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밝은 지붕
노나카 토모소 지음, 권남희 옮김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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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츠바메는 움츠러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이웃 오빠가 있지만, 그 마음을 전할 수 없고

작년에 사귀었었던 남자친구가 헤어진 후 엇나가는 걸 보면서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 않아?'라는 말로 한 발 물러서려고 한다.

친한 친구와 방과후 어울려 놀기 보다는 또 한발 물러서 또래의 친구들이 잘 하지 않는 서예에 집중하려 한다. 집에는 어릴적 자신을 두고 집을 나가버린 엄마 대신 그 자리를 든든히 메꿔준 새엄마가 있고, 자상한 아빠가 있다. 하지만 츠바메에게는 열정이 없었다.


그러던 츠바메에게 어느날 요정처럼 다가온 별 할머니.

요정이라 하기엔 조금 성격이 까칠하지만 마음을 숨기고 내보이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은 그녀의 마음을 계속 두드린다. 귀찮게 한다. 자꾸 당당히 요구하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킥보드를 가르쳐주었고, 음식도 사다 준다. 같이 나들이도 가고 그녀의 손자가 사는 집을 찾아 여름 방학 내내 얼굴이 까맣게 타도록 동네를 걸어 다닌다. 


타인의 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이야기를 쭉쭉 읽어가는 동안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안 보인다. 너이기 때문에 내가 보이는 거야."라고 말했던 별 할머니의 말이었다.

무심한 것이 아니라 아직은 마음을 내보이는 그 순간이 서투르고, 마음을 전한 후 잘 못 될까봐 두렵고, 진실을 마주할까 무서워 애써 모른 척 하려고 했던 사춘기 소녀인 츠바메의 마음 속에는 사람을 향한 따스한 진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 할머니의 당당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때로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별 할머니의 호통에 자신의 가족과 이웃,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꾸만 주저하는 자신의 등을 떠밀어 주는 할머니 덕분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 발 더, 소중한 이웃에게 한 발 더 다가갔고, 그래서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별 할머니는 자신이 어떤 지붕 아래에 있는지 알아야 잘 성장 할 수 있다고 했다. 화려한 기와를 잔뜩 올린 지붕이든 수수한 지붕이든 튼튼하고 손질 잘한 지붕아래에 있으면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말한 지붕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지금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설사 가족이 깨어졌다던가, 나쁜 인연이 찾아왔다고 해도 그 비를 피할 수 있는 든든한 관계의 지붕이 있다면 언제든 깨어진 지붕은 손질하면 되고, 비가 그칠 때까지 피할 수 있다. 주인공 츠바메에게도 깨어진 순간이 있었지만 가족의 인연이 든든히 메꾸어주었기에 지붕 아래에서 츠바메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의 이웃인 이즈미도, 도와루도 깨어지고 젖어가는 순간에 그들을 위해 노력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어 회복할 수 있었다. 


요정과 같은 별 할머니와 츠바메가 함께 했던 그 찰나의 계절에 함께 바라보았던 다양한 지붕이 가득한 도시의 밤 풍경처럼, 우리의 삶도 다양한 지붕 아래에서 가지각색의 보호를 받으며 한 순간 순간을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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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얼굴 사계절 1318 문고 139
조규미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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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미 작가님의 소설집 [똑같은 얼굴] 속에는 5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환상적인 이야기인가 싶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쉽지 않고, 오히려 읽고 있는 사람의 마음 한켠을 쿡쿡 찌른다. 마치 바늘처럼.


모든 이야기에는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위 말해 "따돌림을 당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 불행해진다고 하는 가람

명을 달리한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고 고집한다고 해서 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미단.

두더지라 불리며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것만 같은 원호

함께 잘 지내고 있었지만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며 친구들이 묘하게 대하는 은성

교실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라져버린 호빵


이렇게 다섯명의 이야기가 때로는 본인의 눈으로, 때로는 옆에서 든든히 지지해주는 친구로, 때로는 그 친구의 아픔을 외면해버린 친구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불행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가람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자꾸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자기도 모르게 거리를 둬버린 다영이, 교실 도난 사건이 있기 전에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서로 함께 지냈었지만 호빵이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함께 묶이는게 싫어 동조해버린 나.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행동은 '친한 친구의 마음을 배신해 버린'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수많은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각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택한것이라 마냥 비난 할 수는 없다. 죄책감을 등에 지고 걸어가던 화자들은 결국은 자신의 감정을 터트리고서야 치유를 받는다. 


