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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허브 - 아름답고 지혜롭게, 허브와 내가 자라는 시간
박선영 지음 / 궁리 / 2018년 6월
평점 :
"아름답고 지혜롭게,
허브와 내가 자라는 시간"
허브라는 말은 내게는 울림을 주는 단어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지혜롭지는 못하더라도 아름답게 허브가 자라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며 나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하지만 현실은 늘 허브에 대한 짝사랑으로 허브도 나도 힘든 시간이었던 듯 하다. 매년 봄이면 설레는 마음과 이번에는 꼭 잘 키우겠다는 다짐으로 애플민트, 바질, 로즈마리같은 허브를 들였었다. 물론 음료에 애플민트 잎을 얹거나, 로즈마리 순을 따서 고기를 구울 때 넣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만 무덥고 긴 여름이 끝나기 전에 허브들도 가버렸었다.
"그림 그리는 농부 작가. 원예치료사이자 잇츠 허브 농장 대표"
작가 박선영에 대한 소개 첫머리다. 이 작가 소개는 또한 이 책의 소개이기도 하다.
농부 작가가 세밀화로 아름답게 그려낸 허브와 허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로 읽는 이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치유하는 책.
"허브(Herb)는 푸른 풀을 뜻하는 라틴어 '헤르바(Herba)'에서 유래된 것으로 잎과 줄기를 향신료, 향미, 치료제 등으로 식용이나 약용하는 식물을 말한다."
작가가 내린 허브에 대한 정의이다. 우리가 흔히 허브라고 생각하는 로즈마리, 라벤더, 페퍼민트 등등이 금방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허브의 세계는 넓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릎이 좋지 않던 시어머니가 늘 가까이 두고 차로 우려 마셨던 우슬초, 홍화. 우리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마늘, 늘 귀한 약재로 쓰이는 인삼처럼 생각해 보면 금방 수긍이 가는 허브부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달리아, 여름이면 귀여운 꽃을 피우는 란타나, 백일홍, 튤립처럼 허브인 이유가 궁금해지는 식물까지. 이 책에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99가지의 허브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구성은 허브에 대한 소개를 하고 그 허브를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 놓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키우고, 바라보며, 아름답게 그리는 작가의 모습은 행복할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에서는 스테비아를 당뇨병 환자들이 안심하고 섭취할 수 있는 설탕 대체제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설탕 제조업체들의 강력한 반발로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미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되기까지 했다."
'어른들에 의해 감춰진 슬픈 설탕초' 스테비아에 대한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렇게 허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그 효능까지 잘 설명해 놓았다.
"로즈마리는 지중해 바다 절벽에서 모진 풍랑을 견디고 바다 이슬을 먹으면서 자라던 허브다. 라틴어로 '바다의 이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로즈마리의 속명 '로즈마리누스' 는 '이슬'과 '바다'가 합쳐진 말이다. 건조한 환경을 잘 견디기 때문에 습도가 높은 곳을 싫어하고 강한 바닷바람에도 잘 견딜 만큼 통풍이 잘 되는 장소를 선호한다."
로즈마리에 대한 이 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로즈마리를 키우는 팁에 대해서 알게 된다.
로즈마리는 워낙 친숙해서 쉽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허브라는 걸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 베란다 걸이대에서 자라고 있는 로즈마리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물빠짐이 좋고 양분이 거의 없는 흙에 심고 베란다 걸이대에 내놓은 뒤에야 겨우 자리를 잡은 로즈마리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록적인 폭염과 높은 습도의 이번 여름이 이 아이에게 얼마나 혹독한 환경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늘은 어머니가 보온밥솥에 넣고 쪄주는 흑마늘이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봄이 오면 뒷산에 아버지가 심어놓은 두릅따기가 한창이다"
허브 사랑으로 농부의 길로 들어섰다는 작가는 허브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친근하게 할 줄 안다. 거기다 문학적이고 섬세한 표현으로 글을 읽는 즐거움도 더했다.
그리고 알찬 부록.
허브를 잘 기르는 방법과 허브를 즐기는 방법은 정말 유용했다.
내가 이 책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 베란다의 허브들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받았을 때 먼저 아름다운 그림에 반했었다. 그리고 늘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또는 허브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허브 사전처럼 꺼내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단지 허브의 모양새나 쓰임을 넘어서 그 허브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잉글리쉬 라벤더 '여왕이 사랑한 향기로운 꽃과자'
베란다걸이대에서도 풍성한 꽃을 피웠고, 벌이 날아와 붕붕거리며 여기저기 꿀을 찾았었다.
봉오리일 때 수확해서 차로 마시기도 했던. 바람에 살랑거리는 라벤더와 도시의 아파트에 찾아온 벌을 보면서 종일을 그 앞에서 서성이게 했던.

나도 허브와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온다면 이제는 허브와 제대로 된 만남을 할 수 있을 듯 하다.
또 그냥 달리아, 튤립, 황기, 메리골드였던 식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내게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