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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그 섬에서
다이애나 마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8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책의 앞 부분은 기자로써 자잘하게 겪었던 자신의 생활,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조레스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 느낌이 일반적인 여행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조레스 제도의 섬들이 태생적으로 가진 환경, 포르투갈의 어느 섬 지역이고,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화산활동이라는 특성까지 다양한 일들과 동시에 소소하게 미국과 이어진 그 어떤 지점에 대한 것으로 평범하다. 하지만 저자가 그 섬에 가기를 결심하기까지 생각들과 기자로써 가진 정체성은 짧지만 직장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떠올리는 감정이라 책 중간중간 나오는 그에 대한 반추는 쉽게 이해가 갔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처음엔 이 책을 여행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살던 곳에서 저자가 옮겨진 것일 뿐 이는 그냥 에세이에 가깝다. 그리고 단순히 며칠동안 머무른 것이 다가 아니라 몇차례 재방문하고 미국에서의 생활도 짧게 나온다. 이는 단편적인 여행지의 느낌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다시 보고 되새기며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니 아조레스 제도를 '돌아본 것'에 끝난게 아니라는 걸 반증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에세이라고 크게 느껴지는 건 그 섬의 배경이나 환경보다는 그곳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기자출신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일까? 섬에 대해 인상적인 것들을 묘사하는 방식도 환상적이거나 아름답게 그리지 않고 담담하고 관조적으로 그리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피쿠 섬 꼭대기에는 높이 십자가가 달려 있는 흰 기념비가 있고 푸른색 보호망이 이런저런 기념물을 둘러싸고 있긴 했지만, 딱히 명소라고 할 만한 곳은 없었다. 피쿠 섬 꼭대기에는 깎아지른 듯한 해식 절벽이 있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물이 어찌나 맑은지 어떤 날에는 해수면에서부터 수 미터 아래 있는 형형색색의 바위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어떤 날에는 밝은 바다에 청록색 거품이 일기도 했다.
p. 137
그리고 다양한 동식물에 대한 것들도 직접 본 것을 최대한 지식을 끌어다 설명하기보다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의 입을 빌려 표현하는 게 많다. 기자로써 무언가를 밝히고 최대한 자세하게 전달했던 직업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하려 한게 아닐까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부분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은 과장된 섬의 풍광이 그려졌으면 할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조금은 섬에서 체감한 외부와의 문제 - EU, 투우와 소, 포르투갈과의 역사에 대한 것 - 들에 대해서는 역시 짧지만 조곤조곤하게 현실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이런게 기자의 시선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가적으로 미군의 주둔과 그 이후 섬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 같은 걸 담담하게 이야기 한 것 역시 기자가 말할 수 있는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였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섬을 비즈니스로만 볼 순 없는 만큼 자세히 읽지 않으면 놓칠 정도 찰나의 시선도 담겨있다.
상조르제 섬과 그라시오사 섬이 마치 욕주에서 깐닥거리는 장난감처럼 가까워 보였다 이런 식으로 섬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면, 아조레스 제도의 아홉 개 섬이 지도에 모두 표기되기까지 수백년이 걸렸다느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다는 윤기 흐르는 새파란 빛이었고, 가장자리에는 보랏빛이 감돌았다. 어느새 납빛 하늘은 물러가고 하얗고 푹신한 구름이 파란색 예쁜 하늘에 통통 박혀 있었다.
P. 232
이런 개인적인 감상과 더불어 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눈부신 풍광 뿐 아니라 가장 오래된 구둣방과 80~90대 노인들이 컴퓨터라는 걸 배우는 풍경, 주방장과의 대화, 그리고 는 역시 그 섬에서만 겪을 수 있는 잔잔한 이야기인 듯 하다.
아조레스 대이동의 긴 역사를 보면, 아조레스에 남거나 아조레스를 떠나는 가장 흔한 까닭은 사랑이었다(물론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심지어 제대마다 나라를 바꿔가며 산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방장에게 들은 적도 있다. 그 집안의 증조할머니가 아조레스계 미국인과 결혼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부부는 여름을 맞아 딸을 데리고 아조레스를 방문했고, 그 딸리 아조레스인과 사랑에 빠져 섬에 남았다. (중략) 그리고 이들 부부의 딸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아조레스인과 만나 결혼해 이제는 테르세이라 섬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P. 272
위와 같이 어떻게든 이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떠났지만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다짐처럼 섬에 오래도록 남아 마음이 이어지고, 그럼으로써 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섬에 대해 더 환상적으로 생각하게 했다.
