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란 두렵지만 멋진 거야            인디고 최정아

사토 마키코 (웅진출판)

 처음으로 친구와 자전거를 훔치게 된 소년의 마음은 얼마나 조마조마할까 표지를 본 순간 두 소년의 얼굴 가득 담긴 웃음이 환호성과 함께 메아리치는 것 같다. 그들의 머리위로 흩날리는 나뭇잎은 꽃비가 되고 과연 이들에게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본의 동화작가 사토 마키코가 쓴 처음자전거를  훔친 날(웅진주니어출판사. 장연주 그림, 고향옥 옮김)은 13살이 된 소년 소녀의 처음 겪게 된 이야기 4편이 실린 중편 동화모음집이다. 작가는 간결하지만 사실적인 대화체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기의 경계선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불안하면서 모호한 심리,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을 그려낸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의 소재는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의 얼굴 표정을 묘사한 삽화들은 이야기 흐름을 잘 살려 가독성을 높여준다.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도는 황색톤과 아이들의 충동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을 표출하는 푸른색이 잘 어우러져 주인공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처음 산 브래지어의 주인공 아야코는 어느 날 가슴에 멍울이 생기는 2차 성징을 겪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을 간직한 아야코는 고민 끝에 마트에 가서 혼자 속옷을 고르지만 실패하고 만다. 아야코는 사춘기에 접어든 자신의 몸을 새롭게 자각하고 이전과는 다르게 엄마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엄마와 결국 함께 속옷을 사러 간 날이 아야코에겐 잊을 수 없는 첫 경험이 되었다. 이젠 같은 여자로서 엄마는 아야코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는 동지가 될 것임을 작가는 은연중에 암시하면서 엄마에게도 딸의 성장과정은 처음 있는 상황임을 일러주고 있다.

 두 번 째 이야기의 주인공 마리나는 아빠의 전처 아들인 데쓰야 오빠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중대한 사건에 직면한다. 마리나는 언니와 함께 처음 만나는 오빠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언니 말고 오빠가 생긴 현실을 어른의 시선을 비껴나 어린 소녀의 눈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모습들이 작가의 섬세한 묘사로 표현되고 있다. 어른세계에서 빚어진 가정의 상처와 아픔이 소녀의 가치여과기를 거치면서 우울하거나 비관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밝고 활달한 모습의 건강한 자아상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마리나의 오빠를 등장시키면서 미움이나 증오, 원망, 일탈할 수도 있는 갈등구조 대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두 소녀의 설레임을 부각시키면서 삶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사춘기 시절 겪었던 혼돈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 불의와 기존질서에 대한 저항, 강한 충동성, 친구간에 겪었던 끈끈한 우정과 사랑, 자유를 향한 갈망,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졌던 그 때의 고통스런 과정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지나쳐 온 시절에 애정을 듬뿍 담아 자전거를 훔친 쇼고와 유스케의 우정과 꿈을 그려낸다.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충동에 이끌리는 사춘기에 접어든 유스케는 어느 날 갑자기 자전거를 훔치자고 제안한다. 유스케는 변성기가 되면서 인기가 많아진 소년인데 운동도 잘하고 키가 크다. 유스케와 단짝인 쇼고는 왜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친구와 함께 하고자 마지못해 자전거를 훔친다. 어느 순간 수업이 지겨워진 유스케가 선택한 방법이라곤 수업시간에 큰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니는 정도였다. 어른들이 이해하기 힘든 유스케의 행동을 작가는 새로운 자아를 찾고 자기 내면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사춘기의 정상적인 과정임을 알려준다. 고물 자전거를 타고 공원 끝까지 달리는 소년에게 세상은 두렵지만 넘어야 할 통과의례와 같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사하라 사막의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빛모래 언덕을 이야기하는 유스케의 모습은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아있다. 그것은 자기 내부에서 솟구치는 다른 세계를 향한 동경이고 모험심의 표출이다.

 이 책을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학교 6학년에게 읽히면 자신의 마음과 비숫한 또래 주인공을 만나는 과정에서 보다 풍부한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스케와 쇼고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황금색 모래가 펼쳐진 사막을 꿈꾸는 장면의 삽화는 글의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살려내어 눈길을 끌었다. 독자는 연령에 상관없이 이 그림에서 어린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얼마나 찬란하고 그들의 작은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모험심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에 실린 처음 가진 우리들의 집은 이 책의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다섯 소년이 버려진 낡은 집을 발견하고 자기만의 집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소년들의 중요한 의식과도 같다. 동생에 대한 부모의 편애로 마음의 문을 닫은 료헤이는 소타와 함께 비밀의 집을 갖기로 마음먹는다. 이들에게 친구와 같이 행동함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부모는 지배하고 간섭하려 들지만 친구는 나를 이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작품이 부모에 대한 고집스런 반항심이나 기존질서를 무시한 과격한 방식으로 소년들의 일탈과 해방감을 그렸다면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료헤이와 네 명의 친구들은 보통의 학생이고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그들이 자기들만의 방을 정한 후 하는 것이라곤 그저 간섭 없이 간식을 먹거나 만화를 보고, 몰래 가져 온 다기에 음료수를 마시는 정도다. 집에서나 학교 교실에서 늘 하던 행동임에도 그들은 색다른 해방감과 자유를 처음으로 만끽한다. 친구들끼리 정한 규칙을 지켜나가는 소년들은 누구보다 자율적이고 진지하며 주체적이다. 어린 시절 지울 수 없는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소년기는 평생을 살아가는 자양분으로 삶을 지탱한다.

 작가는 어린이가 바라보는 어른의 세계가 결코 잘 짜여진 그물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비록 결점과 허점이 많은 곳이지만 비난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여기 등장하는 여러 명의 주인공들은 이제 나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어떤 길을 갈지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희망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감동을 안겨 준 작품이다. 어른은 어른대로 작품 속에서 예전의 자기를 불러내어 말을 걸 수 있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미리 사춘기의 폭풍을 감내할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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