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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평점 :
90년대 중반쯤 일본에서 일어난 지하철 사린 사건은 옴진리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집단 살인이었다. 꽤나 많은 신자를 끌어 들인 옴진리교 교주는 신자들로 하여금 어느 날 아침 출근 지하철에 올라타 사린가스를 살포하도록 지시했다. 독실한 신자들은 교주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고 결국 엄청난 수의 시민들이 출근길에 독가스로 사망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일본에 집중됐었다. 일본은 아직도 이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교주는 체포되었지만 여전히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집회에 모이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옴진리교의 많은 신자들이 엘리트라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지식인은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통해 이성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사이비 교리를 그대로 믿고 교주의 말을 그대로 따라 집단 살인을 하게 되었다.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들어보면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어쩌면 기독교 같은 세계적인 종교의 신자들은 이 사건을 사이비 종교에 국한된 것으로만 여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회의감 자체를 종교계 전체를 타도하려 하는 시도로 여기고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옴진리교 사건은 종교의 힘이 어떠한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가 되었다. 과연 종교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일까 아님 위험한 것일까?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알랭 드 보통은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전제’(12p)라고 밝힌다. 저자는 무신론자이지만, 그리고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만, 기본적으로 저자는 종교란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종교를 좋다 나쁘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고 종교의 여러 이점과 신앙의 지혜를 통찰하며 이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차용해 오는 방법에 대하여 역설하기 시작한다. 그는 역사적이고 일반적인 종교의 지혜까지 무시한 채 신자들의 아둔함을 비판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배타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다. 종교는 물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꾸며낸 것이지만 세속 사회가 이을 수 없는 공동체적 가치를 꾸준히 강조하여 지켜왔다는 점에서, 무신론자라도 신앙의 지혜를 인정하고 종교와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종교의 순기능을 이해하게 된 무신론자라면 이제는 자신만의 신전을 세워 ‘교리 없는 지혜’를 지니고 살아가라고 권한다.
드 보통의 종교와 인생에 대한 철학은 우리가 지나치게 세속적인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신앙을 갖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이어나갈 방법을 고찰해보도록 도와준다. 종교는 지혜롭다. 어떤 정치인보다도 설득력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에 기술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줄도 안다. 그러므로 신자든 아니든 종교의 지혜를 적당히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는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종교의 역할을 세속 사회가 이어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근본주의에 의한 테러나 사이비 종교의 위험성이 신문을 도배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