또 다른 친구도 있다. 죽은 가수 바준의 팬인 미단이가 함께 모둠을 이룬 친구에게 계속 무시당하고, 반 친구들에게도 별종 취급을 당하자 축구를 좋아했지만 그만 둔 후 그 마음을 숨기려고 하던 우현은 그녀와 자신 사이에 묘한 연대감을 느끼고 그녀의 편에 서주었다. 또 두더지로 불리며 괴롭힘을 당하는 원호의 뒤를 쫓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정의감에 불타오르던 민준은 마침내 원호의 비밀에 다가섰다.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 편에 선 아이들 또한 그 관계로 인해 자신의 마음의 성장 혹은 치유를 받았다.


소설집 제목과 동명의 단편 "똑같은 얼굴"의 은성은 사실 마음속에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보내준 캠프에서 새 친구를 사귀고 즐거워하지만 '이 캠프가 끝나면 다시는 안 볼"거라며 번호를 저장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캠프에서 은성이 만난 똑같은 얼굴은 자신의 도플갱어라 친구들이 불렀지만, 숲에서 친구들이 똑같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볼때 그 모습은 결국 은성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불안한 얼굴과, 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뾰족한 얼굴은 아니었을까.


청소년은 모두 마음 속에 여러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정의로울 수도, 때로는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그 모든 얼굴도 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모든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다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얼굴도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기에 다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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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와 앤 -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 보름달문고 89
어윤정 지음, 해마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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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즐거움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러분의 친구 리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서관을 안내하는 것이 자신의 일인 로봇 리보는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밝은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책을 추천해주고, 기분에 맞는 리액션을 해주었다. 늘 자신에게 '친구'라고 부르는 한 소년의 기분을 살피며 그에게 책을 추천해주던 차에 그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닥쳐온 혼란, 사람들의 우왕좌왕.

마치 괴물이라도 습격해 온 것 같은 상황에 모든 사람들이 삽시간에 빠져나가고 사람이 아닌 로봇 리보는 덩그러니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도서관에 남겨졌다.

그 혼란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재난이었다.

책에서는 플루비아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이 재난은 2020년 초 예고도 없이 우리에게 닥쳤던 코로나바이러스를 떠올리게한다. 모든 면에서.


우리도 그러했듯이 도서관은 무기한 폐쇄되었고 사람이 찾지 않는 곳에서 리보는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상황에서 도서관 이곳 저곳을 다니며 자신이 할 일을 찾아 다니던 리보는 2층 어린이 도서관에 있던 책 읽어주는 로봇 앤을 만나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리보는 사람들과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공지능 시스템 상 일정한 소통을 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앤과 이야기 하면서 리보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현재 상황에 대해 추리하고 나름의 소통을 이어간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앤의 충전단자가 망가지고 앤의 기운이 점점 사라질때 소통 방법이 없어져 버린 리보에게도 경고 메세지가 뜨기 시작한다.


지난 코로나 시기 우리 모두에게도 소통이 단절되었다. 만나고 이야기하고 밥을 먹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는데 친구에게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하자'라는 말을 선뜻 꺼내기가 어려워지는 시간이 불현듯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얼굴에서 감정을 읽고 마음으로 이야기 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때문에 자꾸만 생겨나는 오해와 갈등. 차가운 온라인에서, 폰으로 서로 무표정하고 오해 가득한 소통만 겨우겨우 이끌어갔던 우리에게도 소통의 에러 메세지가 뜨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 앱 픽톡으로 어느날 메세지를 보내온 소년의 메세지를 받고 리보는 혼자 답을 보낼 수 없어 감정이 풍부한 앤의 도움을 받는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소년 덕분에 배터리가 방전된 후에도 소년과 리보는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하고 같이 놀고 싶어하는 그 긴 시간의 마음들.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더 간절했을 그 시간들. 그 그리움에 대한 대화가 리보의 마음에 저장된 것처럼 아이들의 마음에도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긴 시간, 얼마나 갇혀 있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리보의 기능도 점점 에러가 생기던 찰나, 리보는 그 소년을 만날 수 있었을 까?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소통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걸 알려주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일상을 회복하려는 지금, 리보가 소년과의 만남을, 도서관을 찾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했듯이, 그래서 그 문을 열고 싶어 했듯이 우리도 인터넷과 집이라는 갇힌 우리만의 도서관을 열고 나아가 얼굴을 마주 보고 말로, 텍스트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의 미묘함을 함께 느끼며 진정한 소통을 해야 할 때 인 것 같다.


그리움.
감정 은행에 ‘그리움‘이 추가되었습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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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만나다 사계절 1318 문고 132
이경주 지음 / 사계절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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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그 경계선에서 눈을 뜬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작가는 그 경계면을 도서관으로 설정하고 두 사람을 그 곳에 던져놓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도 존재도 잊은 채로 두 사람은 도서관에서 서로를 발견했고 도서관 사서를 만나 각각 한 권의 책을 건네 받고 읽기 시작한다.


