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평점 :
문재인 대통령의 5.18 연설이 화제다. 생방으로 그 모습을 보았던 나도 눈물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며칠간의 그분의 행보를 보면서 내 마음이 일렁이는 걸 느낀다. 암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화제가 되고 인터넷 기사가 많이 쏟아지고 그에 달리는 댓글도 어마어마한데 그 댓글들 중에 '북한군 개입에 대해 설명하라'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한번씩 5.18을 관련한 영화나 유명인의 말에 달리는 댓글에 꼭 이런 댓글이 보였었는데 대체 이 말은 어디서 나온걸까, 내 지식이 짧아서 누군가 물어보면 자신있게 답해줄수도 없어서 답답하기도 했고 나 또한 궁금했다.
광주 5월 민중항쟁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 북한군 개입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최근 기밀이 해제된 1급 비밀문건에는 1980년 5월 9일 열린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이 "북한은 한국의 정치 불안 상황을 빌미로 한 어떠한 군사행동도 취하는 기미가 없다."고 보고했다. 또한 6월 2일의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극비문서에는 "현재까지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김일성은 남한에 위협이 되는 북한의 행동이 전두환을 돕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미국과 한국군의 주요 정보기관이 모두 첩보의 신빙성을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이를 무시한 채 '북한의 남침'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 49
북한의 남침의 위혐이 사실이라면 휴전선에 병력을 증원 배치시키는 것이 상식적인데, 전북대, 충남대, 전남대, 광주교대, 조선대로 배치한 것 부터가 어불성설이라고 꼽는다. 이것만 보더라도 전두환이 주장하는 '북한의 남침'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나는 요란스런 군홧발 소리와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40~50명의 공수들이 한꺼번에 나를 향하여 곤봉을 휘두르고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학생이 아니다'고 황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공수들은 나를 에워싸고 군홧발로 차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몸 전체를 두들겨 팼고 곤봉과 휴대하고 있던 M16 총 개머리판으로 집단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내가 공수들에게 왜 맞아야 하는지 의문스러웠고 맞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억울했지만 엄청난 공수들의 힘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 71
동료 직원 동생의 결혼식을 다녀온 공무원 김정섭(당시 나이 34세) 님의 위와 같은 증언만 보더라도 군인들이 북한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국민들을 짓밟았다는걸 보여준다. 수금하기 위에 사물실에 나온 사람도 배달 학생도 군인에게 무참히 짓밟혔다는 증언도 나온다. 5월 18일 하루동안 114명의 대학생, 35명의 전문대생, 6명의 고교생, 66명의 재수생, 184명의 일반 시민이 연행되었다고 한다.
실제 연행되어지고 부상당한 사람은 더 많다고 하는데 '북한군 개입'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 많은 연행자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해? 백번 양보해서 시위했던 학생들을 연행해야 한다고 치자, 그럼 왜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들까지 얼굴을 걷어차고 다른 지역에서 온 신혼부부까지 끌고가 두들겨 패느냐는 거다.
공수부대 현장 지휘관조차도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 심했는지를 검찰조사에서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당시 광주시민의 정서를 생각지 않고 게릴라전을 전문으로 심한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진압부대로 사용한 것은 군 수뇌부의 잘못이라고 생각되며, 저희로서는 훈련한 대로 시위진압을 하려 했으나 시위 주동자를 끝까지 추적해 제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군중들의 저항을 물리치려다보니 과격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 94
현장을 취재했던 AP통신 테리 앤더슨 기자도 "이는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말했다. 공수부대는 시위진압을 위해 폭력을 쓴 게 아니라 체포를 위해 폭력을 쓴 것이다. / 99
내가 80년 9월 생이다. 우리 엄마가 나를 품고 광주 그곳에 있었다. 남편을 기다리다 공수부대의 총에 맞고 돌아가신 어느 임산부와 아기의 얘기를 듣고 그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될뻔 했구나란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어두운 공간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는게 힘들어 영화관에 가지 않았던 엄마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보았던 적이 있다. 엄마는 그 심리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관객석에 앉지 않고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에 서서 그 영화를 관람하였는데, 영화에 나온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영화가 실망스럽다고 했다. 나는 5.18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던게 이 영화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여전히 '계엄군에 의한 사살자는 단 한명도 없다' '도청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시민군들끼리의 오인사격의 의한 것' '북한군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5.18에 대해서 대법원이 어떻게 판결하였고, 그것이 어떻게 유네스코까지 등재되었는지 한번은 눈여겨 봐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속는셈치고 딱 한번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이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