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우 100인의 독백 모노스토리 시즌 1
서울연극협회 지음 / 들녘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명배우 43명의 모노스토리를 담은 책이 나왔다. 모노스토리란 모놀로그(monologue)와 스토리(story)를 더한 말로, 배우들이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독백 대사를 뽑아 공연하고 연극과 삶에 대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장을 뜻한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CD를 통해서 실제로 상연되었던 모노스토리를 육성으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없어서, 관심이 없어서, 또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연극을 멀리해 온 사람들이라면 작품과 역할에 대한 연극배우들의 열정과 애정을 실감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책에 나온 배우들은 모두 40대 이상이다. 연륜이 묻어나는 나이다. 그 중 내가 아는 배우는 TV에서 가끔 보곤 했던 오광록 씨뿐이었다. 아는 배우가 없어서 약간 민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연극을 좋아하긴 하지만 자주 보러 가지는 않는다. 또 지금까지 연극배우들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전혀 없다. 무엇보다도 연극은 영화보다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게끔 해주는 묘한 마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 점이 연극배우들을 현실적으로 힘들게 하는 요소일 수도 있겠지만 관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또 소극장에서 모든 관객과 눈을 맞추며 연기하는 연극배우들은 무엇보다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리라 생각되기에 이런 마력을 특별히 거부할 리도 없다고 생각된다. 영화배우는 그만큼의 인지도와 인기를 얻지만 연극배우는 다르다. 연극을 보러 극장을 찾아가는 사람도 많이 줄어든 듯싶고 나처럼 작품에만 빠져 미처 배우들을 살필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영화배우는 배우의 이름이 역할의 이름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지만, 연극배우는 배우의 본명을 몰라 역할의 이름으로만 언급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제목 <한국 배우 100인의 독백>을 처음 봤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영화배우로만 한정짓고 선입견을 가진 채 소개글을 읽기 시작했다. 소개글을 다 읽고 이 책을 선택할 때쯤, 내가 연극을 좋아하면서도 연극배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 갑자기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내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배우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연극배우들을 차차 알아가고 싶어졌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연극과 연극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깊게 만드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많은 연극배우들이 맡은 역할을 연기할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는 점이었다.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타인의 삶을 살고, 연극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자신의 인생사를 채워나간다는 것이다. 곧 타인의 삶이 나의 삶과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면서 그사이 어쩔 수 없는 괴리도 생기는 그 과정을 배우들은 오롯이 경험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그런 점에서, 가장 다채롭기도 하면서 가장 괴롭고 고독하기도 한 삶을 살아갈 듯싶다. 그리고 연극배우들은 특히, 스크린으로만 관객에게 다가가는 영화배우들과 달리 공연장에서 직접 관객과 부대끼며 표정과 행동과 말 그 전부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더 다채롭고 괴로운 감정을 맛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극을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블록버스터급 연극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겠지만, 수치와 계산만으로 이루어진 디지털이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영역이 연극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로써 삶에 반드시 필요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연극이 오롯이 되살리고 또 지속시켜줄 것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친밀한 책과 연극은 그래서 희망적이고 그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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