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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들 - 우리의 시간에 동행하는 별빛이 있다 ㅣ 들시리즈 3
이주원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8월
평점 :
1.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빛, 행성, 사람들』의 추천사에 대해 적어두고 싶다. 그 책은 물론 책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이주원 작가의 추천사가 있어 조금 더 반짝였다(고 나는 느꼈다). 그러니 내가 반했던 글을 여기 적어두고.
"때론 수백 광년 떨어진 별보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이를 이해하는 것이 휠씬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뿐인가. 내 마음의 소리는 세상 속 잡음에 섞여 희미해진지 오래다. 나를 비롯하여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광활한 우주속에서 작은 신호를 찾아 헤매는 천문학자의 일과 닮아 있다. 긴 시간이 걸리고 약간의 우연도 필요하며 희미한 신호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한편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겨 불안과 분노, 슬픔이 스며들지도 모르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로 이별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노력했다 한들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고, 타인에게는 시간 낭비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실패가 두려워 눈과 귀를 닫고 마음을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를 말이다. 그러곤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난대도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위로를 건넨다. 실패해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노력을 멈추지 말자, 우린 우주를 알고 싶어 하는 만큼이나 서로를 알고싶어 하는 존재들이니까."
2. 책날개의 작가소개 읽는 걸 좋아하는데 이유는 첫째, 저자에 대한 의외의 정보를 알려준다. 둘째, 저자의 다른 책들(특히 제목, 생각보다 제목만으로도 굉장히 즐거운 책들이 많다)은 뭐가 있나 알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 소소하게 즐거운 문장을 만나기 때문인데 이 책에는 세번째 즐거움("나의 실패를 즐겁게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이 있었다.("언젠가 사무엘 베케트는 이렇게 썼다. "시도했고,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하기. 다시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3. 헬렌 고든, 『깊은 시간으로부터』에 나오는 구절.
"나는 지질학자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다르다는 점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절반은 우리가 인간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 속에서, 절반은 더 거대하고 더 이상한 규모의 시간, 즉 깊은 시간deep time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의 시간이 초, 분, 시, 년으로 측정된다면, 깊은 시간은 수만 년, 수백만 년, 수억 년의 시간을 다룬다. 그런 아득한 시간을 생각하면 살짝 현기증이 나는 기분이 든다. 깊은 시간 속에서 산다는 것은 조금 다른 곳을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깊은 시간 속에서는 지난주, 작년,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100만년 전, 5,000만년 전, 5억 년 전에 일어난 일도 중요하다. 우리가 바로 지금 이 특별한 순간, 이 특별한 장소에 있는 이유는 그런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의 연속으로 설명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천문학자들(혹은 별을 바라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를거라 생각한다. 아득하고 깊은 시간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의 글을 좋아하고.("시간이 흘러도 우주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고 우리는 항상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을 것이다.")
4. 어릴 적 별이 쏟아지는 제주 밤하늘 이야기(아마도 밤하늘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다들 이런 순간이 적어도 한 번쯤은 있었을 법한데 어린 칼 세이건에게도 있었다.
"겨울에 일찍 잠자리에 들면 창밖으로 별을 볼 수 있었는데, 별들은 우리 동네의 다른 무엇과도 달라 보였습니다."(『칼 세이건의 말』)
별이 궁금해진 어린 칼 세이건은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어 도서관에 가 별에 관한 책을 읽는다. "그때 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던 순간, 우주의 방대한 규모가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거기에는 뭔가 아름다운 것이 있었습니다.")부터 천문학과 함께 보낸 십대 이십대 시절 이야기까지, 천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오히려 별을 거의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이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캄캄한 학교 운동장에 누워 별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더불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의 단정한 문장들은 언제나 읽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자세히 보고 물어보고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느끼는 것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스탠드를 켜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뒤, 반으로 접은 A4 용지에 문제의 풀이 과정을 세세하게 적고 나면 자정을 휠씬 넘은 시간이 되곤 했는데, 그 고요함 속에서 뿌듯함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5. 세페이드 변광성에 얽힌 얘기, 빅뱅이론의 증거를 발견하는 에피소드도 즐거웠다. 빌 브라이슨의 책에도 언급되는 잡음.
"한편 우리도 우주 배경 복사 때문에 생기는 잡음을 언제나 경험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이 없는 채널에서 보이는 무질서하게 물결치는 무늬 중에서 약 1퍼센트 정도는 오래 전에 일어났던 대폭발의 잔재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음에 그런 화면을 보면 우주의 탄생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6. 덕분에 델리 스파이스의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들으며 신이 났고("아직은 어두운 하늘 천평궁은 빛났고 차 안으로 스며드는 찬공기들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게")
용수철龍鬚鐵의 한자에 용과 수염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7. 그리고 가장 좋았던 구절
"성단 속의 별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성단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어. 자기만의 궤도를 그리면서 말이야.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 그런데 주변에 별이 워낙 많으니 한 번쯤은 다른 별과 맞닥뜨리게 돼. 이걸 '조우'Encounter라고 불러.
별과 별이 맞닥뜨릴 때, 흔들리는 정도로 작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가야 할 길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경우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