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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꿈 ㅣ 트리플 16
양선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평점 :
100쪽 분량의 이야기를 다 읽어내는데 솔직히 좀 힘들었다. 작품이 좋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내용도 묘사도 구성이나 완결성도 딱히 흠잡을 데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흠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읽는 독자도 아니고. 즐거우려고 하는 독서에서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겨 나갈수록 (뭐랄까, 평지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은근한 경사가 있는 길이었다는 걸 다리가 깨닫게 된 것처럼 마음의 걸음이 느려지며) 읽기 힘들었던 건 좀 사소한 이유들이랄까, 하지만 때로는 사소함이 가장 커다란 장벽이 되기도 한다. 읽기 힘들다고 느낀 하나의 이유는 작가의 단어 선택인데 이 작품에만 해당되는 의도인지 아니면 작가의 고유함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일상적인 단어가 아닌, 딱히 어렵다고 할 수는 없지만 딱딱하고 격식있게 느껴지는 단어들의 선택이, 아니 물론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정작 그런 단어가 주변의 문장이나 문맥과 어울리느냐 하면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는 것. 내게는 문장과 문맥과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위한 섬세한 단어 선택이 아닌 단어를 위한 단어 선택으로 느껴졌다. 한두번이 아니고 몇번이나 계속 그런 단어들에 걸려 넘어졌다. (이런 넘어짐이 아닌 작품이 만들어내는 진짜 경험들 속에서 넘어지는 거라면 정말이지 몇 번이고 넘어지고 고꾸라져도 환영이다) 이런 단어의 선택으로 인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작품 속 인물의 특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인물 A와 인물 B가 하는 말에서 같은 특징이 드러나는 언어 사용이 느껴진다는 것. 화자인 '그'와 택시 기사 할아버지가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의 특징이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 인물들이 낯설고 흔하지 않은 단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그것도 구어체를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데 이건 '그'의 목소리도 기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아니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건 누구의 목소리인가? 인물들은 인물 자체로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묘사하고 싶은 순간)에 도달하기 위한 목소리 없는 배우처럼 존재하는 걸까.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이 드냐면 (물론 나라는 독자 한 명에 대한 얘기다)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목소리도 좋고 묘사도 잘하고 유능한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한 나머지 너무 즐거워하는 느낌이랄까. 독자도 같이 즐거워하고 싶은데 (물론 즐겁지만) 나보다 더 즐거워하는 이야기꾼을 바라봐야 하는 그런 느낌. 그래서 이 모임(작가와 작품과 독자)에서 독자인 내가 제일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은 작품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뒤에 수록된 작품에 대한 에세이에서 더 강하게 느꼈다. 작품은 작품 안에 무한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은 작품 속에서 음악처럼 메아리처럼 쏟아지는 화음처럼 분명하게 들리지만 결코 보이지는 않는 상태로,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너무 많은 이야기는 작품이 품은 음을 단선율로 만드는 게 아닐까. 작품이 단정하게 접혀 캐리어에 잘 들어갈 수 있는(지퍼를 닫을 수도 있는) 모양이 되길 원하는 게 아니라면. 활주로를 자유롭게 내달리는 녀석처럼 작품에게 싱그러운 탈출의 기회를 주고 싶다면.
너무 부정적인 얘기만 하게 된 것 같은데 사실 사소한 삐걱거림을 빼고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장면을 적어둔다.
"죽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죽어서 싱그러운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고요?"
(조심스럽게 드는 생각, 작가는 독자를 조금 더 믿어도 좋지 않을까)
"위대한 작품은 예술가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때 극복은 작품에서 약점을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작품이 약점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는 것이다."(타르코프스키, 『시간의 각인』)
(같은 책)"예술가를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감상하고 수용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 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할 때처럼, 아니면 적어도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처럼, 특별한 상태의 영혼, 아주 순수한 정신적 잠재성을 보유해야만 한다."
나는 이 문장이 예술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독자를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독서는 작가와 작품과 독자 사이 무언의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행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