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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품절
여성 비율이 1% 안팎이던 신문사 편집국에서 일하면서 나는 성차별을 받지도 하지도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비영리기구에서 근무할 때는 ‘달라서 더 아름다운 우리’라는 자료집을 바탕으로 인권 감수성 교육을 확산시키기 위해 수많은 교사와 학생과 공무원들을 만났다. 그런데도 내 안의 차별을 까맣게 몰랐다는 걸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깨달았다. 중요한 결정을 망설이는 시간이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결정 장애자’라며 저자처럼 한탄했으니까. 이 책은 차별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모습으로 삶 속에 얽혀있는지 여러모로 절감케 했다. 저자의 웬만한 설득력이 아니라면 묘한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차이 때문에 차별하면 안 된다고 평생 외쳐왔는데 차별주의자라니. 하지만 차별을 부정하지 말고 더 발견해야 한다는 저자의 나직하고도 강한 목소리는 강한 설득력이 느껴진다. 고정관념과 적대감이 만연한 일상에서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라는 말도 울림이 크다. 구체적인 사례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이라서 더욱 설득력있게 들린다. 저자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모르는 채 우리는 우물쭈물하거나 그냥 실수해버리는 게 아닐까.
회식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동료들이 허투루 내뱉는 비하성 우스개 때문에 곤혹스러운 직장 여성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라는 저자의 말을 따른다면 한결 현명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더 불공정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역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확신 때문에 더 편향되게 행동한다고? 편견의 고삐를 절대 늦추지 않고 불공정하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고? 학식과 경험이 많고 소위 출세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오히려 저항하는 경우가 흔하다. 차별에 대한 논의 자체를 불편해하는 ‘불평등주의자’들이 군림하려 들면서 존경까지 탐하는 모습은 얼마나 꼴불견인가. 불평등이 불편한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변화의 무게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 이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수고로움이나 불편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가치와 지향에 대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소수자이고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정신이 세상을 변화시켜왔다며 저자는 묻는다.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차별받지 않거나 차별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톺아보고 나아갈 방향과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더할나위없이 미더운 목소리다.
대중소설이나 유머집도 아닌 이 책이 30만 명 넘는 독자들과 이미 만났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누가, 혹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안목을 키운다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머물 수 없을 것이다. 차츰 ‘진정한 평등주의자’로 변신하는 사람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는 지렛대가 되지 않을까?
세상을 분노와 혐오로 들끓게 하는 차별이 악성 바이러스처럼 번지는시절에 뒤늦게나마 이 책을 만나서 참 기쁘다. 강력한 백신을 접종한 것처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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