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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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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책은 사실 나와는 먼 것처럼 느껴졌다. 10여 년 전 '나꼼수'라는 걸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던 시절과, 얼마 후 그게 정말 꼭 옳은 것만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시절이 내게도 한때는 있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세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으로, 회사에선 가장 열심히 일할 직급에서 분투하고 있기에 정치까지 신경 쓸 겨를이란 (다 핑계지만..)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처음 방문한 한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집었고, 결과적으로 내 무심함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리뷰 대회에 응모하려고 책을 읽은 건 아니었는데, 결국 나 자신의 침묵이 더 무서워지는 걸 느껴 이 글을 남긴다.


이 책은 미국의 선거제도와 정당 구조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의 목소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놀라웠던 건 이 모든 일이 '합법적으로', 그리고 '절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는데, 무력, 억압, 독재가 아닌 투표와 입법, 그리고 절차와 제도 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을 거치며 조금씩 마모되는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어 끔찍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정말로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무너질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법을 지키는데도 무너지는 체제, 절차를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침묵의 쿠데타. 이 아이러니한 역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점과 맞물리며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대한민국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끝내 탄핵됐다. 이렇듯 정치권력은 전세계에서 점점 더 비상상황을 호소하며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미국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너무나 확실한 증거를 남겨 준 저들에게 역으로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참 씁쓸하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고자 한다. 무언가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 침묵이 쌓이고 굳어지면 우리는 어느새 ‘합법이라는 얼굴을 쓴 침묵’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종국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책에선 여백으로 남겨두었지만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이 책,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행동을 촉구하지 않는 대신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묻고 있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또, 무엇을 침묵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뉴스를 틀다 말고 예능으로 돌리던 순간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넘어갔던 정책 이슈들, 그리고 바쁜 일상에 정치까지 생각하는 건 힘들다고 외면했던 나의 모습이 과연 옳게 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치학 책이 아니라 ‘거울’ 같기도 하다. 내가 사는 세계,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거울 말이다. 아이들과 내가 살아갈 세상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아프고 어두운 미래를 보여준 셈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어쩌면 정말 고마운 책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독재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조력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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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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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이 사람은 말을 참 안 꾸민다” 싶은 순간이 있다.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이 딱 그랬다. 꾸밈이 없다. 돌려 말하지 않고 미화하지 않았다. 쓴맛도, 뒷맛도 없이 그냥 한 문장, 한 문장을 가감없이 던져 그려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들이 더 깊이 들어왔다. 세월을 정면으로 돌파해 낸 자가 말하는 -어쩌면 듣기 좋게 다듬어진 말보다- 그런 솔직한 말이 더 크게 와닿았다.


 이옥선 작가는 올해 일흔여섯이다. 나보다 한 세대 위. 하지만 책을 읽으며 부모님 생각이 나기보다는, 오히려 내 자신의 일상에 더 자주 눈이 갔다. 요즘 나는 어떤 어른인가. 이 나이에, 이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 아이를 키우고, 집과 바깥일을 오가며, 나는 ‘가장’이라는 말에 묻혀 살고 있는데.. 과연 나는 지금 나로 존재하는 이 모습이 마음에 드는가,와 같은 물음들이 이어졌다. 그런 한편으론 그녀의 직설적인 문장 속에서, 삶의 방향과 세기를 고민하는 내가 조금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즐거운 어른'은 다른 의미에서는 삶을 반추하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어떤 교훈이나 감동 같은 걸 건네려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도 쉽지 않았을 거다. 삶을 편집하지 않고 보여주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거나, 눈물이 맺힌다거나 하진 않을 거다(나만 그럴 수도..). 대신 오래 남는다. 문장보다는 어투가 기억에 남고, 때로는 다시 곱씹으며 내 상황에 맞게 대입 혹은 가정해보게 됐다. 그런 식으로 남았다.


 작가의 딸은 김하나 작가다. 이미 알고 있었던 지라 그 관계를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나는 김하나 작가의 책도 좋아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두 사람 모두 말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자기 방식으로 말하는 것’에 있어서는 꽤 닮았다. 나 역시 아버지다. 아직은 아이들이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나이라 그저 고맙지만, 언젠가 내가 했던 말들이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모녀 작가라는 관계 속에 내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연결시켜 보는 계기가 되어 재밌었다. 언제까지라도 아이들과 책으로 하나되길 바라는 마음이 살며시 생겨남을 느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뭔가를 더 갖게 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걸 하나씩 덜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삶의 결을 보여준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책이지 않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게 인생이다. (중략) 모든 것은 허망하게 끝이 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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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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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 편의 영화,라는 진부한 표현을 써 본다.

