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곁에 두는 마음 - 오늘 하루 빈틈을 채우는 시인의 세심한 기록
박성우 지음, 임진아 그림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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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 곁에 두는 마음.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의 곁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영혼이 맑은 분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지 않을까.' 였다. 박성우 시인을 뵌 적이 없지만 어쩐지 가깝게 지내고 싶은 분이었다. 그가 다른 시인이 보고 자란 들판을 걸어보고, 개울을 건너보고 싶어 갑작스레 훌쩍 떠난 것처럼 나도 소록도나 전주를 가면 어쩐지 그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순간순간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한 마음들을 곁에 두고 반짝이는 하루를 얻은 것 같았다.




한장 남짓한 페이지의 짧은 에피소드들도 참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 좋았지만, 특히 감탄했던 것은 그의 문장들이었다. 작가님이 신춘문예에 등단까지 하신 시인이니 그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비유가 참신하고 아름답다. <잘 먹고 잘 놀자>에는 이런 글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창틀에 걸터앉은 햇볕이 교실 안쪽으로 다리를 뻗고 있었다.' 앉아서 다리를 쭉 뻗는 햇볕이라니. 이 외에도 연보랏빛 가을볕을 연하게 쏟아내는 쑥부쟁이, 어둠을 돌돌 말아 새우잠을 자는 초승달, 샛노란 참외 같은 꾀꼬리 등등 그림 같은 문장들이 나온다. 그의 손이 스쳐간 문장 속 사물과 생물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의 에세이에는 특히 배려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아주 특별한 편지>에서는 어버이날 아침, 배달지가 묘소로 적힌 편지를 배달해 달라는 집배원의 이야기가 나온다. 간절한 마음을 읽은 집배원은 그 특별한 편지를 먼 마을의 봉분 앞까지 전달해준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박성우 작가는 혹여라도 이 이야기때문에 곤란해질 수도 있을 우체부가 걱정돼 페이지 하단에 정중한 부탁의 글을 넣었다. '아주 특별한 편지는 우체부의 해당 업무가 아닌 예외적이고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혹여라도 받는 사람이 실재하지 않는 주소로 우편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훈훈함에 훈훈함이 배가 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배려가 많이 느껴지는 이유가 이렇듯 곳곳에 있다.




마음은 어둑어둑 위태로운 곳에 두지 않고 높고 환한 곳에 두는 것. 닫힌 쪽에 두지 않고 밝고 넓게 열린 쪽에 두는 것. 조금은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더 아늑하고 조금은 더 아름다운 쪽에 두는 것. 두루미가 일순간 강물 위에 그려놓고 가는 둥근 물결처럼 멀리 번져나가게 하는 것. 그리하여 마음은 동그라미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져나가다가 기어이 그대와 나를 일렁이게 하는 것.



그의 말처럼 나도 마음을 항상 열어 언제나 봄처럼 만들고 싶다. 위로가 되어준 그의 마음을 곁에 두고 나도 누군가에게 또 전해줄 수 있도록 봄처럼 따뜻하고 밝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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