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내가 늙어버린 여름>

🖋 2021. 8. 23

🌙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

한 편의 시와 같은 글로 이 책은 시작한다.

우선 책을 읽기 전에 표지에 한참 감탄했었다.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제목의 글자들, 파스텔 톤과 원색을 적절히 조합한 표지 디자인까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나는 제목을 읽자마자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

아직은 한참 젊은 오늘날의 내가, 늙어버린 나의 여름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못하겠다, 사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늙는 게 무섭고 두려웠다.

나만 늙는 게 무서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단순히 '늙음'에 한정된 글은 아니다.

딸로 태어나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만 했던 이야기, 남동생과 비교하여 차별 받았던 경험, 부자 남편감의 눈에 들기 위해 여성성을 가꾸어야 한다는 식의 조언.

나이가 꽤 있는 작가가 어렸을 때 들었던 말인데 나도 다 한 번쯤 들어봤던 이야기라 공감이 갔다.

참 슬픈 이야기다. 몇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쓸데없는 가치.

나는 왜 조신해야만 할까? 나는 왜 부자인 남편을 만나야만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왜 내가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면 기가 세다는 말을 들어야 하고, 왜 내 남동생이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지 못하면 사내애가 숫기가 없다며 혀차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

또 이런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세대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늙는다'라는 개념까지.

모든 것이 함축되어 이 책 안에 들어가 있다.

작가의 삶 안에.

무엇보다도 엄마가 말하는 '여성의 조건'이라는 생각에 저항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진로를 정해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는 나를 안심시켜준답시고 그런 결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장래 문제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조곤조곤 타일렀다. 어찌 되었든 나는 결혼을 할 테고, 그것도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할 거니까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직업 선택 따위는 별반 고민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본문 p. 131 - 132

나도 세상이 말하는 '여성의 조건'에 반항하며 이 짧은 생을 살아왔다. 나는 왕자의 팔짱을 끼고 인형처럼 웃기만 하는 공주가 아니라 세상을 정복하는 장군이 되고 싶었다.(물론 비유적인 표현,,,)

그러므로 당연히 작가 엄마의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건 말 그대로 그것 뿐이다. 내가 돈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났다고 해서 내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뿐이다. 그냥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되는 거다. 나는 절대 그런 수식어가 붙은 여성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독립적인 하나의 인간이고자 했고,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그냥 내가 되고자 했다.

어린 날의 작가도 그랬을 테다.

그렇지만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우리 앞엔 아직도 순수한 웃음,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연대의식, 늘 함께한다는 암묵적인 동조 의식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운명이 우리를 영원히 떼어놓기 전까지는.

본문 P. 160 - 161

늙음이 무서운 모든 청춘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한 번 쯤은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의 생각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