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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술관을 걷다 - 13개 도시 31개 미술관
이현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6월
평점 :
독일은 나에겐 꽤나 친숙한 나라다.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으면서도 고등학교 때부터 독일어를 배워왔기 때문인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영어에 치여 독일어를 놓고 산지가 2년이 다 되어가긴 하지만 앞으로 독일어 공부를 아예 그만 둬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몇 년 후엔 꼭 여행이나 연수를 가서 독일인들과 유창하게 대화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간 독일어를 배워 오면서 독일 또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자만심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면 보통 그 나라의 문화도 함께 배우게 마련이지만 우리나라 언어 교육이 그렇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일까. 어쨌든 독일은 원칙주의의 딱딱한 나라라는 편견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런 편견을 말끔히 없앨 수 있었다. 완전히 독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 자신을 탓하며 독일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의 정치는 베를린, 경제는 프랑크푸르트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독일의 문화예술은 한 도시에만 치우쳐있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자그마치 13개 도시의 31개 미술관을 기행하며 독일이 문화예술의 정점인 나라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독자를 위한 저자의 사려 깊은 마음에 본문을 읽기 전부터 감동해버리고 말았다. 우선 목차를 보면, 현지에서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Museum을 독일 발음 그대로 ‘무제움’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독일은 건물의 층수를 매기는 방식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현지에 가면 충분히 헷갈리고 당황스러운 처지가 될 수도 있는데, 이를 사전에 방지해주기 위해 독일의 층수 세는 방식도 미리 일러두었다. 또 미술관에 가기 전에 여권을 꼭 지참하라는 등 이렇게 ‘일러두기’를 아주 상세히 밝혀놓아 저자의 배려와 친절함도 느껴보면서, 독일 미술관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아주 아주 맛있는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먹여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책을 통해서만 미술관을 구경해보고 말 것이 아니라 직접 떠나보라고 조언하고 부추긴다.
그런데 본문으로 들어가 보니, 저자가 괜한 걱정과 과도한 친절을 표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진과 설명을 살펴보다 보면 책 속으로 들어가고 싶고 곧바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함부르거 쿤스트할레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독특한 조각과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회화를 연이어 보다 보면 마음이 금방 다른 곳으로 떠나가 버린다. 그리고 독일 최대의 팝아트 컬렉션을 선보이는 루드비히 미술관에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다. 이런 미술관에서 맛보는 팝아트의 그 생동감은 얼마나 생생하고 기쁠까. 한 번 두 번 천천히 발을 디디며 미술관을 걸어보고 싶다. 독일의 미술관은 대부분 건물 자체가 예스럽고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 때문에 그 주변만 거닐어도 기분이 좋을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행복감을 실제로 독일 미술관을 걸으면서 느껴보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