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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키워드: 인간, 신, 시간, 게임, 세계, 탄생, 성장, 죽음
이 책은 올가 토카르추크가 1996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태고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세장씩 다양한 인물, 사물 등의 관점으로 그들의 시간들을 이야기해준다. 한 사건에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중심이 되는 가족은 미하우와 게노베파 부부, 딸 미시아와 파베우 부부, 아들 이지도르이고 크워스카, 상속자 포피엘스키 등 마을 사람들도 많이 등장한다. 가상의 공간에 신화, 성서, 민담 등의 이야기와 폴란드의 실제 역사(대략 1910~1990 초)가 섞여있다.
그래서 '마술적 리얼리즘'이 언급 되는것 같다. 일견 사람들의 일상은 리얼하게 다루어진다.
1.태고의 상징성
태고는 폴란드의 가상 마을로 공간이 되며 동시에 아주 먼 옛날이라는 시간을 뜻하는 중의적의미가 있다. 흑강과 백강, 뱀 등의 상징으로 에덴동산으로 볼 수도 있다. '신의 시간'이란 이야기들에는 카인과 아벨, 바벨탑 등의 성서의 이야기도 차용된다. 태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같은 공간에서 세계만 바뀌어진게 아닐까 생각 해본다.
2.신과 인간
🔖태초에 신은 없었다.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단지 빛과 어둠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완벽했다. (p.112)
그러던 세계에 인간들은 신에 대해 말했고 신은 인간들의 말로 자신을 인식했다고 말한다.
🔖신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난 때로 신은 자신이 세상속에 가두어 놓고 시간의 굴레에 얽매어 놓은 인간들처럼 죽어버리고 싶었다.(p.355)
인간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던 신은 점점 그 절대성이 약해져가고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까지 말했다. 세계의 변화에 따른 신에 대한 인간의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3.지식인의 우연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임의 세계와 말이 된 사람들
무기력한 상속자 포피엘스키가 랍비에게 선물 받은 게임판의 중심에 태고가 적혀 있었다. 게임판은 태고를,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과 동물들은 말이 된다.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운으로 태고의 사람들은 영향을 받게 된다. 상속자가 죽은후 게임을 같이 묻어달라는 유언을 따르지 못했다는 딸의 말을 통해 그 상징성은 더 명확해진다.
🔖"그런 유치한 장난감을 아버지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죠. 지금도 그것들이 눈에 선해요. 황동으로 만든 남자와 여자, 동물 피규어들, 나무와 집, 성을 본떠 만든 초미니 모형들, 아, 예를 들면 손톱만 한 크기의 책들과 미니 커피 그라인더, 빨간 우체통, 물지게와 양동이들......모든게 어찌나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던지....."(p.320)
미시아의 커피 그라인더, 이지도르의 우체국, 스타시아의 물지게 에피소드와 일치하는 물건들이었다.
4.짧은 인생과 쇠퇴의 노년기
이지도르가 태어난 소설 초반을 지나 그는 청소년에서 어느새 늙고 노년기가 되었고 죽었다. 그의 부모, 누나, 마을사람들도 다 죽었다. 소설 한 편에 많은 이들의 인생이 담긴 셈이다. 그들의 인생은 평범했고 시대의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렸으며 짧았다. 1, 2차세계대전, 유대인학살, 사유재산 국유화, 냉전체제와 사회주의라는 시대의 배경과 파도 속에서 평범한 개인들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게 분주히 살아가다 생의 후반 노년기가 되면 혼자가 되는 고독과 몸의 노화로 인한 어려움등에 직면한다.
🔖이지도르는 실망했다. 노년기가 되면 만물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혜안이 트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뼈마디가 쑤시고, 잠을 이룰 수 없을 따름이었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그 누구도 그를 찾아 오지 않았다.(p.352)
5.개인이 가지는 시간의 유한성과 세계의 영속성
태고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개개인의 시간은 죽음으로 끝이 난다. 탄생, 성장, 노년기의 시간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갈 수도 있고, 중간에서 갑자기 끝이 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개개인의 시간은 한편 짧았고 준비하지 못한 죽음은 어느새 앞에 와 있었다.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생을 찬미할수록, 생과 더욱 강렬하게 연결될수록 죽은 자들의 시간은 더욱 혼잡해졌고, 공동묘지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죽은 자들은 이곳에 와서야 '삶이 끝난 후'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음을 깨닫게 된다. 죽고 난 뒤에 비로소 생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 발견은 헛된 것이었다.(p.264)
반면 세계는 사람들이 남긴 자손들로 인해 계속 된다. 미하우가 전쟁후 집에 가져 온 '커피 그라인더'는 딸 미시아가 사용하고 그녀가 죽은 후 손녀가 가져간다. 마지막에 그라인더를 돌리며 소설은 끝난다. 세계는 계속 됨을 상징한다.
6.시간의 목적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첫째, 나는 어디에서 온 걸까?
둘째, 대체 뭔가를 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획득한 지식은 얼마나 유용한 걸까? 뭔가를 끝까지 다 안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셋째, 인간은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그에게 한 랍비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pp.96~98)
제목이 태고의 '시간들'이다. 이 무수히 많은 시간들은 무엇일까? 시간들의 목적은 무었일까? 각자의 시간의 목적은 다른 걸까?
이 책을 읽고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시간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한한 시간에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생각에만 빠지지 말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