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 - 분노는 내려놓고 사랑을 취하라
박주정 지음 / 김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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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101 달마시안이 생각나는 제목이었다.

제목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 이건 박주정 선생의 에세이이자, 교육자로서의 삶을 담은 자서전이다. 한때 진정으로 교육자를 꿈꿔봤던 사람으로서 배울 점도 많고 공감도 많이 가는 책이었다.

이야기는 박주정 선생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어이없게 돌아가신 일, 그리고 어쩌면 그 계기가 되었을 박주정의 담임교사. (책을 쭉 읽다보면 그 선생과 저자의 악연이 진절머리 날 정도이다. 박주정 선생이 어른스럽게 악연의 끝을 마무리지은 게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자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해, 나역시 사람은 희망이 있고 꿈이 있을 때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분명히 목격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배의 항해사처럼 그들에게 항로를 안내하고 인생의 빛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책무라는 것도 깨달았다.

본문 P. 65

어찌되었든 그날 이후 박주정 선생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선생님'이 되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반을 맡아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워내기도 하고, 갑작스레 집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집을 내어주기도 한다. 사비를 털어 교재나 책을 마련해주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여기저기 손을 벌려 마침내 공동학습장을 꾸려낸다.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가정은 인생의 보금자리다. 옛날 어른들 말씀에 집안이 편해야 밖에서 하는 일도 잘된다고 했다. 공동학습장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빨래도 하고, 요리도 하고, 라면도 숱하게 끓여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만 오면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내를 믿는 구석도 있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족에게 너무했나 싶다.

본문 P.96

박주정 선생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물론 박주정 선생도 굉장히 존경스러웠지만 같은 여자인 내 눈에는 아내분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그는 남편이 상의도 없이 학생들을 집에 들여도 결국 그들의 도시락까지 싸가며 남편의 뜻에 따랐고, 남편이 나가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길러낼 동안 집안의 대소사며 자식을 키워내는 데 몸을 바쳤을 것이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소중함에 감사를 표하는 단락도 마음이 훈훈했다.

인철이는 자신을 신고한 자동차 주인에게 복수하려고 찾아갔다. 목에 칼을 대는 순간 주인이 말했다. "젊은 양반, 화난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래도 이 칼 좀 거두고 이야기합시다. 나는 당신의 기술을 사고 싶소. 어떻게 자동차 문을 열었는지 너무 신기했어요. 대체 어떻게 문을 연 겁니까?"

본문 P. 171

책을 읽으며 가장 어이없고도 웃겼던 일화가 아닐까 싶다. <교도소 강연을 갔다가 만난 인철이 외제차 부속품 업체의 대표가 되어있는 건에 대하여....> 라는 라이트노벨로 나올 만한 이야기이다. 이른바 '될놈될'인 것이다. 물론 죄를 저질렀지만, 박주정 선생의 강의에 감명을 받고 새사람이 되어 한 회사의 대표까지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칭찬해줄 만하다. 인철의 삶을 바꾸어준 박주정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픔이 많은 아이들입니다. 낙인찍히지 않도록 비밀을 지켜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 낙인이론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은 찍힌 낙인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이론이다. 위에 인용한 저 문구는 박주정 선생이 미혼모 학생을 미혼모위탁 교육기관에 인계하며 당부했던 말이다.

나는 미성년자, 혹은 아이를 책임지지 못할 상황의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미성년자 미혼모는 산모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낙태를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가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을 알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혼모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녹록치 않을 것이고, 결국 아이의 인생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갈 거라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주정 선생은 반대로 '낙태는 절대로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저 일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다만, 거기에 더 붙는 조건들이 있다. '출산 후 건강관리를 잘한다.', '학업을 지속하도록 한다.' 어쩌면 박주정 선생의 의지와 목표가 더 미혼모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대차이나 종교의 관점에서 선생이 낙태를 반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라면 그 시선을 바꾸면 되는 것이고,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면 된다. 어찌됐든 그들은 생명을 지켜냈고, 부주의 했던 하룻밤의 대가를 몸소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미혼모라는 낙인을 찍으면 결국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많이 복잡한 문제지만 다른 시각으로 미혼모 문제를 바라보게 된 에피소드였다.

조금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학생을 포기하지 않는, 학생과 한몸으로 나뒹구는 그런 적극행정을, 그런 교육행정을 펼치고 싶었다. 한 마리 방황하는 양도 놓치지 않는.

나는 이제 중고등학교 교사의 꿈은 접은 거나 다름이 없다. 대신 내 흥미와 적성에 더 맞는 다른 꿈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교사를 꿈꾸던 시절 생각했던 내 교육관이 완전하진 않았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교사란 저런 거구나, 하는 것. 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정상궤도로 올려 키워내는 것.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교사를 하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린 날의 내가 교사가 되었다면 일명 문제학생들에게 낙인을 찍는 사람이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반성도 했다. 하지만 박주정 선생은 그런 아이들을 포기하면 결국 우리 사회에 안 좋은 방향으로 되돌아올 거란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교화'에 삶을 걸었고, 나는 그의 삶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이 아이들이 비뚤어지기 시작한 원인을 찾아내고(주로 가정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이고 공감하여 바른 길로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것. 책을 읽으며 은은한 감동을 많이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새 돌아가는 꼴을 보니 더 답답해지기도 했고.

요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선생님들은 현재 7주간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들도 칭찬할 정도로 평화로운 시위라고 한다. 우리 모두 선생님들의 시위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손을 들어주어야 조금이나마 무너진 공교육이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내 이야기다.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친구고, 자녀이고, 선생이고, 제자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장 최전방에서 아이를 교육해내는 선생님들이 무너지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자식을 쓰레기로 키워내지 말자.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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