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을 권하다 -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불안장애에 관한 책과 긍정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두 책이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어 궁금하던 참이었다. 긍정심리학이 불안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치료법일 수 있다는 생각은 막연히 들긴 했지만, 불안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은 긍정심리학의 무조건적인 긍정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둘이 정확히 같은 맥락에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둘의 본질과 근본 원리가 같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면 우선 저자의 이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저자는 대학생 때부터 불안장애, 정확히는 사회불안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5년이 지나서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인해 그토록 아팠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일종의 강박관념이 일생의 신념으로 탈바꿈하여 저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공포와 혼란의 삶을 이어가게 만든 것이었다. 진단 이후 저자는 인지행동치료 지원 모임에 나가면서 점점 증상이 나아지는 경험을 하고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는데, 당시 이 치료법이 어쩐지 고대철학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널리스트가 되어 인지행동치료의 기원을 추적하면서부터 그 생각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지행동치료의 개발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저자가 인지행동치료법의 개발자인 앨버트 엘리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를 알아냈는데, 예를 들자면 앨버트 엘리스는 에픽테토스의 이 말에서 깊은 감명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 이 명언은 내가 불안장애에 관한 책을 읽을 때도 나왔던 말로, 굉장히 인상 깊어서 기억해두고 있던 문장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고대 철학이 불안장애의 인지행동치료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그 책만 가지고는 알아볼 길이 없었다. 그 책은 지극히 불안장애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가치료법을 소개하는 데에만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철학을 구심점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심리학과 연계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자기계발서로 발돋움한다.
불안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치료법의 경우, 갑자기 닥쳐오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두려움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무의식적인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긍정심리학 또한 마찬가지다. 상황이 아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에 의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감정이 생겨나므로, 긍정심리학은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어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감정학습을 중요시한다. 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도 애초에 고대 서양 및 동양 철학을 탐구했다.
이렇듯 심리학의 기술적인 치료법이 철학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신선해 보인다. 이런 게 바로 학문의 융합이라는 것일까? 이 책은 철학과 심리학의 접점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또한 대학교에서 배우는 철학이 더 이상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지도 않고 답할 수도 없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아테네학당의 수업을 열어주었다. 소크라테스의 기조연설로 시작하여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 그리고 졸업식까지, 이 책에는 대학을 다니는 일과 같이 인생의 일정 시점만을 구성하는 철학이 아니라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일생과 그 생애의 기복을 헤쳐나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철학이 가득 채워져 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이 스스로의 믿음에 질문을 던져보고 의식적으로 비판해보도록 유도했던 소크라테스의 ‘거리의 철학’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새롭게 구현해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묘미이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나의 영혼과 나의 삶을 돌보아주는 소중한 현자로, 스승으로, 부모로, 친구로, 그리고 나 자신으로 남아 평생 나를 곁에서 지켜봐 주고 보살펴줄 듯한 느낌이 든다. 따뜻하고 진정한 위안, 지속적인 삶의 기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무엇보다도 철학에 대한 지배적인 편견과 철학을 철학으로만 설명하는 각종 입문서 및 개론서 같은 책들의 관습을 깼다는 점에서 이 책은 굉장히 성공적이며 혁신적이기까지 하다. 철학이 이렇게 재미있고 유용한 것이었나? ‘철학이라 쓰고 삶의 기술이라 읽는다’ 는 출판사의 서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읽어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