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주요 포인트는?

목차에서 떠오른 느낌은 이 책이 식물도감 같은 건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에세이라고 하기엔 소제목들이 단지 ‘풀’과 연관되어서 였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에세이’라는 장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다른 문학 장르, 특히 소설같은데서 얻을 수 없는 잔잔함은 역시 ‘진심’에서 나오는 ‘감성’이 에세이의 큰 장점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로 이번 책은 정말 과장하지 않는 ‘일상’이 주는 잔잔함이 좋은 것 같다. 

사람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상황과 결과를 떠올릴 수 있는 ‘클로버’에 대한 부분은 그런 의미에서 짧지만 재미있었다. 저자의 ‘결핵성 척추염’ 수술에서 잠시 무거운 뒷 이야기를 예상했다가 다 읽은 후엔 ‘아! 역시 이 부분은 <클로버>에 대한 부분이구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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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나의 오랜 소원이었는데, 마지막 잎새는 창 밖으로 보여요?’

음. 순수하다면 순수한 메세지 끝에 상대는 퇴원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자신의 책 출판 기념회에 초대하겠다면서. 

(중략)

만일 그 때 내가 그녀의 안부인사에 “오랜만입니다. 회사 근처 지나실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차 한잔해요” 식의 무난한 답을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그녀 또한, “네, 곧 제 책이 나올 예정인데 찾아 뵐게요.” 정도의 답으로 그쳤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그 때 나는 내 상황을 솔직히 전했고, 그녀의 출간 기념회에 초대가 됐으며, 회복 후 찾아간 그 자리에서 그녀의 책을 담당한 사람들과 동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첫 책을 쓰게 됐다.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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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없이 넘기는 많은 상황, 의미 없을 것 같은 인사 하나에도 어쩌면 생각지 못한 기회가 되기도 하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결정적인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면서 소설 같은 만들어진 이야기에서보다 더 좋은 결론으로 이어지는게 의미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원래 북미에서 난 것이지만 구한말에 들어와 전국으로 퍼지면서 나라를 망하게 할거라며 ‘개망초’로 불린 들꽃에 대한 이야기(이 전설(?)이 시골에서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인줄 알았다!)와 존재감에 관한 색다른 저자의 생각과 딸의 가방속에서 본 마른 낙엽뭉치를 그저 쓰레기처럼 생각했지만 우리가 보면서 감탄을 마지 않는 단풍잎과의 작은 차이, 그리고 그것을 담아 온 딸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는 건 순전히 엄마이기에 느끼는 감성에서였을 것이다. 역시 계절이 지나는 감성도 나이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또 마을에 적응해가는 낯선 이방인이 얼만큼 사람들과 어울려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김치’가 된단는 것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귀촌에서의 삶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역시 작가의 센스라면 작년 TV에서 방영한 ‘동백꽃 필 무렵’에서의 몇 장면을 함께 이야기에 녹인 건 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120% 공감할만한 정겨움이 더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서양민들레나 담쟁이 같은 이야기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질경이’에 관한 이야기가 좋았는데, 광고에서 보는 ‘여성 청결제’의 이미지가 아닌 풀로 살아가는 질경이는 또 다른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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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는 밟히면서 번식한다. 물에 닿으면 불어나는 젤리 같은 물질이 씨앗에 있다. 사람의 발이나, 자동차나 자전거 바퀴가 밟고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씨앗이 그 밑에 퍼져 나간다. 밟혀야 사는 풀이다. 학명도 ‘plantao adiatica’로 ‘발바닥으로 옮긴다’는 뜻. 그래서인지 꽃말도 발자취. 사람이 밟고 지나가는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나며 영토를 넓힌다. 독일에서는 사람 발길이 잦은 등산로를 따라 핀다고 해서 ‘길가의 파수꾼’이라고도 부른단다. 삶이 질경이 같기를 바란다. 밟히고 밟혀도 조금씩 나아가는 삶. 인간으로 존엄함의 경계를 사는 삶. 

후략)

P. 241 ~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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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특별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질경이의 이야기가 처음이기도 하지만 그런 풀을 바라보며 느꼈을 ‘’It’s getting better and better’라는 저자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성이 어떻게 나아갈지도 궁금해질 것 같아서였다. 질경이에 대한 뜻깊은 이야기보다도 이 책 속 다음 페이지로 넘기게 하는 건 오히려 잘 알지 못하는 풀과 꽃과 어우러지는 담담한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인 듯 하다. 

