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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민주화 세대라 일컬어지는 시대를 건너 이제는 50대 중반의 중년 나이에 안착했다. 어떨 때는 소수의 능력자 대열에서 우쭐거리기도 했다. 또 어떨 때는 다수의 무능력자 대열에서 처참했다. 아니다. 소수의 능력자 대열은 아주 짧았다. 더 많은 세월을 무능력자로 살았다.
그 무능력을 능력으로 포장하기 위해 나는 무던히 노력했다. 학력고사 점수로 정해진 나의 대학은 누군가 묻지 않으면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대학원 석사 논문을 두 개나 썼다. 각종 기술(전기, 컴퓨터) 국가 공인 자격을 많이 취득했다. 심지어 노후에 배추 장사라도 할까 싶어 대형 버스 면허도 취득했다. 연극·영화 부전공 연수를 받았고, 수학 부전공 연수도 받았다. 아마도 자격증으로 능력을 평가한다면 제법 능력자의 대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 석사 논문이 통과되는 올해 초에 “이제 더는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공부, 시험에 응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공부’, ‘자격’, ‘능력’ 등의 단어가 내 삶을 늘 옥죄었다. 이 책 ‘시험능력주의’(김동춘, 창비)는 무능력을 능력으로 포장하기 위한 뒤틀린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딸기, 고추, 깻잎 등을 비닐하우스 시설 재배하는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제철이 아닌 농산물을 재배하며 부농의 꿈을 꾼 농부들이 젊은 날 고생하며 번 돈을 하우스병에 걸려 의사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지금 내 꼴이 딱 그 농부 꼴이다. 병원 다닐 일이 잦다. 40~50대 정도의 젊은 남자 의사들의 무례함에 불쾌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들은 의사라는 대단한 능력을 선민의식 속에 눌러 담아 일상적인 반말을 한다.
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구조적인 모순이 만들어 낸 능력자들에게는 찍소리 내지 못하고 침묵하면서 ‘이발쟁이’나 ‘야경꾼’같이 자신보다 무능력자라 생각되는 사람의 사소한 일에는 너무도 자주 분개하는 자신을 반성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렇다. 능력과 무능력이 만들어 내는 지위와 그 보상의 구분이 큰 사회일수록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 말한 ‘수평폭력’은 만연해질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처럼....
이 책은 ‘시험’이 승자의 오만함과 패자의 열등감을 당연하게 만들고, 평생 그 감정의 골을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을 들여다본다. 또 사회 심리학자 폴 피프(Paul Piff)가 말한 것처럼 왜 금수저들이 무례하고, 오만하고, 가혹하고, 거짓말도 잘하는 사회지도층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능력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