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바이브 - 시를 친구 삼아 떠나는 즐겁고 다정한 여행기
김은지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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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유로 궁금해지는 책들을 그때그때 메모장에 적어둔다. 궁금해지게 된 경로(예를 들면 어떤 책을 읽다 그 책에 인용되거나 소개된 책이 궁금해진다든가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설렁설렁 돌아다니다 주의를 끄는 책을 적어둔다든가)는 대체로 생략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후 그동안 적어둔 궁금한 책 목록을 읽어내리다 보면 이 책을 적어두게 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도 그렇다. 나는 분명 어떤 지역에 대해 검색하다가 찾게 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책의 목차를 살펴봤더니 내가 연결고리라고 생각했던 지역(속초였다)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한다. 동네에 관해 쓴 시인의 에세이. 여기서 시인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동네에 대한 이야기지만 저자가 시인이 아니었다면 혹은 주제가 동네가 아닌 그냥 시인의 에세이였다면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설렁설렁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마음으로, 주로 이동하는 와중에만 책을 읽었는데 책의 걸음과 나의 걸음이 나란히 잘 어울렸다. '바이브'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구어》 분위기, 낌새, 인상, 느낌.
…을 분위기[낌새]로 전하다; 〔감정 등〕을 발산시키다"

책에 나오는 동네를 따라 걷다보면 그 동네만의 바이브라기보다는 동네와 저자 사이의 좀 더 개인적이고 어쩌면 그래서 더 특별한 바이브가 느껴지는데 예를 들면 책의 첫 글인 너와 조금 걷던 동네 은평구 신사동이 매우 그렇다. 이 글을 다 읽은 후 글의 제목인 '너와 조금 걷던 동네'로 다시 돌아갔을 때 나는 조금 울었는데 그건 어쩌면 조금이라는 단어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도 자기주장이 강한 흰색 말티즈와 조금 걷던 동네(오늘은 저 공원까지 가 볼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장아장한 너의 걸음걸이가 어느ㅡ덧 어정어정으로 바뀔 때까지 동네의 구석구석을 함께 걸었는데) 너와 조금 걷던 동네의 모든 길에서 나는 언제까지고 영원히 너와 함께 걷는다. 우리의 조금 걷는 산책의 장면은 어쩐지 계속 되풀이된다. 불광천의 징검다리에서 물에 빠진 강아지 애기의 표정을 품은 시인의 웃음소리가 계속 울려퍼지는 것처럼. 이런 바이브. 흔하디 흔한 장미꽃이 단 하나의 유일한 장미가 되어가듯, 지도 앱을 열면 나오는 무표정한 얼굴의 동네들은 그 동네를 조금 걸으며 경험하는 작은 순간들로 인해 생기를 얻고 웃음소리를 얻고 영원한 페이지를 얻는다. 거창하지 않아서 더 좋은 이런 바이브. 첫 글의 모든 문장이 다 좋지만 시작 부분이 제일 좋았다. 어쩌면 영원으로 남을지 모르는 (예상할 수 없는) 우리의 한 순간은 그저 조금 걷는 걸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조금 걸을 척. 한자 부수 중에 '조금 길을 척' 자를 좋아한다. 이렇게 생겼다. 彳. 한자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고, '조금 걸을 척'이라는 다섯 음절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따라하고 있었다. 조금 걸을 척, 조금 걸을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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