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모독소
김유경 지음 / 카멜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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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와 그의 부인 수련과 어머니는 분명한 원인도 모른채 깊은 골짜기에서 정치범으로써의 끔찍한 삶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서 질병과 영양실조로 맥없이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원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궁금함과 그에 따른 분노와 설움은 점점 희미해지고 수용소의 시스템에 순종하게 된다.


수련은 수용소에서 관리위원회 통계원이 되면서 감당하기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수련은 그것이 보위원 최민규 대위의 개인적인 사심임을 알면서도 수용소 안에서 그나마 사람답게 살수 있는, 남편과 어머니를 부양하고 곧 태어날 원호의 아이가 이 끔찍한 수용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존재였기에 그를 거부할 수 없다.



수용소 사람들이 왜 짐승처럼 설설  기면서도 기를 쓰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는지 그녀는 알 것 같다. 수용소 사람들의 생존 본능은 죽음의 공포나 목숨에 대한 애착만이 아니다. 그것은 원통함이고 억울함이기도 하다. 기를 쓰고 살아남음으로써 함부로 죽이려는 힘에 엇서는 눈물겨운 항거이다. / 155

수용소 사람들은 늘 무리지어 일하지만 완벽하게 혼자다.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홀로 존재한다. 혼자의 몫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혹독한 노동과 배고픔, 추위 등 모든 고통들은 온전히 자신이 소화해야 할 몫으로, 나누어줄 데도 없고 손을 내밀어줄 사람도 없다. 남을 위해 슬퍼할 줄도 모르고 다른 이의 고통은 나의 고통보다 크지 않다. 옆에서 누가 매를 맞아 피를 토해도 나 아니면 그만이고 그자처럼 죽지 않기 위해 더 이기적으로 혼자여야 한다. / 179


민규는 수련의 문건을 꺼내 '사망'이라고 쓰고 소장에게 보고서를 올린다.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나타났던 혼자 바라보고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그 소녀였던 수련, 민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들키지 않게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욕망을 거스르기도 했지만 수련의 자살로 인한 사망 사건을 순조롭게 종료시키는 것이 그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였다.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들어온 김유경 작가는 북에 둔 가족들이 행여 소설 속 원호와 수련과 같은 삶을 살게 될까봐 가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보고 느꼈을 북한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인간모독소>, 인간의 존엄 따위 찾아보기 힘들었던 북한 수용소의 적나라한 내용이 예전에 읽었던 한수산 작가의 <군함도>와 오버랩 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그들이 안타깝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건 <군함도>는 역사로 기록된 과거형이지만 <인간모독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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