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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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연.

책의 표지를 마냥 바라보고 있으면 비가 내리는 푸른 공원이 생각난다.

비가 오는 날은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없고 마냥 조용한 적막에 휩싸인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그 잎사귀도 더 푸르러지고, 메말랐던 바닥은 촉촉한 생기가 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 공원은 비가 내리는 날 더 살아있었다.

마치 수현처럼.


스스로 아무런 특징이 없고 정말로 평범한, 반에 30명쯤 있다면 23번쯤 되어서 선생님에게 불릴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은 그런 아이라고 스스로 생각한 수현. 반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은 정후, 정후와는 그 온도도 분위기도 다르지만 한 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달과 같은 고요.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수현의 시선을 끄는 우연.

그리고 꼭 빠뜨리면 안되는 수현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찬란한 별 지아.


수현은 처음에 자신은 특징도 없고 정말로 평범할 뿐이라 스스로 움츠러든다. 하지만 자꾸만 반 친구들이 은근히 괴롭히는 고요가 눈에 들어오고, 정말 배경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것 같은 우연이도 자신의 꿈을 계기로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두 사람. 고요는 자신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높고 가시 돋은 울타리를 세웠다면 우연은 마치 보호색 처럼 그 속에 파묻혀 숨는 쪽은 택했다. 단순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출발한 수현은 둘에 대해 더 궁금해져 우연히 우연이 보고 있던 SNS를 비밀계정을 통해 팔로우 하는 것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더 깊이 빠져든다.


고요의 바다.

달의 뒷면

달 탐사에서 달에 내리지 못했던 마이클 콜린스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 단어들은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너무나 잘 반영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 한켠이 시렸다. 쓰레기로 뒤덮인 고요의 책상을 남모르게 치워주는 우연과 수현은 고요을 멀리서 바라보는 마이클 콜린스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달의 궤도를 돌면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홀로 고요한 침묵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아가는.


정후는 또 자신의 방법대로 찬란히 빛났고 따돌림을 당하는 고요를 도왔지만, 늘 에너지를 분출하는 스스로 힘이 빠져나갈때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실수로 수현이 비밀계정으로 정후에게 댓글을 달면서 수현은 또 정후의 은밀하고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꼭 빛이 나야만 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성처럼.

꼭 기준에 맞아야지만 행성으로 인정 받는건 가슴아픈 일이다. 명왕성 처럼.


타인의 눈에 우연과 수현은 금성과 명왕성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에 대한 관심을 끝없이 쏟으며 스스로 별이라 생각하며 타인을 짓밟고 무시하려는 그 어떤 존재들 보다 따스하고 찬란했다.


그들이 점점 쌓아가는 유대감은 처음에는 호기심과 우연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진실되게 나누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10대 청소년들이라면 한번쯤 겪어 볼만한 일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친구를 사귀고 얼굴을 아는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남몰래 꺼내보는 일.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 애써 모른척, 쎈척 해보는 일.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는 일. 친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같이 마음아파해주는 일. 도와주고 싶은데 애써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였던 일.


그 모든 청소년의 마음은, 그들의 상관 관계는 다 값지고 소중하다.

한 반에 모두다 정후같거나 고요 같은 아이만 있다면 더 힘든 나날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조용히 그 에너지를 바라봐주고, 옆에서 마음을 써주는 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체육복을 빌려와서 건네주고 싶어하고, 괴롭힘 당한 흔적을 지워주고자 몰래 애쓰는 일. 그런건 마음이 편안해서 그만큼 여유가 있던 수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평범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수현의 마음을 늘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지아. 때로는 수현의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하고 한 발 나와서 싸워주기도 하는 멋진 친구가 있어서 수현은 그 긴 시간을 또 힘차게 걸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착한게 아니야. 그냥 내가 별거 없는 애라서,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 뿐이야.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고 내 몫을 덜어주고 가끔은 비겁해지기 까지 하는거." 라는 수현의 말.


"사람들은 그걸 공감과 양보, 배려라고 불러. 너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야. 나처럼 조금 삐딱하고 매사에 의심이 많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성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너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지는 거야. 너는 또 네가 만만해서라는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싶겠지만, 사람은 말이야, 따스한 햇볕을 쬐면 기분이 좋아지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으면 누워서 낮잠을 자고 싶어진다고. 그게 인간이야." 지아의 말.


책 장을 덮으며 마음이 먹먹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의 청소년 시절의 한 페이지에도 분명히 있었던 그런 친구들의 흔적.

지금의 내가 잘 자라 성인이 되었던 것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친구들 덕분이었다.


이 책을 읽고 문득 학급에 있는 많은 '수현'이들에게 고마워졌다. 세상에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 많은 그런 네가 더 많이 빛나고 더 따스한 행복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그걸 공감과 양보, 배려라고 불러. 너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야. 나처럼 조금 삐딱하고 매사에 의심이 많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성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너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지는 거야. 너는 또 네가 만만해서라는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싶겠지만, 사람은 말이야, 따스한 햇볕을 쬐면 기분이 좋아지고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으면 누워서 낮잠을 자고 싶어진다고. 그게 인간이야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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