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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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2021. 7. 30

나를 떠나버린 시들을 불러 모아 몇 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나는 시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내가 전공자인 탓도 있고, 시를 즐겨 읽고 쓰는 사람인 탓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션 도서를 고르는 건 쉬울 수밖에 없었다. 정호승 시인의 개정 증보판이라니!

조금 사심이 들어간 리뷰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집을 리뷰하는 건 처음이라,,

우선 표지부터 단정하다. 시집이 아니라 시선집이라고 적은 것도 괜히 마음에 들었다.

정호승 시인은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로 잘 알려진 분이지만, 그것 외에도 좋은 작품을 많이 내셨다.


시인의 언어는 우리와 다를까?

작가의 말부터 괜히 나의 심금을 울리는 문장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사람의 가슴속에는 누구나 시가 가득 들어 있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

잘 가라.

고통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인 것이겠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이 짧은 글조차 시로 느껴지는 이상한 현상. 시인은 내 생각보다 더, 더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이 시선집은 총 7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해설이 덧붙어 있다.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들과 더불어 그 시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할 수 있는 좋은 해설이 함께한다. 해설은 시인이자 서강대 국문과 명예교수인 김승희, 그리고 문학평론가이자 서울여대 명예교수인 이숭원이 함께해주고 있다.

단순히 시로만 이루어진 시집도 참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해설을 참 좋아하는 편이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시야로는 볼 수 없었던 시인의 시 세계를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그 해설들을 읽다보면 시를 더욱 향긋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눈사람

사람들이 잠든 새벽거리에

가슴에 칼을 품은 눈사람 하나

그친 눈을 맞으며 서 있습니다

품은 칼을 꺼내어 눈에 대고 갈면서

먼 별빛 하나 불러와 칼날에다 새기고

다시 칼을 품으며 울었습니다

용기 잃은 사람들의 길을 위하여

모든 인간의 추억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눈사람이 흘린 눈물을 보았습니까?

자신의 눈물로 온몸을 녹이며

인간의 희망을 만드는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그친 눈을 맞으며 사람들을 찾아가다

가장 먼저 일어난 새벽 어느 인간에게

강간당한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사람들이 오가는 눈부신 아침거리

웬일인지 눈사람 하나 쓰러져 있습니다

햇살에 드러난 눈사람의 칼을

사람들은 모두 다 피해서 가고

새벽 별빛 찾아나선 어느 한 소년만이

칼을 집어 품에 넣고 걸어갑니다

어디선가 눈사람의 봄은 오는데

쓰러진 눈사람의 길 떠납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생각보다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사실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유명한 시만 찬찬히 뜯어봐도 마냥 희망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긴 하다. 이 시선집에 실려 있는 수많은 시들 역시 읽다가 암울해지거나 괜스레 축 처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진실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접했던 시들은 표현 방법이나 시인의 삶따위를 달달 외우는 것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학창 시절의 지루한 문학 시간에 질려버린 분들에게는 꼭 이 시집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시의 진정한 무언가를 꼭 느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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