 


인상깊은 부분은?

이런 에세이를 읽다가 뜻깊은 때(간혼 아주 놀라는 때)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지도 못한 평범한 ‘명언’들과 마주할 때인 듯 하다. 물론 저자가 한 얘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 책을 통해 알게된다는 건 생소하지만 놀아운 경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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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적어줘. 페이지는 78. 루소는 어느 나이나 다 불행하다고 말했다. 그 나이에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연습장 위에 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 적은 아이가 다시 문제를 풀며 말했다. 

“엄마. 루소의 말하고는 반대인데, 사실 인생은 다 행복한거래. 중학생 때는 초등학생 때가 좋았다고 하고,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때가 좋았다고 하고. 어른이 되면 학창시절이 제일 좋았다고 하는게 인생이니까. 결국 알고 보면 행복한거래. 어느 책에서 읽었어.”

맞네. 정말 그렇네. 시험에 시달리던 학창시절도 취업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이십 대도, 성과에 승진에 작은 일에 뾰족하던 직장생활도 돌아보니 행복했던 지난 시절이었다.

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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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그 나이 때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중학생 때 거울을 볼 때마다 보이는 여드름이 가장 신경쓰이는 것처럼 고등학생은 또 다른 고민이 생길텐데 막상 대학생이 되면 그런 고민은 ‘고민도 축에도 못끼는 것’이 되는 감정이 그것일 텐데, 반대로 ‘그 때가 좋았다’는 기억의 반추가 어쩌면 힘든 시절을 잊었을 수도 있지만 그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당연한 생각이 다시 한번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개인의 생활에 기반한 에세이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진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저자의 아머지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아버지와의 먼 기억, 그리고 외국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가 짧지 않게 이어지면서, 그 중 저자의 마음이 잘 드러난 건 아버지의 죽음앞에서도 친구의 사고사보다, 친구 엄마의 장례식보다 울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가족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단지 피붙이여서가 아니라 함께 해온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주는 깊은 감정이 어우러나야 할텐데 적어도 그런 감정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에서 솔직함이 보였다. 그런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건 그리움보다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생경함은 아니었을까 한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많이 공감할 것 같다.


시트콤처럼 웃음을 주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 중에 저자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을 들른 어느 노인의 이야기가 계속 머무른다. 노인의 첫인상과 자기소개에 이어지는 저자의 생각의 변화가 마치 드라마처럼 변화무쌍했는데, 그 짧지 않은 시간의 결말은 정말 헛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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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나고 포털 검색 창에 그의 이름 석 자를 넣었다. 있었다. 그는 실제 박사였고 그 기업의 높은 사람이(었)었다. 흔한 이름임에도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었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지. 스크롤을 내리니 그 기업을 다룬 뉴스들이 가득했다.

(중략)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강아지를 왜 맡겨야 했는지, 부자라는 할아버지가 왜 차도 없이 힘들게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왔는지. 잠깐동안 내 마음이 몇 번이나 뒤집혔던건가?

P. 193 ~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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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 또는 후광효과. 저자는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표현했는데, 그 노인의 명함을 보는 순간 바뀌는 저자의 마음이 바뀌고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묘사된 걸 보자면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이겠다 싶기도 하다. 과연 이 노인은 누구였고 왜 저자는 이 노인을 검색해봤을까, 그리고 이 노인에 대한 반전이 무엇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듯 하다. 한적한 지방에서 작은 책방을 하며 주변을 산책하며 떠오른 마음이었던만큼, 풀길 따라 걷는 저자의 이미지를 상상하듯이 은은하게 읽어갈 수 있는 에세이였고, 그래서 그런지 확 칼날처럼 박히는 감정의 동요보다는 읽어나가면서 작은 공감을 부르는 책이었던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전체 페이지수가 늘어난 이유이긴 해도 중간중간 들어간 사진들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것 같다.


2. 저자는 알고 있을텐데 그 ‘노인’의 정체가 정말 궁금해진다. 


3. 자극적인 소설에 지치고 자연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감정선을 따라가고 싶다면 추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인간승리 드라마나 절절한 사모곡 같은 에세이를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흐름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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