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위로
배정한 지음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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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이렇게 매력적인 공원이 많다니!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연구가 업인 교수님의 수고 덕에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우리나라의 공원에 대해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저자 배정한 교수는 조경학 전공이다. 그래서인지 공원의 형성 배경, 역사, 의미 등을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인문학적으로 살펴보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글에 깊이를 더해준다. 인용된 책들도 많은데, 읽어보고 싶은 매력적인 책들이어서 시간될 때 한 권 씩 읽어보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공원의 매력을 흠뻑 느낀 뒤에는 부록으로 실려있는 ‘저자가 추천하는 공원 리스트’를 참고해 직접 공원으로 길을 나서기도 좋게 구성되어 있다.

‘그곳을 걸으면 눅눅한 머릿속이 바삭해진다’는 문장이 책에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 정도로 공원에 대해 저자분이 가장 명쾌하게 정의내리는 문장인 것 같다. 답답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공원으로 자주 탈출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공감하는 글귀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책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일산 호수공원은 나에게 가장 편안한 휴식의 장소다. 모스크바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도 고리키 공원을 거의 매일 2시간씩 걷곤 했다. 그렇게 공원을 걷다보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어느새 차분해지는 걸 경험한다.

도시의 삶은 우리를 알게 모르게 숨막히게 한다. 구조상 그렇다. 이런 도시의 삶에서 공원은 우리에게 큰 쉼이 된다. 그런데 도시공원은 19세기에 접어들어서 본격적으로 생긴 근대 도시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낳은 여러 사회 문제 즉 인구 폭증과 과밀, 빈부 격차와 노동자의 여가 공간 부족, 위생 악화와 전염병 유행을 치유하는 공간적 해독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p.162)

우리는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공원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공원이 실제로 해독제의 역할을 했음을 경험했다. 공원은 집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처럼 여겨졌다. 이와 관련하여 뉴욕 센트럴파크의 설계자, 도시 사상가, 사회 개혁가인 옴스테드의 공원론이 잠깐 언급된다. 옴스테드는 공원이 열악한 도시 위생을 개선하고 시민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며 공원이 “도심에서 자연으로 최단 시간 내 탈출”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비전을 펼쳤다. 그리고 현재 이런 옴스테드의 공원론을 재해석한 많은 전시, 학술대회 등의 시도가 있다고 한다. 도시공원의 중요성과 효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책에는 공원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도 실려있다. <도시를 느리게 걷기>라는 꼭지에는 걷기를 좋아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도시와 조경 전공인 교수님에게는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경하는 게 ‘일’이기 때문에 속도, 효율, 성과를 의식하느라 힘에 부치고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걷기의 매력을 깨달은 순간 일상 속에서 소박한 걷기 습관이 생겼다.

바로 다음 꼭지인 <도시에서 길을 잃다>에서는 길을 잃는 기쁨에 대해 말한다. 어느새 몸의 일부가 된 스마트폰 때문에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즉 ’미지의 땅‘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곳이 파악되고, 모든 동선은 효율성에 따라 계산된다. 그러나 우리는 내심 계속해서 길을 잃기 원하며 그로 인한 세상에서의 경이를 발견하기 원한다. “세상의 모든 경이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p.274) 그렇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내가 또다시 걷기의 즐거움, 길잃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자발적 표류, 자발적 길 잃기를 허락하기 위해 이번 주말은 어디로든 공원으로 떠나야겠다. 답답하고 생각이 복잡해지기 쉬운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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