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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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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와 연봉 1억 받는 월급쟁이 중 누가 더 잘사는가? 정답은 바로 백수이다. 왜냐면 이 백수는 자산이 1000억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득불평등 지수는 상당히 양호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산불평등 지수는 거의 극단적일 정도로 심각하다. (우리나라 토지의 50%가 소수 1%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언제나 소득불평등만을 문제로 삼지 재산불평등은 잘 거론하지 않는다. 심지어 통계청에서도... 그리고 기득권층은 우리나라 양극화는 결코 심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2014년 서울대 교수들의 핫 키워드 '지록위마(鹿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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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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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와 연봉 1억 받는 월급쟁이 중 누가 더 잘사는가? 정답은 바로 백수이다. 왜냐면 이 백수는 자산이 1000억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득불평등 지수는 상당히 양호하다. 그러나 재산불평등 지수는 거의 극단적일 정도로 심각하다. 그러나 경제학이나 통계청에서는 언제나 소득불평등만을 거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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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의 역사
래리 스톤 지음, 홍병룡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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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신앙적인 것을 떠나서도 진실로 인류의 뿌리이다. 공부하면 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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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바트 D. 에르만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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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시절 교회를 다닐 때, 이런 책들은 절대로 읽지 말라는 어른들과 형누나들의 무언의 압박속에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국 나의 그 무한한 의문들과 질문들과 호기심은 교회밖으로 뛰쳐나가게 했고 온갖 세상 모든 학문들을 접하고 완전히 내 몸에 스며들게 하였다. 그렇게 오랜세월 철저한 무신론자로, 유물론자로, 구조주의자 포스트모던의 괴물이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살다가, 그들조차 아무런 해답을 가지지 않은 공허한 외침이라는 것을 깨달고 결국 다시 기독교에 귀의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 신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나선, 정말로 이렇게 성경이나 예수 비판 혹은 역사적 예수를 언급하며 온갖 별의별 자신만의 상(象)을 만들어내는 이런 현대 기독교 비판 책들의 주제들은, 이미 오래전 심지어 몇백년전에 이미 온갖 치열한 신학적 논쟁으로서 이미 끝난 문제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신학은 너무나 방대하여 일반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에 이런 책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중을 오도하게도 혹은 선동하게도 하는 것도 물론이다)

 

 나 같아도 내가 무신론자라면 이러한 '예수는 없었다', '예수는 똥을 쌌다', '사실 예수는 신화다',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했다', '예수는 짜집기이다' 등등과 같은 주제로 수 많은 책을 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증명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말 같다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것들이 세간에 자극적이고 충격을 주기에 책도 이슈화시키기 그만큼 쉬우며 대중이 나의 책을 소비하게 하는 것도 매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사실 이 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인 나조차도) 이런 책들이 더욱더 많이 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독교신앙과 신학은 공부하면 할 수록 그 깊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요즘 나는 신이 진실로 '너네들이 이 성경이라는 신의 계시가 진리인지 아닌지 따져 볼 만큼 따져보라!'라고 던져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정녕 성경이 진리라면 어떠한 철학과 사상적 매스에도 꿋꿋히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살아남았기에 현재도 믿는 것이다. 이슬람은 그것이 두려워 철저히 코란을 번역도 금지하고 감시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런 책이 이슈가 되는 걸 한편으로 굉장히 즐거워한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예수는 신화다', 오교수의 '예수는 없다' 혹은 러셀의 모든 책들, 그리고 고전으로는 해석학의 슐라이어마허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같은 위대한 책들을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기독교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모든 사상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니체인 것이다) 차라리 기독교가 믿기 어려울정도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아예 무신론으로 돌아서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신의 뜻에도 별로 합당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쩡쩡하게 믿는 사람들이 왜 믿어야 하는 지도 모른채 현재 교회를 망쳐놓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또한 반대로 이번엔 무신론을 맹목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제발 (그들 스스로도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책이 나오면 마치 자신이 비판하는 기독교인처럼 맹목적으로 아무 필터링도 없이 믿어버린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즉, 자신들도 똑같이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으려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능한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성에 입각하여 뭐든지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책의 주요 논점을 천천히 살펴보며 비평적 관점에서 포스팅할 예정이다.

 

 오늘은 피곤해서 이만~ㅋ 

http://blog.naver.com/917ph/22020737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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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돌을 옮겼는가? - 그리스도의 최후 일주일 추적
프랭크 모리슨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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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세월에 묻히지 말고 재발간되야만 하는 보석같은 책이다.

읽으면서 정말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를 정도였다^^ㅋ

 

어떻게 예수에 관한 책이 지금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스릴러노벨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이 책을 안 읽어본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한다. 간략하게 책을 소개하자면, 무신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신약성서의 모든 신화적 요소를 걷어내고 실제 기록된 사실만을 가지고 재구성하여 예수의 허구성을 주장하려다가 그만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저자의 연구기록이다.

