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평화 

기원전31년 악티움 해전에서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으로부터 승리 거머쥔해이다. 이집트로 도망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로마로 돌아온 옥타비아누스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하지만 기원후14년 옥타비우스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치에 물든 로마  

옥타비우스 시적 로마는 급격히 발전하여 인구가 100만이나 되는 세계의 심장이 되었다.하지만 늘어난  노예로 로마는 점점 사치에 빠지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 위해 엄청난 공사를 벌여ㅆ다. 식수와 목욕울을 대기 위해 수십리 밖에서부터 수로를 만들었고, 수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수 있는 대형 전차경주장과 원형 경기장을 곳곳에 건설하였다. 

폭군네로  

옥타비아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그의 양자인 티베리우스였다. 그뒤 손자인 칼리굴라가 이었다. 하지만 칼리굴라의 독재로인하여 그의 수하가 칼리굴라를 죽였다.네로가 그뒤로 왕위를 이었는데 네로는 모든것을 맘대로 하는 독재가 너무심해 에스파냐와 갈리아의 반란군이 네로를 쫓았다. 네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다시금 로마는 질서를 되찾아가는 번영의 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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