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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열 가지 얼굴 - 내 안의 불안 심리 인정하고 내려놓기
한스 모르쉬츠키 & 지그리트 자토어 지음, 김현정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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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공황장애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도 못했지만 항상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연예인이란 사람이 공황장애를 겪었다니 단순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병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나 또한 공황장애 같은 불안장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위험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선 불안의 기능과 나 자신의 불안을 이해해보는 일로 1부가 시작된다. 우리는 보통 행복과 안정감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불안을 느낀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불안은 우리 삶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행복이 삶의 비타민이자 활력소가 되는 것처럼 불안 또한 마찬가지다. 불안은 위험 신호를 빠르게 인지하여 경보를 울린다. 이로써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마련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다. 불안이 없는 삶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며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를 잃는 셈이다. 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스트레스를 완전히 안 받기란 불가능하므로 자기의 불안을 인정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불안이 정도를 넘어서면 병적인 불안, 두려움의 열 가지 얼굴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그 열 가지는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특정공포증, 사회공포증, 범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강박장애, 건강염려증, 기질성 불안장애, 물질유도성 불안장애로, 2부에서 자세하게 설명된다. 1부에서도 이 열 가지 불안의 특성이 대략적으로 설명되긴 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다가, 2부에서 아하! 하고 계속 무릎을 쳐가며 읽었다. 저렇게 나열해서만 보면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열 가지 두려움은 미세한 기준으로 분명하게 나뉜다.

 

우선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은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제한되어 있는 불안이 아니다. 공황장애는 청천벽력 같은 갑작스러운 불안으로 공황발작까지 겪게 되는 병이고, 광장공포증은 주로 인파가 많은 공공장소, 혼자 그리고 집에서 멀리 여행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긴 하지만 조력자도 없이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까봐 두려운 상황이라면 모두 두려워하는 병이다. 즉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은 기대불안감’, 곧 불안에 대한 불안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특정공포증은 두려워하는 감정이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제한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사회공포증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다음으로 세 번째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심리 장애’(91p), 대인 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비호감으로 여길 것이란 막연한 걱정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는 병이다. 저자는 이 사회공포증을 열 명 중 한 명은 살아가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된다’(91p)며 많은 사람이 한 번쯤 극복해야 하는 병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범불안장애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과거의 사건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분적인 기억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병이며, 강박장애는 불안을 피하기 위한 강박적인 행동에서 생기는 불안이다. 건강염려증은 신체에 이상이 없는데도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병이며, 기질성 불안장애는 신체 질환이 나타난 이후에 시작된 불안인 한편 물질유도성 불안장애는 알코올과 진정제, 마약 복용으로 시작된 불안이다. 2부에서는 이렇게 열 가지 불안장애의 특성을 살펴보며 내가 어떤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각 불안장애를 극복하는 핵심적인 방법도 간단히 설명한다.

 

병적인 불안을 극복하는 체계적이고 자세한 방법은 이어서 3부에 소개되어 있다.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다양한 불안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개발해낸 이 7단계 자가 치료 프로그램은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핵심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안장애 환자들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를,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정도의 불안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불안장애도 병이긴 하지만 정신분열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신병원에 수감해야 할 미친 사람이 아니라 일상 스트레스가 범람해 그만 폭발해버린 상태의 사람들인 것이다, 한 번 겪은 극심한 불안으로 인해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쉽게 극복하지 못할 불안장애로 발전하고 만다. 따라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불안장애 환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려는 의지를 굳게 다져야 한다. 그래야만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게 된다. 매일 불안 일기를 작성하여 스스로 원인을 찾고 내면의 불안과 대화하며 불안을 달래주는 일도 필요하다. 이 밖에도 자가 치료가 부족할 경우의 심리 치료, 의약품, 입원 치료와 챙겨먹으면 좋을 음식 등을 책에서 권하고 소개해주고 있다.

 

