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 서울 이야기 - 우리가 몰랐던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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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뷰어스클럽의 추천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옛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옛날 서울의 거리와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팩트 가득한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 배한철, 매일경제신문사, 2025>의 표지에 있는 작은 부제들이 심상치 않다. 한양도 부동산 불패? 라든지 종로 한복판에는 떼강도가 우글! 이라든지 심지어 한양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다는 말이 그렇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궁금해진 나는 뒤표지를 보았다. 앞표지에는 궁의 사진이, 뒤표지에는 간송 미술관에 소장된 <정선 필 경교명승첩 중 송파진>의 사진이 나와 있다. 한강 줄기인 송파강이다. 이 책에서는 정치 중심이 아닌 서민이 살던 골목 이야기와 왕이 아닌 백성의 삶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현재의 이야기란 과거의 고단했던 사람들의 미래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조선시대의 서울이던 옛이야기를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울의 옛 모습에 대한 사진이 그 당시의 경제 상황과 사회 분위기를 말하는 듯하다. 옛적 서울 이야기가 바로 전 시대의 이야기라서 놀라운 것은 크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에 담긴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 책을 쓴 배한철 님은 매일경제신문사의 현직 기자이면서 경영학 박사이고 한국사 전문가다. 다수의 역사 교양서를 냈으며 현재는 성남학연구소 연구위원을 겸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 서울의 고갯길마다 서린 삶의 애환과 변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조선의 서울 한양과 그 한양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의 과거를 현장 취재하듯 파헤치면서 쓴 책이다.

 


책을 펼치면 한양의 상세한 지도가 있다. 나는 이 지도에 홀려 내가 아는 길을 따라 지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책으로 들어갔다.

 


한양은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건설됐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92~1398)는 궁궐과 종묘, 사직 그리고 관청, 시전(종로의 관허시장) 등 공공용지를 우선 배정하고, 그 나머지 공지를 왕족 이하 서민에 이르기까지 품계별로 분급했다. 도성의 면적은 한정된 현실에서 이주자가 늘면서 인구밀도가 높아졌다. 조정에서는 도성 밖에 방을 신설해 인구를 분산시키는 정책을 시행했고, 그 결과 도성 밖에서도 동대문, 남대문, 서소문 주변에 인구가 밀집하는 지역이 생겨났다. 서울의 인구 과밀화는 조선 후기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대두된다. 50~51


조선시대 한성은 도시화와 유민의 유입 등으로 범죄 발생률이 지방에 비해 훨씬 높았다. 폭증하는 범죄 해결을 위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여겨 공개 처형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이나 그 주변에서 거행됐다. 금위영이 금천교(종로구 체부동 일대 지류인 백운동천에 있던 다리)앞에 있어 사형 터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포도청은 한양 일대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기관으로, 좌포도청, 우포도청 등 두 개의 청사가 있었다. 83~84

 


한강의 넓은 강폭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한강 물밑에는 댐이 두 개 있다. 잠실 수중보와 신곡 수중보이다. 잠실 수중보는 수위 조절이나 홍수 예방을 위해 1986년 잠실대교 아래에 설치됐다. 신곡 수중보는 한강 수위 유지와 바닷물 유입 방지 등을 위해 1988년 김포대교 아래에 건설했다. 202



어린아이들은 면역체계가 형성되지 않아 질병에 취약하다. 조선시대 유아 사망률에 큰 영향을 끼친 질병은 홍역이다. 한국에서도 17세기 초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주기적으로 맹위를 떨쳐 사망자가 속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대부 남성이 의약 지식을 닦는 일은 기초 소양 중 하나였다. 210

 

영조가 사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억누르고 노비세습제를 대대적으로 손질한다. 영조 7(1731) 모계를 따라 자식의 신분을 결정하는 종모제를 법제화한 것이다. 어미만 양민이면 자식도 양인이 될 수 있게 한 한국 노비제도사에서 획기적 사건이었다. 비인간적인 노비제의 완전한 폐지는 그러고서도 1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고종 31(1894) 갑오개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뤄진다. 243


 

오늘날 서울 시민의 상당수는 과거 묘지였던 곳에서 살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게 무슨 의미인가. 서울은 조선시대 한양이었던 때부터 인구를 끌어들이는 수도였다는 점은 현재와 같다. 시대가 변하고 도시가 개간되듯이 허물고 건축되면서 수많은 이야기들도 사라지고 생겨났다. 근세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오르면 완벽하게 낯선 조선이고, 2,000년대 직전의 서울은 향수를 일으키는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오래전에 경기도민이 된 내게 고향의 의미는 지역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책은 비교적 정확한 자료를 중심으로 서울이 갖고 있는 역사 문화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이 낮과 밤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서울이 한양이던 시대의 조선시대 서울과 그 서울의 역사를 이룬 옛적 서울 이야기가 궁금한 이가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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