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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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로 가는 기차여행에

동무로서

시집을 집어든다.

내가 시집을 집어들어도
이 녀석은 싫다 좋다 말이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집이니 의사표현이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ㅎㅎ

어떤 연유인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시집의 첫장에는 4월 1일 내 기억이 적혀있다.

"나 아닌 존재를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존재라해도
극진히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체험으로 시작하는
2008년 4월의 첫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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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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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여성이여서인지
생명의 탄생이라든가
음식 또는 음식의 재료가 되는
생물에 대한 독특한 시선이 신선하다.

생명을 중하게 여겨야 겠다는 나름의 다짐도 하게되고...

여러가지 감탄을 하게 하거나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거나
엷은 미소를 띄게 만드는
기발한 표현들도 참으로 좋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시해설은 어쩜 그리 어려운지.....

시인도 놀랍지만, 시평론가들도 한가닥 해주신단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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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한 식사

                                                   김선우

 어떤 이는 눈망울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
식주의자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
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
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
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
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
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
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둥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상품과 화폐만 있
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나 아닌 것의 숨을
끊을 때 머리 가죽부터 한 터럭 뿌리까지 남김없이
고맙게, 두렵게 잡숫는 법을 잃었으니 이제 참으로
두려운 것은 내 올라앉은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
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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