이 책을 세 가지 이유에서 자신 있게 추천한다. 우선 불안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언제 일어날지 모를 병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일상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가므로 누구나 건강한 불안과 병적인 불안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버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견디기 힘든 두려움으로 정서적인 혼란이 왔을 때 불안일기를 써보고 불안에게 편지를 보내며 스스로 불안을 다스리고, 또 불안과 맞서보는 일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자가 치료의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 책이 불안과 불안장애에 대해 성실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도 훌륭하다. 보통 사람들이 갑자기 극심한 불안을 겪어 저자를 찾아와 상담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불안장애로 인해 일어나는 신체적, 정서적 징후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체크리스트를 통해서 나도 어떤 불안장애를 겪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어떻게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며 추상적으로만 끝맺는 것이 아니라이렇게생각하라고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기 때문에 불안장애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은 두 번째 이유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불안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불안장애와 불안장애 환자들을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유명 연예인들이 밝히는 공황장애를 단순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안쓰럽고, 극복했다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특히 불안장애 환자의 가족이나 친구라면 그의 고통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이유를 종합해서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실용서와 교양서로서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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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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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내가 읽은 동화나 고전소설의 주제는 대부분선징악을 기본으로 했던 듯싶다. 선악의 대립 구조가 없어도, 작은 생명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하찮은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따뜻한 마음씨가 항상 감돌았다. 동화는 이렇게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서로를 헐뜯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가련한 이웃들과 공존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참된 마음을 길러주고,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따뜻한 문학이다. 그 중에서도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동화는 단연 <강아지똥>이다. 잠시 여담을 하자면, 어렸을 때만 동화를 읽었던 나는 이 <강아지똥>의 지은이가 누구인지 최근까지도 잘 몰랐다. 올해 출간된 <빌뱅이 언덕>이라는 책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권정생 작가를 알게 된 것이다. 권정생 작가의 이력을 통해 동화 <강아지똥>과 소년소설 <몽실언니>가 같은 작가의 작품이였다는 사실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내가 좋아했던 '언니 이야기'가 권정생 작가의 <몽실 언니>인지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인지  잠시 헷갈렸지만, 내가 진짜 기억하고 있는 '언니 이야기'는 권정생 작가의 <몽실 언니>라는 것을 책 표지를 보자마자 단번에 기억해냈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같이 놓고 보자니 권정생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을 고스란히 그려볼 수 있었다. <강아지똥>도, <몽실언니>도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을 그려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권정생 작가의 산문집인 <빌뱅이 언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차이점이 있다면, <빌뱅이 언덕>에는 가공의 인물이 아닌 권정생 작가와 작가 주변에 있는 실존 인물들의 삶이 두드러져 있다는 것이다. 빌뱅이 언덕은 권정생 작가가 200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5년 가까이 몸을 비볐던 두 칸의 오두막집이 위치한 언덕이다. <몽실 언니> 계약금으로 40대 중반에 난생 처음 작가만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라 한다. 그는 어릴 적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필연적으로 지독한 가난과 폐결핵이라는 질병의 짐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제 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은 피붙이와의 이별을 강요했고, 동네 친구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게 했고, 가난과 조그만 이익 때문에 잠시 양심을 잊어 버리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삶 속에서도 물질에 현혹되지 않고 가장 작은 것,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볼 줄 알았던 작가의 삶은 의연하고 고결했다. 돈이 없어 기도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문둥이 청년에게 자신에게도 아주 귀한 돈을 선뜻 건네주며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사랑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했다. 가난은 떳떳하다는 그의 말이 물질문명에 찌들은 우리의 불행한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더 이상 무엇을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할 이유가 없다.

…(중략)… 그게 바로 하늘나라며 인간들이 영원히 살아갈 바른 삶이다.

- 「가난한 예수처럼 사는 길」 중

(168p)

 

모두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가난을 지켜야 한다.

가난만이 평화와 행복을 기약한다.

가난이란 바로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다. 

- 「가난이라는 것」 중

(241p)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 그러니 절대 앞서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뒤처져 있다고 불행하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

작은 꽃다지가 노랗게 피어 있는 곳에도 나비가 날아든다. 작은 세상은 작은 대로 아름답다.

-「자유로운 꼴찌」중

(123p)

 

 

  작가의 삶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 말고도 <빌뱅이 언덕>에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작가의 비판도 담겨 있다. 전쟁과 가짜 정권으로 아무 이유 없이 피해를 입어야 하는 우리 민중의 삶이자 서민 개개인의 삶, 시와 동요와 동화를 잃어버린 아이들, 인간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 전쟁과 약탈을 일삼고 물질을 지나치게 갈구하는 '악마' 같은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다운 사람, 즉 아름다운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말하는 작가가 생각하기를 가장 아름다운 인간에 속하는 어린 아이들 또한, 요즘 시대에는 자연을 멀리 하고 경쟁만 부추기는 삭막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을 작가는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스럽고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작가의 고민은 곧 우리들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작가는 아이들의 시심(詩心)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으로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대안이 담긴 글은 93년에 쓰여진 것이지만, 요즘 농촌체험과 주말농장이 각광받는 참교육으로, 귀농이 참살이로 떠오르는 추세를 보면 작가가 제시하는 대안은 선견지명인 셈이다. 옛 농촌의 아이들은 작은 생명의 씨앗을 정성들여 키워가는 농부들의 시(詩)를 들으며, 풀꽃놀이와 흙놀이, 물놀이를 통해 자연을 벗삼아 놀았다. 시와 노래와 동화는 곧 자연과 함께 아이들의 삶 속에 어우러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딱딱한 콘크리트 벽을 마주하며 그 흔한 풀꽃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격리당한 아이들에게서 진정한 시인을 기대할 수는 없다.'(161p)

  어릴 때부터 남의 것을 경쟁적으로 가르치기 보다 우리 것부터 소중히 하도록 하고 자연의 온갖 작은 생명들을 접해보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앞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싶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이며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나 않을까 불안할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족하고 편리해진 이 세상에 어른들과 더불어 아이들 또한 왜 행복하지 않은 건지, 왜 요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까지 일어나는 건지 우리 모두가 재차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는 전인교육의 참의미를 강조했던 권정생 작가의 사상은 무척 중요하다.  

 

그의 산문들은 …(중략)… 동화나 동시와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눈을 어떤 근본적인 곳으로 향하게 했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무심한 일상생활이 실은 얼마나 잘못된 허구적 욕망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만든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353~354p)

 

 

  하늘, 민들레꽃, 강아지, 아이들, 우리 것 외에 작고 하찮아도 가련한 것이라면 연민과 사랑으로 바라보고 보듬었던 권정생 작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몽실언니의 모습과 강아지똥과 함께, 권정생 작가는 나의 가슴 한 구석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를 잃지 않아야 진정한 인간답게 생을 살아가리라 믿는다. 

  민들레 꽃씨가 풀풀 흩날리는 <빌뱅이 언덕>을 읽고 나니 아주 오랜만에 그림책 동화를 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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