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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품절
늦은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라탄다. 빈자리에 앉아 SNS에 접속한 내 시선이 향한 곳은 20~30대 평균 연봉을 도식화한 게시물. 댓글 창을 눌러보니 무분별한 혐오의 표현이 넘쳐흐른다. 월급으로 서열을 만들고 ‘00충’ 등의 말로 불특정 다수를 호명하는 사람들. 날 선 조롱으로 가득한 그곳에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아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피로감에 눈을 감으려는 그 순간, 어디에선가 낯선 언어의 대화가 들려온다. 곁눈질로 옆 좌석을 관찰하니 이내 모든 감각 기관이 그들이 외국인임을 알린다. 판단이 끝나자 휴대폰을 열고 친구에게 짜증 섞인 메시지를 보낸다. ‘요즘 외국인이 왜 이리 많아?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그렇다. 나는 차별당하는 사람이자 차별하는 사람이다. 내가 당하는 차별에 분노하면서도 타인을 수많은 카테고리로 구분 짓는 모순을 가진 인간인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러한 다중성을 생각할 때 차별의 현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야 내면화된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쉽게 읽기 힘든 책이다. 내가 그간 쌓아 올린 수많은 편견의 벽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니까. 차별의 민낯을 들추는 그 선명한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부끄러움이 몰려오고, 때로는 작은 위선조차 버리고 내뱉은 수많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안다.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 불편한 감정을 깨끗이 소화해야만 한다는 것을.
오늘도 평등을 허무는 날카로운 생각들이 이 땅을 가득 채운다. 때로는 일말의 선량함조차 포기한 이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수시로 생각의 청진기를 들어 개인과 사회에 내재한 여러 모양의 차별을 진단해야 한다. 그래야 연대라는 형태의 치료약으로 차별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차별을 발견하는 청진기 역할을 수행하는 책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더 많은 이들이 읽게 되기를, 그리하여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을 보태며 책장을 덮는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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