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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시간 1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존 그리샴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 본다. 변호사였던 경험과 오랜 시간 미국 내 사법 시스템과 인종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해온 만큼 그의 소설은 언제나 진중하고 무겁다. 배경은 역시 ‘제이크 브리건스’에서 멀지 않은 도시, 시간 역시 이전 작 <타임 투 킬 Time To Kill>의 5년후로써 소설 안에서도 그 사건에 대해 자주 언급된다. 스토리가 어렵지는 않다. 이미 첫 챕터부터 사건은 벌어지고 50페이지쯤엔 사건의 상당부분이 언급된다.
오히려 8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어떻게 더 이야기가 더해질지 궁금해질 정도이다. 하지만 존 그리샴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읽어나가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선입견이었겠지만, 가정 폭력의 피해자임이 분명하나, 명백한 가해자로써 ‘드루’를 무조건 무죄임을 확신하는 마음이 들었던만큼, ‘조시’가 병원에서 ‘드루’의 행위에 대해 무조건 우호적으로 말하는 무지와 비슷한 듯 하다. 거기에 ‘드루’의 침묵히 이은 소극적인 행동이 답답하했는데, 나이에 비해 연약함을 드러내는 묘사여서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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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그럼. 제가 요청한 소년 법원으로의 이송은 기각하실 계획이군요.”
“당연하지. 내가 재판 관할권을 유히라 이유는 많고 많네, 제이크. 만일 소년이 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면 그 아이는 열여덟살이 되면 푸려나. 자넨 그게 공정하다고 보나?
“아뇨,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않죠. 전혀요.”
“좋아. 그룸 우린 같은 의견이군. 순회법원에서 관할권을 유지하고, 자넨 그 아이 변호사가 되는거야.”
“하지만 판사님. 전 이 사건 때문에 파산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중범죄 변호를 천 달러에 맡으라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판사님. 저도 돈을 벌어야죠.”
1권, P. 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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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존 그리샴의 작품을 법정 스릴러로 구분이 되는데, 근래 일본 작가의 법정물을 본 경험에 따라 드루의 살인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졌다면 그냥 스릴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누군가 감추고 뒤집히고 밝히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범죄가 초반에 모두 밝혀졌고,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었는지, 그들이 무엇을 했고, 어떻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묻는 이야기인만큼 ‘법정드라마’라고 부르는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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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부분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정하고, 다른 꾸밈없이 직설적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인물들과 독자가 한발짝 뒤에서 정의를 말하기 위해 논의하는 기분으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1권의 많은 부분은 이런 냉정한 처벌에 대한 관점은 그 당시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와 함께 인종 차별에 대한 부분도 여러차례 다루는데, 이 시절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식당에 잠시 들어간 경찰서장이 느낄 정도로까지 그려진다. 2권부터 시작되는 본격 법정 이야기부터는 이런 차이를 명확하게 나누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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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극적인 이야기가 나올거라는 사실을 제이크는 알고 있었다. 사건과 관련성 없는 이야기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누스는 아마 증언을 박지 않을 터였다. 변호팀은 그 문제를 두고 오래 토의했고 결국 영웅적인 이야기가 드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다이어가 스튜어트를 아주 거친 사람, 총기를 들면 무시무시한 사람, 두려워할 대상이 위험한 사람으로 묘사하게 두어야 했다. 그가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당했던 애인이나 그 자식들에게는 특히.
2권 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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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없는만큼 심각한 법정 장면 역시 조용하고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며, 복잡한 법적 절차와 양보할 수 없는 주장에 따른 공방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 ‘법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 ‘정의란 무조건 법의 엄격한 적용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인간적인 사정과 자비를 포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2권에 걸쳐 반복해서 던져진다. 거기에 사회 구조적인 문제,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지나친 무관심, 약한 사람들이벗어날 수 없는 굴레, 게다가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묵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하나하나 짚어주는 부분, 어떤 한 사람의 노력만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단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건 여전히 강한 존 그리샴의 한방이다.
다만, 존 그리샴의 작품이라는 강한 인장은 예전 작품들과 전개와 후반부가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느낌이 들어 조금 아쉽고, 빨리 사라진 악역 ‘스튜어트’와 그의 가족들이 너무 평면적으로 묘사된 것 역시 다음 작품에서 다른 인물들의 묘사가 다양해지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치우치지 않는 정의와 공정을, 누군가는 충분히 공감할 연민이자 이해를 떠올리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전작들과 이어지는 세계관, 캐릭터, 그리고 비슷한 시대상인게 당연하지만 조금 올드한 느낌이 없지 않다. 좋은 작품을 써내는 작가인만큼 최근 시점으로 그려진 소설이 나오면 좋겠다.
2. 현실을 배경으로 진지한 법의 적용에 대한 고민, 묵직한 법정 드라마를 읽고 싶다면 추천, 반전의 반전을 보여주는 스릴러나, 피튀기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소설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하빌리스'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