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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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한국사 해석의 새로운 관점과 지평을 제시해왔다. 국내대학의 남한 강단사학이  조선후기 노론 사관과 일제 식민 사관을 실증사학이란 미명으로 유지하고 있는 학계 현실을 비판하면서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을 걷어낸 민중.민족 주체의 역사관을 주창해왔다. 이런 도상에서 송시열로 대표되는 중화사대주의 세럭에 맞섰다가 사형당한 백호 윤휴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것은 커다란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윤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지 340여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윤휴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극도의 사대주의,특정 사상이 지배하는 도그마(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를 깨뜨려야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윤휴의 죄는 세가지로
첫째,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주자의 학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 죄
(p80 송시열은 윤휴의 학문적 견해를 '참적','사문난적','난신','적자'등으로 성토하는것이었다.)

둘째,서인 당파의 당론이었던 북벌 불가에 저항하며 조선을 동아시아의 맹주로 만드는 부국강병을 도모한 죄,
(p196 윤휴는 청나라와 조선을 천하의 양축으로 생각했다.비록 청나라가 크지만 조선은 오삼계를 비롯한 삼번 세력과 대만을 차지한 정성공,그리고 종래의 적국이었던 일본과도 손잡으면 청나라를  꺽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셋째,사대부 계급의 특권을 타파하고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넘어선 세상을 실현하려 한 죄다.
(p197 윤휴는 북벌 기치를 높이 들면 사대부들은  이러저런 명목을 들어서 도망가기 바쁘겠지만  백성들은 크게 호응할것으로 보았다.백성들에게 이 나라는 사대부의 나라가 아니고 백성들 자신의 나라이며, 북벌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백성들 자신의 일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했다.법이나 정책이 백성들 중심으로 재정비되어야 했다.일반 백성들이 사대부에  비해서 법적,정책적으로 차별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양반 사대부의  기득권을 타파하는 법으로 지패법과  호포법을  주창했다.p208 정묘호란에서 조선국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은 신분제가  과거로 회귀한 데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윤휴는 이렇게 잘못 되돌려진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조선이 강한 나라가 될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것은 조선 지배체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윤휴는 죽어야 했고 그 이름은 조선 최대의 금기어가 되었다. 그가 송시열과 노론 기득권 세력에 의해 사문난적(斯文亂賊)과 역적으로 몰려 사형당한것이다.
윤휴는 왕과 사대부를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P 63  윤휴는 뚜렷한  스승이 없었다.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것은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컸다.특정 사고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이런 장점이 조선시대에 자유로운 사상을 감히 할 수있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시대에 이름조차도 금기가 되어버린 윤휴의  사상이 너무나 궁금했다. 책을 읽고 나서 윤휴라는  인물이 참으로 인상깊게 남는다.기득권을 과감히 탈피할수 있는 정책들과  백성들이 곧 이 나라의 주인인것을 지금 21세기와 맞먹는 민족적 주체사상들이 시대를 앞지르고 있었던 것이다.요즘 정치인들과의 행태와도 다를 바 없는 사대부들..특정사상을  지배하는 도그마를  깨뜨려야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나또한 고지식한 흔히 라떼'라는표현처럼  지금 현재 삶의 흐름에 역행하거나 안주하진 않는지,도그마에 빠져 있진 않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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