설정이 도서관이라 그런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떠올랐고, 또 한 편으로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떠올리게 했다. 설정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두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혹은 꿈을 꾸기 위해 그 장소를 찾은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존재도 잊은 그들은 사서가 건네준 각자의 책을 읽기 시작한다. 공부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쾌활한 고등학생인 동호,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방해받는 걸 싫어하는 제로. 두 사람의 책은 각각 그 아이들의 삶에 대해 적혀있었다. 


그들의 삶을 읽어가며 각자는 그 이야기가 읽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점점 읽다보니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는 마음 한 켠을 차지하는 그 알수 없는 두려움과 답답함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시작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이어지게 됨을 알았을 때 읽고 있는 나의 손끝이 조금 찌릿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지만, 둘 사이를 이어주던 그 사람은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고 각자가 상처를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 스스로도 그 사람에게 알게모르게 상처를 받았다.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마음을 거절당했다고 생각했으니까.


청소년 기를 생각해보면 각자는 서로 너무 쉽게 상처받고 상처를 준다. 나에게는 타인이 준 상처가 가장 크고 심각하기에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는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내 마음이 너무 다칠까봐 때로는 상처준 이와 어떻게 그 관계를 고쳐나가야 하는지 몰라서 그 관계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끊어낸다. '손절'이라는 다소 쿨해보이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 관계를 끊고나면 마음에 그 만큼 구멍이 생기고 만다. 관계를 손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한켠이 떨어져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가장 잘 하지 못한다. 이 도서관에서 각자의 책을 읽으며 삼자의 시각에서 자신의 삶과 그 상처투성이 관계를 객관적으로 관찰 할 수 있을 때 그 마음이 무너져내렸지만, 또 다시 나아갈 용기가 생기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상처를 주고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고 그 관계를 극복해나가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쉽게 상처주고 받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관계로 부터 도망치지 말고 마주볼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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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모르는 엔딩 사계절 1318 문고 116
최영희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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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나오지 않는 모든 종류의 과학을 좋아하는 자칭 '과학 매니아'로서 최근 많은 SF소설을 읽었다. 최근 SF소설들은 공상과학이라는 소설 장르 속에서 결국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뭇 진지하게 전개되는 소설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 읽게된 '너만 모르는 엔딩'은 오랜만에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가득찬 소설집이었다.


외계인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5개의 소설들은 가볍게 읽기 좋을 뿐더러 그 속에 담겨있는 청소년의 모습이 요즘 만나는 십대 아이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인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의 경우 우리가 흔히 "대한민국 중2가 무서워서 외계인도 못 쳐들어온다'라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쓰여진 글이다. 실제로 지구에 들어온 외계인이 그 말을 듣고 궁금한여 '위협적인 존재'인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을 납치하는데, 그 주인공에게는 만만치 않은 첫사랑 실패 사연이 가득 있었다. 납치 하려는 외계인과 주인공 사이의 주고 받는 말들, 주인공이 고민하고 차라리 지구를 떠나버렸으면 하는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있는 유쾌한 글이었다.


'최후의 임설미'는 지구의 종말을 결정하게 된 한 학교의 일원들이 마지막 남은 단 한표를 지닌 임설미를 둘러싸고 벌이는 이야기였다. 지구 종말을 불러오고 싶어하는 자들과 자신도 모르게 지구 종말에 찬성하게 되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그걸 막으려고 하는 특수 요원까지. 첩보물을 방불케하는 긴박한 글이 재밌었다.


'너만 모르는 엔딩'은 외계인인 점쟁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보려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가장 결혼 상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꼽친구를 피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그녀와 이어지고 싶어서 저지른 일이 나비효과처럼 인생을 바꿔버리게 된 주인공. 그 다가올 미래를 바꾸기 위해 다시 시간을 바꾸어보는 가운데 결국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며 겪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날의 인간 병기'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개발 중인 '수트'를 입으러 갔다가 다른 '인간 병기 수트'를 잘못 입게 되어 벌어지는 에피소드였다. 주인공은 스스로 자신의 삶이 그저 그런, 볼품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힘이 생기고 나니 불쑥 삶을 좀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고, 친구를 돌아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삶을 바꾸는 건 '힘'인지 '태도'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마지막 '알파에게 가는길'은 다른 네 작품과는 다르게 좀 더 진지하고 감동적인 글이었다. 진짜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져 진짜인 '알파'가 하기 힘든 일을 대신 하도록 만들어진 '베타'가 자신의 자아를 찾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주요 뼈대로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쑥 떠오르는 자신의 알파에 대한 기억. 결국 베타를 자유롭게 풀어주고자 했던 알파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가려고 하는 이야기가 뭉클했다.


판타지 소설과 SF의 차이는 지금의 물리법칙을 그대로 따르느냐, 아니면 아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지극히 현실의 테두리에서 정말로 지금 혹은 조금 먼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이러한 소설을 통해 엿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유쾌하고, 진지하고 때로는 엉뚱한 청소년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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