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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숫자 -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동녘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숫자는 말을 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어떤 통계든 ‘객관적’ 일수는 없다고.
이 책 <분노의 숫자>를 읽고 난 후,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통계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뒷받침하고 있는 구체적 자료이며, 이 숫자들은 모두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말이다. 마치 책 제목처럼 숫자들은 분노를 하고 있었다.
불평등에 대한 불감(不感).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다를 수 밖 에 없는 출발점, 그로 인해 달라질 수 밖 에 없는 결과.
어느 순간,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보며, 태생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있는 것이고, 나는 내 인생이 있는 것이라며 그들의 특권적 삶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평등으로 인한 시샘과 질투, 혹은 분노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로 인한 격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 졌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서로의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삼성이 잘 나가는 것이 그 기업이 잘나서가 아니었고, 현대차가 많이 팔리는 것이 더 이상 우리 사회 대다수 서민들에게 득 될 것이 하나 없으며, 동네에 기업형 슈퍼마켓 들어오면 다양한 물건을 싸고 편리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며, 정부의 말만 믿고 마지막으로 내 집을 마련 기회라며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것도 다 바보천치 같은 판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서야 깨닫고 있다. <분노의 숫자>는 우리가 이토록 바보천치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유의미한 통계치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국민이 호구여야 나라 경제가 편안하다?
이 책 각 장의 순서는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게 도와준다. 한 명의 아이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는지, 어떻게 키워지고 어떤 교육을 받게 되는지, 또 어떻게 일자리를 찾고 어떻게 결혼생활을 만들어 가는지,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떻게 소비를 하고, 또 어떻게 아픈 곳을 치료받으며 결국은 어떻게 죽어 가는지에 대해 아주 굴곡이 많은 사람의 아리랑곡선을 보는 것처럼, 묵직한 마음으로 읽어갈 수 있다. 각종 통계자료들과 도표들이 마구마구 던져지지만, 이 책의 아주 중요한 키워드는 –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 바로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20대 80의 사회에서 이제는 1대 99의 사회로 전환되는 것을 목도하였고, 그 와중에 주류 사회에서 내쳐진 그 수많은 사람들은, 혹은 처음부터 주류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더 많은 사람들은 그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설움을 참아내고 살아가고 있었다. 정말 이런 결과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무능력과 게으름 탓인가.
정작 그 불평등한 사회를 ‘조정’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할 국가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불평등함에 대해 묵과하고 스스로 주류의 계층에 합류하거나 그들에게서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왜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올랐는데 오히려 집 없는 서민에게 주택구매를 유인할까. 저축만으로 집을 사는데 걸리는 시간이 27년이나 된다면, 우선 주택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점을 의심해야하는 것 아닐까. 게다가 저소득층의 주거비가 고소득층에 비해 월등히 높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전월세 보증금 상한제와 같은 정책이 진작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이라면 응당 사회의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 역시 우리 사회가 이처럼 불평등해진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저 정부가 내놓는 통계를 잘 포장해서 기사를 쓰거나, 스스로 자본의 권력이 되어 모든 것이 장밋빛인 것처럼 과장하기 일쑤였다. 도대체 경제가 성장했다고 하는데 국민들의 가계 소득은 왜 그대로인걸까. 그러면서 어떤 노조의 파업으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것처럼 호도하는 언론들은 도대체 국민들을 얼마나 호구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이윤 극대화’가 지상최대의 과제인 기업, 특히 재벌기업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삼성전자 임원은 왜 일반 노동자보다 137배나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 그 많은 세금으로 기업 연구 개발에 쓰라고 지원해주었던 돈 마저 한 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더니, 이제는 골목 상권까지 치고 들어온다. 기업은 소비자의 환심을 사서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다. 이를 위해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가 어떤 상황에서 일을 하든지, 소비자가 과대광고에 속아 손해를 입는 일 따위는 기업의 관심사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정부와 언론이라는 거대 권력을 적절히 이용하며 그들의 특권을 지속적으로 누리려는 꼼수까지 부리고 있다. 결국 정부는 세금으로 기업을 지원해주고, 기업은 이 부분을 다시 정부에게 로비자금으로 돌려주는 형식이다. 언론 또한 이 커넥션에 적절히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 언론, 기업은 언제나 사람보다 돈이 먼저였다. 이런 와중에 왜 우리 사회가 이처럼 불평등해졌지, 그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어느 누가 관심이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정부-언론-기업이라는 거대 권력이 쏟아내는 것일 텐데, 그들의 기준에서 잘 살고 못 살고는 결국 개인의 탓으로 귀결될 수 밖 에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 자학하며 이 사회를 견뎌내고 있었을 것이다.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 가는 길까지 ‘죄송하다’며 사죄하듯 말이다.

분노하자. 그래서 세상을 바꾸자.
이 책 <분노의 숫자>에서 언급되는 각종 통계자료들은 사회 현상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물론 진보적인 매체나 균형 잡힌 시선의 사회과학도서까지 읽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불평등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 한국 사회가 이처럼 불평등한 것, 인정한다. 지금도 충분히 평정심을 갖고 살기 힘들기도 하고, 짜증나고, 기회만 된다면, 어디 저 멀리 다른 나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은 각 에피소드별로 숫자의 진실, 즉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힘이자 성과라고 생각된다. 사회 전반에 걸쳐 다방면에서 연구해온 결과물들이 있기에 이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읽혔던 부분은 에필로그였다. 2020년의 대한민국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삶. 어쩌면 허황되어 보이고 그저 꿈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삶 같지만, 그 변화의 시작은 보잘 것 없는 하나의 움직임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면밀하게 들여다보자. 하나같이 짜증나고 울화통 터지는 일투성이다. 돈 없다고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사회, 일의 경중을 따지고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은 거지 취급하는 사회, 권력과 힘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회,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이에 분노하자. 분노하고 분노하다 스스로 삭히지 말고, 이 분노를 가족과 나누고, 친구와 토론해보자. 왜 이렇게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야 하는지, 왜 돈이 사람보다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지, 왜 국가는, 언론은, 기업은 그들만의 특권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왜 우리는 존중받지 못한 삶을 살아왔는지, 먼저 툭 하고 던져보자.
그리고 움직여보자. 이런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해보자.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말이다. 책에서 이야기 하듯 이러한 행동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주어진 대로 살고, 남이 말하는 대로 듣고, 눈에 보이는 대로 읽지 말자.
그리고 이제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자.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속하는 한 우리는 어차피 쓰다 버려지게 될 것이다.
내가 변해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
그래야 희망도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