인상깊은 부분은?
섬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도 정감가고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도 좋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섬을 한번만 간 건 아닌지라 중간중간 살던 곳(LA)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현실적이랄까 자조적이랄까 친구에게 얘기하는 것 같은 이야기가 양념같은 역할을 한다. 뒷부분에 월세 걱정에서는 역시 기자이며 작가라고는 해도 현실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살던 곳과 여러모로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겹쳐지기도 하는 기후나 환경까지도, 어쩌면 아조레스 제도란 곳을 가게 된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어릴 때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살다 보면, 위대한 아름다움을 배격으로 하는 삶에는 그만한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게 된다. 햇빛이 잘 드는 산맥, 풍요로운 계곡, 반짝거리는 해안 도시들은 화재, 홍수,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중략) 화산섬인 아조레스 제도 역시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자연재해를 겪어왔다. 아조레스 제도와 미국의 유대는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39
그리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자의 짧지만 설레는 사랑에 대한 부분도 좋았다. 나이 어린 연인들의 풋풋함은 아니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에 대한 건 읽으면서 잘 이어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 건, 이야기의 중심이 '아조레스 섬'인데 뜬금없는 미국인과의 애정사가 튀어 나온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섬에 대한 이야기속에 더 잘 녹아있는 섬 사람들에 대한 스토리처럼 이런 사랑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갈 틈이 있다는 걸 보여준 듯 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로만 시작과 끝을 맺었다면 이게 섬에 관한 에세이인지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대한 고백사 인지를 따지고 들려고 했을 수 있겠다.
그가 타야 할 비행기의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자 그가 내 손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자, 이거 받아."
그는 내게 작별의 입맞춤을 건네며 말했다.
"잘 지내, 마컴"
(중략)
"우리 앞길은 창창해."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어쩌면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르겠어. 캘리포니아에서든 아조레스에서든 곧 다시 만나자. 베이주Beijo" 그는 쓴 사람 이름에 잭이라고 썼다가 그 위에 선을 두 줄로 긋고 다시 무디라고 써놓았다.
(중략)
"이것 좀 봐" 내가 말했다. "'베이주'래. 무디가 외국어를 쓰다니. 그리고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대."
P. 368
여기서 베이주Beijo라는 단어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그 둘 사이가 궁금하다면 꼭 책을 읽어보시길.
아조레스 섬에 대한 이야기는 소소하고 투박했지만 읽고 나면 잔잔한 감흥이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포르투갈을 여행하기도 했는데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소박한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도 저자가 가장 전하고자 한 건 그런 걸 몸소 보여준 그곳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더, 사우다지 saudade라는 포르투갈어가 있는데 이 단어의 의미를 다란 나라말로 옮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향수병, 그리움, 삶, 또는 죽음을 그리는 의미라고 하는데 저자 역시 섬을 떠나 자신이 사는 곳에서 그것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는데 내가 겪지는 못했지만 만약 나 역시 이 섬을 방문한다면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다시 떠오른다.
덧붙인다면?
1. 에세이, 특히 어느 지역에서 겪는 일이어서 각 chapter가 길지 않고 타이틀도 내용과 잘 맞게 붙어서 짧게짧게 읽기 좋은 것 같다. 혹시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면 각 chapter구분해 나눠서 읽는 것도 방법이겠다.
2. 아조레스 제도의 섬이 그냥 '포르투칼 땅'이라고만 생각하기엔 의외로 이야기를 많이 품고 있다. 역사책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설명해조는 이야기만으로 아조레스에 대해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하므로 조금은 그런 부분도 떠올렸으면 좋겠다.
3. 도식화된 에세이에 피로감이 들고, 도시에서 벗어난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읽고 싶다면 추천, 지역적인 풍광에만 관심이 있고 쿡방같이 음식 찾아 떠나는 여행기를 바란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흐름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