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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평점 :
사사키 아타루의 푸코, 라캉, 르장드르. <야전과 영원>의 가독성이 어떻느냐 묻는다면 한자와 미문으로 가득한 서적이라고만 답하겠다. 판단은 상상에 맡기고 싶다. 단어 옆의 한자가 참 다행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단어의 부차적인 뜻을 자주 사용한다. 어쨌거나 흥미로우며, 읽어볼만한 인문서라는 점.
그러나 그들은 정말 대립하고 있을까? 그들의 대립은 대립한다고 여겨진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정작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자기들이 오랫동안 전개해온 이로를 파탄 나게 하는 비약과 실추의 바로 그 순간에, 자기의 얼굴을 잃고 속단하기 힘든 창화唱和를 시작하는 때를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라캉의 제자들이 라캉의 글에서 눈을 뗄 때, 푸코주의자들이 푸코의 텍스트에서 뒷걸음치는 그곳에서, 둘은 기묘한 제창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p. 18)
르장드르가 그들을 "법 바깥"에 있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은 <거울>=근거율과 자기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즉 법 바깥에 있어서가 아니라 법과 자신을 구별하지 못해서 전제군주가 되는 것이다. "나는 법이다" "나는 근거율이다." 이것이 그들이 단언하는 "전제"다. "여기에 써 있다. 그러니 죽여라." 냉철한 르장드르의 이로에 따르면 완전히 합법적으로, 법 내부에서 사람은 전제적 원리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 힘들다고 르장드르는 거듭 말하지 않았던가? (p. 547)
결론은 이렇다. 모든 권력은 장치이고 몽타주다. 그것은 "현실에 있어서" 효력을 낳는다. "포지티브"한 효력을 낳는다. 그러나 그 자체는 날조된 것, 우연한 인위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이를 실체화해서는 안 된다. 이를 결코 변경 불가능한,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p.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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