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짤막한 수필들은 마치 남의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단편소설이라지만 가지각색의 사연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소설편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었다. 글 사이에 글과 어울리는 사진들도 눈을 즐겁게 했다.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러스트가 아닌 실제 사진들은 수필의 특징과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친숙함을 더 해주었고 수필답게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볼 수 있었다.
철학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 속에서 '짜장면'은 매우 획기적인 수필이었다. 수필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은 하루를 일기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중국집의 풍경을 말하며 그런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글쓴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웬만하면 근사한 곳에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로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무척 끌렸던 '가을 나무'에서 작가는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옳고 마땅하다고 알아 왔다고 한다. 그 뒤로는 내 조그만 뇌로 이해하기엔 버거운 문장들이 많아 나서 자라서 시들어 죽는 것, 또다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성장을 거쳐 영원한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이러한 일 자체가 이미 대자연의 법칙을 똑바로 증명해 보여 주고 있다는 말. 계절의 변화가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니 계절과 가을이 주는 진리를 생각해 보았다.
'푸를 청, 봄 춘'. 청춘. 글쓴이는 말한다. "청춘은 갔다."라고 말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젊은 것만이 청춘은 아니라고. 어쩌면 아직 우리에게 청춘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어떻게 오지도 않을 걸 갔다고 할 수 있느냐고. 내 나이 아직 10대. 과연 나에게도 지금이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삶이 끝날 때까지 내가 청춘이라는 것을 겪을 수 있는 것인가.
'토실을 허문 데 대한 설' 겨우 한 장. 이글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대로 살라고.
'슬픔에 관하여'. 유난히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은 요즘. 슬픔은, 아니 슬픔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하고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아닐까?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슬픔이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해야 맑은 세계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지금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어렷풋이 의미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구두'라는 수필에서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건,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참 웃기면서도 슬펐다.
제 딸의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