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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불탈 때 - 인간을 향한 자연의 마지막 경고, 초대형 산불이 울리다
조엘 자스크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5년 4월
평점 :
연초, 캘리포니아의 대형 산불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그저 “어떡하나…” 싶은 막연한 감정뿐이었는데, 지난 3월 경남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났을 때, 대형 산불이 내 삶 가까이까지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제야 조각처럼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숲의 생태, 기후 위기, 그리고 ‘메가파이어’라 불리는 대형 화재—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읽으며 내내 인간의 역사와 긴밀하게 함께해 온 불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이제라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시작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책에서 말하듯, 인간은 “폭발하는 화산 위에 뚜껑을 덮으려는”(p.17) 시도를 반복하게 될 테니까.
불은 자연적인 동시에 인위적인 것이며, 화재는 자연재해이면서도 인적 재해이기도 하다.
그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불을 막연하게 두려워하거나 또는 완전히 지배 가능한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불을 통제하려 들수록, 오히려 “미래의 산불 확산에 유리한 조건들이 점점 더 강화”(p.17)된다. 이 책은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며, 불을 새로운 시야에서 바라보게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불이 또 다른 차원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 같기도 하고, 때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캘시퍼 같기도 했다. 이 이미지들이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해도, 그 존재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에는 어떠한 상상력이 필요했다. 불을 단순히 야만적인 적이나, 길들여야 할 야생적 존재로 간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또 하나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던 것은, 불을 중심으로 한 생태 순환의 관점이었다.
우리는 보통 생태의 순환을 ‘물’ 중심으로 배워왔기 때문에, 불을 통해 순환하는 생태계는 새로운 시도처럼 느껴졌는데, 책은 “불은 진화의 방향을 안내하고, 생물 군집을 조직하며, 물리적 세계를 생물학적 세계에 연결시켜 주는 선택적 힘이자 생태적 요인”(p.40)이라고 말한다. “인류세는 결국 산불세와 같다”(p.101)는 말처럼, 불과 불에서 파생된 관습은 인간의 생물학적 정체성 깊숙이 통합되어 있다.
자연은 불을 필요로 했고, 자연발생적이지 않은, 인간과 공존하는 불을 통해 식물은 진화했다. 그리고 그 식물과 함께 동물들이 생태를 이루며 살아왔다.
‘경관’이라는 말은 흔히 삶과 거리를 둔 장식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하지만 저자는 산불로 인해 “경관권”을 상실했다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를 잃어버리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불로 인해 과거와 연결된 가치들이 사라지고, 세계 속 자신의 위치를 잃게 될 때 우리는 고립과 단절의 감각에 휩싸인다.
📚“성경에서 황폐한 땅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사막을 의미하지 않는다. (…) 반면 인간의 활동에 의해 파괴된 땅은 황폐한 곳이다.”(p.160)
책은 말한다. 진압보다 예방이 앞서 필요하다고.
그리고 생태주의적 사고든 산업주의적 사고든,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리학, 식물학, 생태학, 기후학은 물론, 학계 밖의 존재들—인류학자, 산림 이용객, 지역 주민, 농부, 목축업자—의 참여와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균형 잡힌 불’, ‘사회화된 불’, ‘선택된 불’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
책에서 화재로 인한 정신적 상처가 장기적인 트라우마로 이어지는 사례를 많이 접했다.
이번 대형 화재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정부 차원의 심리 치료와 지원이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며.
지금 우리가 다시 바라보는 불은 단지 위협이 아니라, 다시 관계 맺고 배워야 할 어떤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