 

 저널리스트답게 철저히 기자정신으로 하나하나 실마리를 추적하는 것이 마치 탐정소설이나 추리소설 혹은 스릴러를 방불케 한다. 내용이 탁월하고 치밀한 건 물론이고 일단은 재미가 있다.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은 사실 예수의 부활의 허구로 결말이 났었어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오히려 신약성서와 공관복음을 참으로 공정하고 진실되게 비교분석하고 파고 들어간다면 예수의 부활이 참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기독교의 역사를 현재 최대한 중립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과 초대교회의 신앙이 과연 참인지를 연구하는 나에게 이 책은 상당히 신선하였고, 과연 얼마든지 성서자체만으로 그것을 옹호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것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독자에게는 완전히 그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의 부활이 얼마나 개연성 있고 증명할 순 없지만 합리적인지'까지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처럼 실제 진실을 보기위해 예수가 허구라는 주장을 하는 책들과 반대로 같이 함께 읽기에 매우 유익한 책이다. 균형잡힌 사고와 관점을 키우기에는 매우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6장. 역사적 수수께끼

 

 ... 팔레스타인 같은 작은 나라에서 뿜어 나온 용암이 로마 세계 전체를 뒤덮기 위해서는 그 중심의 화산이 지극히 뜨거운 불덩어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건을 대하면서, 물리적 측면의 인과 관계만으 문제 삼으면서 심리적 측면의 원인을 간과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현상은 세계의 역사를 가장 크게 움직인 사건이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큰 힘이 이런 일을 일으켰는지를 알아야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우리가 이런 역동적인 힘의 근원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원료는 겨우 도마와 같은 습관적 회의주의자, 베드로와 같은 연약하기까지 한 어부, 요한과 같은 부드러운 공상가, 실용주의적인 마태, 안드레나 나다나엘과 같은 뱃사람, 불가피하게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는 여인들 그리고 고작해야 세 명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p. 127)

 

 나는 기독교를 배태시킨 역사적인 핵심 인물들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 지도자의 수모와 죽음 그리고 십자가의 충격 앞에서 휘청거리던 여러 종류의 평범한 사람들이 형성한 작은 집단 속에서 그런 추진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더욱이 그 위기 앞에서 그 집단이 와해되어 버린 사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 집단이 재결합하여서 그런 결과를 일으킬 수 있는 뜨거운 구심점을 형성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역사의 명백한 증거는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단순하고도 평범한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지금까지 우리가 연구해 왔던 풍비 박살난 예수님의 무리와는 다른 강력한 집단이 되게 한 어떤 사건이 그들의 삶 속에 들어 왔다.

 그 경험이 도대체 무엇일까ㅡ심리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혹은 두 가지 모두이든, 아니면 우리의 직접적 지식의 영역을 벗어나는 어떤 초월적인 것이었든ㅡ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문제의 요점이다. (p. 128)

 

 우리는 상황을 재구성해 보던 초기 단계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 견해를 거부했는데, 그것의 근거는 그 견해가 제자들의 도덕적 품성과 독특한 마음 자세에 모순이 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제자들을 하나의 완전한 환상의 영향 하에서 예외 없이 획일적인 정신을 갖게 된 사람들로 본다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야기된다. 수수한 어부인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성격상 의심이 많은 도마,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으면서도 그 다름대로의 맛이 있는 세리 마태, 지극히 점잖으면서도 머리 회전이 조금 늦은 빌립 등의 사람들을 놓고 볼 때, 이들 모두는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집합적 환상에 빠져서 돌아다닐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은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집합적 환상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결국 이 사람들이 굽히지 않고 당한 그 폭력과 박해는, 마음속으로는 의심을 품고 마지 못해서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무조건적이어야 했으며 그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함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더욱이 그 신앙이 조만간에 확산되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이미 확증된 증거에 의하여 사람들의 독자적인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가야만 했다. (p. 139)

 

 여기서 이 현상의 독특한 점은, 그 신앙이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예수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당시의 가장 유능한 변론가들과 투쟁하면서 그 당시 가장 탁월하고 고도로 조직된 비밀 단체가 고안해 낸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들어왔으며, 그 이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용기를 가지고 유대의 가장 예리한 지식의 중심지로 가지고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겼다. 이 갈릴리 시골뜨기들의 주장은 그로부터 20년 내에 유대인의 교회를 분열시켰으며, 가이사랴에서 드로아에 이르는 지중해 동부 연안의 모든 도시에 그들의 자취를 남겼다. 그리고 이 신앙은 50년이 채 못되어서 로마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감정에 따라 믿는 어떤 사람들의 열심과 풍문으로 들은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전부 이야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앞에는 이런 큰 신비가 남는다. 그것은 왜 승리했을까?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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