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관찰학 입문
아카세가와 겐페이.후지모리 데루노부.미나미 신보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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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기웃거리기를 좋아한다. 새로 붙은 간판이나 포스터를 발견하면 꼭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여행을 가면 맨홀 뚜껑 디자인을 본다. 출근 시간 버스 정류장에사 늘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차림, 스쳐가는 버스 광고, 공연 현수막 같은 것들이 다 흥미롭다. 그래서 사람이 붐비는 건 싫지만 도시는 좋아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노상관찰학’이라는 용어에 매료되었다. 내가 혼자 즐기던 것들을 함께 하던 이들이 있었다니!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그들은 ‘토머슨’ 즉, 삭제된 곳에 남겨진 것을 찾아 관찰한다. 이것은 한때 실용적이었지만 지금은 실용성을 잃은 부분이다. 목적지 없이 오르내리기만 가능한 순수 계단, 비를 가려줘야 할 (우체통이나 초인종 같은) 대상이 사라졌지만 벽에 붙어 있는 차양 같은 것들이다. 실려있는 여러 사진들 중 저항 없이 웃음이 터진 사진은 벽에 달린 셔터다. ‘일상이 토머슨’이라니.

이렇게 토머슨은 예술과 기록학에서 조금씩 벗어나 재미를 추구한다. 이것은 시스템화되는 순간 재미가 사라진다. 진짜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 노상관찰학자들이 관찰한 결과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일본은 오타쿠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든다.

토머슨은 도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이다. 종종 내가 사는 구축 아파트에서도 토머슨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일주일 중 하루 자동차를 안 타는 ‘무지개 운동’ 벽보인데, 지금은 무지개라고 하면 퀴어가 떠올라 “1997년에 무지개 운동이라니! 그 시절 사람들이 더 진보적이었다!”며 이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렇게 오래된 공간에선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뒤틀린’ 것을 찾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만 지나면 재개발을 해버려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들어가는 것이 정이 없달까, 편리하고 깔끔하지만 지루하다.

노상관찰학이라는 용어도 신선했지만, 노상관찰학의 실제 사례를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소설을 쓴다면 노상관찰자를 등장 인물로 넣어보고 싶다. 디자인 분야의 책이고 잘 모르는 일본 예술가들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조금 낯설긴 했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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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라픽스 @ahngraphics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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