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의 세계가 열리면 사계절 1318 문고 144
이은용 지음 / 사계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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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표류하고 있었다. 푯대를 잃은 배처럼. 목표했던 것에서 떨어져 나오자 마자 하라의 마음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하라의 목표는 하라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그 목표를 정한 것은 하라 자신이 아닌 부모님이었고, 하라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를 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은 어딘가로 흩어져 버렸고, 오직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는 배가 되었다. 그렇기에 목표를 잃었을 때 그는 나침반도 없이 표류 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예술고등학교 입시에서 하라가 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수였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은 그가 실패했다고 했고, 더욱 더 좌절하게 되어버렸다. 끝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마음. 그래서 어쩌면 거리에서 길에 그려져 있는 추상화에 눈길이 갔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그렸는지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속에 의미가 있는 추상화처럼 지금은 길을 잃은 것지만 하라의 삶엔 의미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의 삶은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우연히 일어난 열차사고에서 눈을 뜬 하라의 앞에는 낯설지 않지만 낯선 풍경이 있었다. 그리고 낯설지 않지만 낯선 리온을 만났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병아리 감별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였다.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는 멀리 일하러 가시면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는 외로운 상황에서도 주변의 도움과 함께 지내는 관계들로 외로움을 이겨내며, 영문도 모른채 혼란해하는 하라를 위한 공간도 내어준다. 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리온. 예고 입시의 실수 때문에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마저 부정해 버리는 하라와 달리 벽이든 종이든 어디든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는 리온을 보면서 하라는 애써 무시했던, 아니라고 했던 그림에 대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을 조금씩 풀어놓게 되었다.


왜 좋아하는 것을 하면 안되는 걸까.

왜 좋아하는 것을 그냥 하는 것은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꼭 성공, 입시, 대학 등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만 제대로 하는 것일까.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리온의 세계였다.


마침내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억누름을 극복하고 다시 그림을 시작하려는 순간, 리온의 세계에서 하라는 빠져나오게된다.


하지만 그냥 빠져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라의 마음 속에는 리온이 전해준 그림에 대한 열정,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 후에 하라는 더이상 누군가가 정해준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땅의 많은 청소년들이 나의 목표가 아닌 부모님의, 사회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며 끝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미뤄둔다. 그러지 말라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그냥 하는 것도 그 자체로도 빛이 날 수 있다고 알려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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