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쯤 갑자기 대포소리와 함께 경기도 북부지역이 포격을 당했다. 모두가 잠들었을 새벽4시에다가 늦잠을 자는 일요일이었기때문에 경기도 북부주민들은 피하지도못했다. 북한 인민군이 미군과 소련군이 정해놓은38선을 넘어서 남으로 처들어온 것이다. 인민군은 개성 의정부 춘천 강를 웅진반도등 다섯곳으로 밀고 내려왔지만 자동차고 겨우 1시간 거리에있는 서울에서는 아무것도모른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국민들이 술렁이고 있을때 이승만 대통령은 라이오로 걱정할필요없다는 뜻의 말을 전하고 국군이 3일 내지5일만에 평양을 점령할거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달랐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서 특수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피했다. 인민군이 서울로 짐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대피하기 시작했다. 한강을 건너던  수십명의 사람들은 폭파소리와 함께 다리민으로 떨어졌다. 국방부장관이 북한이 건널 다리를 폭파시킨것이었다.서울이점령당하자 유엔 이 회의를 열어 유엔군을 한국전쟁에 개입시키자는 판결이 났다. 유엔군의총사령관은 맥아더 장군이다. 맥아더장군은 인민군이 계속 진군하자 낙동강을 최후의방어선이라고 하며 낙동강을 사수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대성공으로 북한군대를막았다. 이 기세를 몰아 북한까지 돌파했는데 중공군의 개입으로 우린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유엔과 중공군이 한반도를오르락 내리락했다. 두 나라의 피해가 커지자 휴전회담을 했다. 휴전회담을 하고있을시에도 전투는 계속되었다. 한고지에서는 20번넘게 퇴각과 탈환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또 북한의 원산에는 무려861일동안 포격이 가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타결되어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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