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자식을 품은 아내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를 따라간
아버지, 수십번 사랑하고 수십번 배신을 당했지만 그래도 사랑을 구걸하는 어머니에게서 자란 지니는 출생률이 높아 빈둥대는 젊은이들이 많고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다압 출신이다. 다압에 사는 청소년들은 의식주와 의료보험을 제공받을 수 있는 렌막에 가는걸 꿈꾸고 지니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지니는 다압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진다이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렌막 시티로 밀입국을 한다.
여기까지 읽고 속이고 속여 타국으로 보내어 성매매로
끔찍한 생활을 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처럼 지니도 그런 상황에 놓인걸까 했는데 사랑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렌막 시티라는 독특한 소재답게 지니가
진다이를 통해 하게된 일이, 엄마라는 수식어가 달린 내게는 불편하고 경악스럽게 다가왔다. 어디서 태어난지도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모를 갓난아기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비싼술을 사 먹는 남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지니의 일이었다.
나도 알아. 이 아기는 밤마다 아빠가 바뀌겠지. 이름도 여러 개일 테고.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심사에서는 늘 떨어지니까. 먹고 자는 건 국가에서 대 주지만 정말 사랑하는 것은 가질 수가 없어.
/ 51 다미 아빠
평생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남자는 캥거루 클럽에서 비싼
돈을 주며 아기를 안아보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와 눈을 맞춘다. 그런 아기를 생산하기 위해 진다이의 캥거루 클럽의
뒷면은 나와 같은 아기 엄마 독자라면 약간 멘붕이 올 것 같다.
그렇지만 말이야, 우리가 놓친 게 있어. 성욕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사랑마저 포기하면 안 되는
거였어. 성욕이 다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에는 성욕도 포함돼 있거든. 우리는 불필요한 성욕을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꼭 필요한 사랑까지
국가에 내줘 버린 거야. 그걸 늙어서야 깨달았어. / 123 대반 할아버지
복합예방접종으로 성욕을 억제하는 렌막의 시스템 아래에서
성장한 소우는 그 바늘 주사가 무서워 친구 킴의 도움으로 매번 접종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자사람친구로만 여겼던 킴에게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과 몸의 변화로 혼란스럽다. 그즈음 우연히 캥거루 클럽에서 뛰쳐나온 지니를 만나게 되고 그는 지니와 지내면서 렌막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 곱씹게 된다.
도피를 하게 된 소우와 지니,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대반 할아버지와 술미 할머니, 추이와 자유지역 사람들, 그들이 불리할 줄 알면서도 렌막을 상대로 벌이는 투쟁, 지금 당장 세상을 뒤집을순 없지만
그게 불씨가 되어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들의 마음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촛불 민심과도 오버랩된다.
이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아기를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
소재가 불편하게 다가왔는데 마지막장을 덮고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걸 새삼 깨닫고보니 <해방자들>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만 치부하기엔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