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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사람이란 가지가지를 체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28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회학자 기미 마사히코는 듣는다.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이야기를 듣는다. 듣는 사람에게는 보통의 이야기지만 말하는 사람에겐 특별한 이야기다. 무수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흘려보낼수 있는 보통이자 보통이 아닌 특별한 이야기다. 그런 특별한 보통 이야기가 모여 사람이 사는 세상, 세계가 된다.
나아가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기반을 이루는 서사는 단 하나가 아니다. 애초에 자기라는 것은 다양한 이야기의 집합이다. 세계에는 가벼운 것이나 무거운 것, 단순한 것이나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사가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자기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 60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 혹은 배신이 존재하듯 이야기(서사) 속에서도 신뢰와 배신이 존재한다. 그중 신뢰 보다는 배신이 임팩트있게 다가온다. 그렇게 믿었던 것이 뒷통수를 후려 갈기는, 허무해져버리는 순간이 된다.
아버지는 가정폭력으로 수감되고 매춘을 행하던 엄마는 사라진다. 남은 아이들은 보육시설로 맡겨져 그들이 사는 집은 쓰레기가 가득한 빈집이 된다. 하지만 아래층에 사는 사람은 천장에서 나는 악취와 해충 때문에 괴로워하고 급기야 민원을 넣게 된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 입회 아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눈에 보이는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집이더라는 거다.
앞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이런일이나 궁금한 이야기 Y에서 흔하게 봤던 광경이라 역시 그러면 그렇지 했는데 뒷부분에 깨끗한 집이라는 진실에 허를 찌른다. 나는 무엇 때문에 당연히 그럴꺼라고 단정지었을까? 세계는 서사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서사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품고 들여다본다 한들, 자기 안에는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단지 거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긁어모은 단편적인 허드레가 각각 연관성도 없고 필연성도 없이, 또는 의미조차 없이, 소리 없이 굴러다닐 뿐이다. / 187
우리는 자잘한 단편이기 때문에 자신의 (올바름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그 올바름이 누군가에게 닿을지 스쳐지나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거라곤 이야기를 계속 던지는 것, 누군가는 쓸데없는 개입을 하는거라고 치부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점점 혼술과 혼밥에 익숙해지는 사회가 오고 있다. 상대방의 기분을 굳이 맞춰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스스로 말할 기회를 박탈하는 그런 사회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한편으론 남에게 나의 실패나 두려움을 보여주지 않게 된다. 올바른지 아닌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완전한 내면에 갇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타인에게 기대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너와 나의 단편적인 이야기들... 결국 나는 혼자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함께하길 원한다. 그래야만 점점 배타적인 이 사회를 버텨낼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