식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 또한 서양 것이 지나치게 좋다 보니 우리 것이 그만큼 못해 버렸다는 것으로 합리화해도 될까?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늦었더라도 이제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물론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것이 지녔던 제 위치는 찾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을, 그리고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아름답게 가꾸어 온 선조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리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안다면 선생이 하늘에서라도 기뻐하며 춤을 추지 않을까?

 

생전에 이 독화수필을 내고 싶어했다고 들었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그는 필경 논문보다 이러한 수필에 더 애정이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섬세한 마음이 이처럼 처절할줄이야. 그가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여 함께 기뻐하고 싶었으나 세상은 냉담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거짓은 사라지고 참된 것은 남는 법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른바 교양인들은 모두 알고 있으니 너무 애탈 필요가 없다.

작품을 읽는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작품이 전하는 사실을 읽는 것은 처음 단계요, 작품이 전하는 아름다움(미술양식)을 파악하는 것은 그 다음이요, 작품이 전하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종착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단계에도 제대로 이르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그 세 가지를 다 읽었기에 죽음을 앞두고 첫 수필집을 생전에 내려고 했을 것이다.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편히 잠들기를. (오주석,『그림 속에 노닐다』, 솔, 2008, 5쪽 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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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 역사를 바꾼 중국 황제 10인의 통치 리더십
이세민 지음, 진성위엔 엮음, 김윤진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예로부터『정관정요』(政觀政要)는 사마광(司馬光)의『자치통감』(資治通鑑),『대학연의』(大學衍義) 등과 함께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라 일컬어져 왔다. 이들 ‘제왕학의 교과서’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왕도(王道)이다. 왕도란 무엇인가? 유학자들은 왕을 ‘우주 만물을 덕을 매개로 관통하는 존재’ (三 + ㅣ = 王)으로 정의를 내렸고, 이러한 개념은 대대로 이어졌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핵심은 바로 덕치(德治)에 있다. 덕으로 다스릴 때만이 진정한 왕도를 이룰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정관정요』도 이런 흐름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은『정관정요』를 바탕으로 하여 통치술의 키워드 10가지와 이러한 키워드에 들어맞는 10명의 황제들의 이야기를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풀어가고 있다. 엮은이의 해박한 사료 풀이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유려한 번역들이 잘 어우러졌다.

이 책은 주로 창업한 황제들과 건국 초기 수성이 돋보였던 황제들을 뽑고 있다. 한번씩 이름은 들어보았을 중국사의 걸출한 황제들이다. 물론 그 중심에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이 있다. 이 책에서 매우 눈에 띄는 것은 측천무후(則天武后, 측천황제, 무미랑)의 장점을 잘 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측천무후는 일대의 여황이라는 이름만으로 심각한 매도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흔히 정관(政觀)의 치, 개원(開元)의 치라 일컬어지는 당 태종, 당 현종(唐玄宗, 이융기) 시대 또한 태평한 시대, 진정한 왕도가 이뤄진 시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 태종은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빼앗다시피 하여 정통성이 결여되었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강력한 통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고구려 원정을 실패하였다. 당 현종은 또 어떤가? 초기에는 정치를 잘했을지 모르지만, 양귀비를 이용했고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중국이 큰 혼란에 빠지게 한 주범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무측천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들에게 하등 밀릴 것이 없다. 무측천의 부각은 그런 점에서 돋보인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하나, 장점이 지나치게 부각되었다. 이들의 정치에는 상당히 많은 실책들이 있었다. 앞에서 본 당 태종과 당 현종의 경우도 그러하거니와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 또한 변덕이 심한 왕이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명나라의 실록이 부실한 이유는 사관이 바른 말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황제권을 강화시키고 독재를 일삼았던 주범이 바로 명 태조이다. 강희제(康熙帝, 애신각라 현엽)도 60년 동안 대단한 정치를 펼쳤지만, 옹정제(雍正帝, 윤정)를 앉히는 과정에서 심각한 권력 투쟁을 일으키게 했다. 건륭제(健隆帝, 홍력)를 기점으로 청은 뚜렷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렇게 본다면 과연 이 책에서 말하는 왕도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물론 단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무 적다.

둘째, 황제들의 사례가 주로 초기에 집중되어 있다. 건국은 태어난 아이와 같다. 어쩌면 가장 건강한 상태일지도 모르나 노년과 더불어 가장 나약한 상태이기도 하다. 또한 미숙하다. 물론 이들 황제들의 정치가 못났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 이들의 정치는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연 이 시기만이 절정의 시기인가에 관해서는 나는 적지 않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물 선정에 있어서 왕도보다는 패도에 가까운 정치를 했던 이들을 뽑았던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여겨진다.

도대체 진정한 왕도가 무엇이길래 내가 이런 말을 하는가? 이 책이 그 답을 잘 주고 있다. 군주는 관대하고 예의 바르며 덕이 있어야 한다. 항상 공부와 정사를 힘쓰고 백성을 어루만져야 한다. 인재를 제대로 등용하고, 인사를 잘 해야 하며, 목숨을 걸고 직언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충효를 앞장서서 실천하고 언제나 중용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항상 경계하고 절제하며, 문무를 겸전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이 인물 선정에서 문제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과연 이 책에서 든 황제들이 왕도정치의 진정한 면을 대부분 충족시키는 왕들이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왕도의 개념이 위와 같다면 그에 가장 잘 들어맞는 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 송나라 인종(仁宗)과 우리의 세종대왕(世宗大王)이다.

송나라 인종은 중국사에서 문치의 꽃을 가장 활짝 피웠던 송을 안정시켰다. 오히려 이 책에서 든 송 태조(宋太祖, 조광윤)보다 그가 왕도에 가까우며, 더 중요하다. 더구나 그 시대에는 바로 중국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인 포청천(包靑天, 포증)이 활약했던 시대였다. 포청천 한 사람만 봐도 송 인종의 시대가 진정한 치세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어떤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통치술의 10가지 키워드에서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개인과 가정의 불행을 놀라운 정치로 극복해낸다. 그리고 우리의 민족문화를 가장 활짝 꽃피웠다. 조선이 500년을 넘게 갈 수 있었던 기반을 닦은 세종대왕을 보면 무릇 진정한 왕도, 태평성대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런 여러 한계에도 이 책은 진정한 왕도의 길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오늘날의 정치를 잘 살펴본다면 이 책에서 제시한 길들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금의 정치는 한 마디로 블랙 코미디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덜렁 미국에 가서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을 펼치고 농민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비록 농사와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가 줄어간다 해도 농사, 목축업은 여전히 국가의 근간이다.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팽겨쳐버린 대통령의 행동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이다. 온 나라는 영어에 완전히 미쳐 있다. 국제화 시대 영어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말을 대신할 수 없다. 정부의 교육자율화 정책 때문에 애꿎은 학생들만 괴롭게 되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으며, 서민 경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도, 정치인들은 싸움에 정신이 없고, 매일 돌발영상의 전문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아무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가 나아졌다지만 어떻게 정치는 이렇게 퇴보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가르친다. 언제나 정의가 승리한다고. 비록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진실은 결코 죽지 않는다. 나는 그 역사의 소리 없는 가르침, 외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결코 꿈과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정치. 언젠가는 그 이름처럼 바른 다스림이 이뤄질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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