거의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심지어 책 속 이미지를 바탕으로 실제 배우들을 섭외해 내 머릿속에서 열연시키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제대로 달렸기에 굉장히 뿌듯하다.


하지만 아픔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대신 아파하며 이야기 들려준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그로 인해 다시 한번 내 아픔을 씹어 삼킬 수 있게 됐다.

말할 수 없는 내 어린 날의 빗금 그어진 운명을 글에게서 위로 받는 순간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위로 받고 감사하여 몇 자 적어 남겨본다.


괜스레 인생 첫 놀이기구였던 '급류 타기'가 생각났다.

휘날리는 머리로 짜릿하게 내려 가기 전, 우리는 오르막의 그 높아만 보이던 불안함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아 긴장을 풀어주었지만, 사진 속에선 그 누구보다도 무서워 하고 있던 당신.

대비할 수 없이 빨랐고, 가눌 수 없이 흔들렸고, 그저 무서웠지만 억지로 참았고, 참다 못해 소리까지 질렀고.

그럼에도 내려와서는 서로의 얼굴에 물이 튄 모습을 보며, 그 과정을 함께 했음에 마주보며 웃을 수 있지 않았던가.


그게 사람이 연결되고 나아가는 힘인 것 같았다.

소설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이 소설이 내게 힘이 된다는 걸 느꼈다.

잊고 살았던, 하지만 잊지 말아야 했던 무언가를 자극시켜 주었다.


다시 한번 소설 '급류'와 정대건 작가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짧은 기록을 마친다.




+ 어쩌면 너무 늦게 읽은 것 같지만 소중한 책을 선물해 준 북튜버 Oji님께도 감사를 전해야 함은 당연하겠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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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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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화 작가 글 굉장히 잘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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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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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들 때면 늘 엄마를 괴롭혔었다.

오래 전, 부모님이 내 목표를 지지해주지 않았던 그 장면으로 돌아가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음에도 어쩌면 가장 편한 방어 기제 중 하나였다.

그러면 나는 이내 편해졌다.

당분간은 간섭 받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제 딴에는 엄마를 손쉽게 물리친 셈이었고, 다시 똑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일상이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만을 채우는 일이었고, 생활 패턴은 모두 집 안에서 이루어 졌다.


나는 내가 엄마에게 가한 상처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나의 우울함과 좌절감,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보는 괴로움이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오래 전 그날로 돌아가 부모님이 내 목표와 선택을 지지해 줬다면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그토록 좋아하고 동경하던 훌륭한 스포츠 선수가 되어 있었을까?


수많은 세월이 지나 이제야 나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사람 성향이라는 게 있지 않나.

돌아보면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벗어나기 힘든 상황을 마주쳤을 때마다 나를 힘들 게 했던 원인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서가 아닌 외부적 요인만을 끌어내 극복하려 노력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국 그건 극복이 아니었고, 노력도 아니었다.

나의 모든 어긋난 과거를 남의 선택에 빗대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지금 내 자신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을 정당화시켰던 게 아니었을까.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생은 쉬지 않고 흘러서 그런 나도 이렇게 살아가게 하고 있다.

절대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직장인의 삶, 부모로서의 삶, 성인 남자로서의 삶.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과거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항시 내 주위에 있다.

그럼에도 돌아가선 안 된다고 말해 본다.


어쨌거나 모든 기억은 그저 추억의 대상일 뿐이다.

실패한 첫사랑의 추억, 중2병의 추억, 그리고 바보 같은 선택의 순간들도 다 추억거리다.

그 모든 게 나를 만들어 왔고, 여전히 구성하고 있다는 게 때론 화도 난다.

하지만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아팠고,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더 간절해 보일 수 있으나, 그곳엔 돌아간다 해도 정답이 없다.


혹여 정말로 그 옛날이 그리운 날엔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그 속에서는 반대로, 아쉬운 모습이 아닌 멋지게 성공한 나를 한번 그려 보자.


그럼 됐다.

그 모습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은 이젠 과거라는 어두컴컴한 맨홀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는지는 모르겠다.

세월 속에서 조각 나고, 깎이고, 결국은 다듬어지는 인생.

나도 모르게 만들어져버린 자신이 싫지 않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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