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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보지 말 것 - 미니어처 왕국 훔쳐보기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 그늘 / 2025년 6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이번 소설을 통해 ‘쓰네카와 고타로’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새로운 느낌의 추리물이라고 읽기 시작했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는 작가였던 만큼 책 안에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가 새로웠고, 분위기를 익히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꽤 흥미진진한 판타지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1부의 <상자 속 왕국>에서 조금 더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았는데, ‘사토 할아버지’가 상자속을 들어간 이후 급작스레 끝나는 이야기여서 당황스럽긴 했다. 그저 상자 속으로 걸어들어간 ‘에카게’와 아직 밖에 남아있는 ‘우치노’ 그리고 척 챕터 후반에 등장하는 ‘사토 할아버지’의 비밀스러운 대화 이야기인줄 알았지만, 이 소설은 단편집으로 그 뒤엔 다른 캐릭터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2부의 ‘스즈’와 ‘긴타’가 보여주는 ‘타임머신 은시계’는 앞선 이야기의 아쉬움을 바로 잊게 해준다. 물론 조금은 해소되지 않는 설정들이 있었지만 바로 이어지는 <가이다 사이치로의 아침>과 절묘하게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기도 한다. 이렇게 스토리는 물론 캐릭터가 바뀔 때마다 이야기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는데, 그래서 더 다른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한편 읽을수록 다른 세계관임에도 이야기가 얼기설기 엮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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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끈을 이용해 목을 졸라 죽이고는 머리나 팔다리는 훼손했다. 출몰 시간은 한밤중.
(중략)
물론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는 어디 사는 누가 한 짓인지 알고 있다. 범인은 철물점 남자다. 이 남자는 평소에 무척 상냥했다. 친구로 보이는 무리와 술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친척으로 보이는 어린이를 목말 태우기도 한다. 착하고 웃음이 많은 성격처럼 보였지만, 이건 꾸며낸 얼굴에 불과했다. 남다는 한밤중이 되면 검은 망토에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선다.
P. 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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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의 <통찰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예지몽>이라는 단편집 속 <예지몽>과 흐름이 비슷한데 예지력과 그것을 믿고 안믿는 사람의 경계를 재미나게 보여주고, 과연 미래에 대한 선택은 정해져 있는 것인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거기에 전체적으로 유쾌하지만 미래가 보이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이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여서 아주 좋았는데, 야마구치씨의 카레는 먹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번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끝없는 대륙, 불멸의 야차>였는데, 영화 <하이랜더>(High Lander, 미국, 러셀 멀케이 감독, 1990)와 비슷했는데, 세상이 변함에도 끊이없이 생과 멸을 반복한다는 것, 그 안에서 주인공만이 생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이야기여서 여운도 남고,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면 싶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과 잘 이어지는만큼 소설 전체적으로도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시간 접착제>나 <<내추럴로이드>는 유쾌한 소동극이면서, AI의 윤리성 같은 걸 떠올리게 해 재미있었다.
인상깊은 부분은?
판타지라고 규장했지만, 요정이나 신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능력치로 봤을 땐 그들과 다름이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물들이 보일 수 있는 능력 한계와 본인들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은 이야기들에 재미를 주는 조건인 듯 하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들 외에도, 공간을 멈추게 한다든지, 불사의 약이 주요 소재가 되긴 하지만, 운명론적으로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 끝을 기다려야 한다는 공통점은 이야기의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개별 타이틀을 가진 챕터들은 하나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이면서 독특하고 평범한 것 같은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런 연결점들에 대해 굳이 ‘평범한 것 같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결국엔 전혀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캐릭터 하나하나 설명하고 싶지만,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미래가 엇갈리는 지점, 아주 긴밀하게 엮이지는 않지만 경험자가 화자가 되고, 관찰자가 되면서 변화하는 이야기는 시간이나 장소 같은 배경이 중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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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300년 전에 영렬히 사랑했던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요.”
“눈물이 났지.”
리사라가 말했다.
“단풍이 든 메타세콰이아 길을, 그 여사자 새를 데리고 걷고 있았지. 300년 전에 숨을 거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 무척 행복해 보였어. 처음엔 유령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이 세계 자체가 유령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중략)
“어떻게 아세요? 유명한가 보조?”
하고 물었더니 “아니, 록 커뮤니티에는 말하는 동물이 흔한데, 이름은 모두 시그마라고 한다네.”라고 대답했다.”
P.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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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단편들이다보니 상세한 설정이 부족하고, 스토리가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들이 있다. 특히 <끝없는 대륙, 불멸의 야차>와 <통찰자>는 조금 더 이야기가 길었다면 더 좋았겠다. 주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라져서 기운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소개되지 않은 다른 단편에서는 그런 인물들도 잘 표현되었을거라 상상도 하고, 책에서 ‘이야기의 조각’들에서도 조금은 알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인다면?
1. 작가의 작품이 아직 한국에 번역된 게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작품들도 나오면 읽어보고 싶다.
2. 조금 투박한 판타지, 일정하지 않은 다양한 인물들의 교집합이 이뤄 만든 이야기가 읽어보고 싶다면 추천, 다양한 인물들이 쌓아가는 <반지의 제왕>같은 연대기적인 판타지물을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그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