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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여행과 관련된 책들을 최근 2년 사이 꽤 읽어왔던 것 같다. 시작은 ‘내가 그 나라에 가기 전’ 뭔가 알고 가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고 그래서 꽤나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며 그런 책들을 읽었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좀 책을 처음 열 때부터 기분이 달랐는데 ‘아마도 내가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선택을 했기 떄문일 것이다. 사실 북유럽은 내가 ‘신비로움’이라는 이미지가 짙게 깔려 있어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는 하지만 약 세가지 이유로 안 갈 것 같기 떄문이다.
첫째 너무 멀고, 둘째 내가 견뎌내기엔 너무 추우며, 셋째 의외로 우리 나라 사람들의 방문에 따른 북유럽에 대한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쓰여진 책은 나도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러오기에 더 빨리, 관심을 갖고 읽을 수 있었다.
각 chapter는 크게 각 나라별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정형을 따라 구분하지는 않았다. 굳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나 대표적인 곳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부분이 다른 책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어쩌면 전문 작가가 아니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내가 보듯이 작은 경치를 훑어가는 이동은 참 좋았던 것 같다. 어떤 큰 이유가 아니라 북유럽의 어떤 나라를 처음 여행지로 택하게 된 이유나 기차를 이용할 때의 난감함과 새로움, 난생 처음보는 지역의 명물 헤스버거를 찾아 가는 길 까지 그냥 되는대로 쓴, 초심자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북유럽에 여러 나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핀란드에 대한 호기심이가장 먼저 생긴 이유는 순전히 <카모메 식당>이라는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주된 내용은…(중략)…영화 속 풍경을 상상하면 지금도 세 여자의 손으로 두런두런 빚어내는 오니기리의 온기와 알싸한 시나몬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P. 39
책이 전체적으로 너무 아마추어가 쓴 느낌일 것 같다면 그렇지만은 않다. 여행지로 가는 방법에 대한 것도 먼 미래엔 바뀌어서 의미 없을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다양한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해서 guidance로서도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혹시라도 북유럽을 여행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찾아볼만한 부분들이 많다. 모든 사람이 생각하다시피 그런 추운 지역의 교통면이란 횟수도 적지만 적시에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게 중점일텐데 그런 면에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상세하다.
무엇이든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이날만큼은 이른 시간부터 유난을 떨어야 했다. 오따에서 트롤퉁가까지의 트레킹은 넉넉잡아 10시간이 소요된다. 오따 시내에서 트레킹 출발점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후, 출발지에서 트롤퉁가까지 돌산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 길이 왕복 22킬로미터에 이른다. 때문에 노르웨이 관광청에서는 오전 10시 출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이킹을 하는 동안 느긋하게 풍경을 둘러보며 여유가 있다면 그림도 그려 올 생각이기 때문에 발걸음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P. 264
위는 노르웨이에서의 여행길에 대한 것인데 기차나 배(페리)를 타는 것에 대해서도 잘 표현되어 있어 저자의 움직임이 잘 느껴지는 듯 했다.
이외에도 관광지의 밝은 모습 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의 적막함이나 건물들이 주는 투박함, 생각으로만 그려보던 무민월드의 조금은 소박한 모습들에 대해선 너무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이었다. 모든 여행이 좋을 수만은 없지만 TV에서 다뤄지듯이 모든 것이 눈부시고 모든 사람이 친절한, 눈 앞의 모든 풍광이 기적처럼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은 것은 그 나라들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듯 할 정도였는데 다음에 얘기 할 이 책의 특징인 손그림(드로잉)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었다.
인상깊은 부분은?
이 책이 보여주는 풍경은 글에서 표현되는 많은 묘사 뿐 아니라 손그림(드로잉)에 있다고 하겠다. 사진보다 상세하진 않지만 직접 그린 그림에서 주는 아날로그 감성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앞에서 이야기한 기적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아닌 가능한 현실적인 그림이 나오고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는 단계에서 진심이 보여진게 아닐까 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인어공주 조각상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어공주 조각상은 1913년에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다.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 Edvard Eriksen이 당대의 스타 프리마돈나였던 엘렌 프라이스Ellen Price를 모델로 하여 청동으로 제작하였는데, 엘렌은 자신의 벗은 신체가 노출되는 것을 꺼여 얼굴을 제외한 동상의 몸체는 조각가 에릭슨의 아내인 엘리네 에릭슨Eline Eriksen을 모티브로 제작하였다.
이 동상은 잔인하게도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다. 몸체에 비키니가 그려지거나 때로는 페인드 세례를 맞기도 했고, 팔이 절단되거나 머리가 잘린 채 도난당한 적도 수차례였다. 심지어 2003년에는 폭파 당해 동상이 바다로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굴하지 않고 인어공주를 매번 부활시켰다.
P. 306
이런 이야기와 함께 그려진 그림은 사실이 아니라 동화의 한 장면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노르웨이의 트롤퉁가이다. 때마침 며칠 전 TV에서 이곳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곳까지 트레킹으로 4시간, 이 트롤퉁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게 2시간, 이런 사진을 찍기 위해 총 6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냥 사진으로 보는 느낌보다는 상상속의 이미지처럼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같다는 느낌이다. 역시 여행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저자가 여기까지 이르는 길에 대한 단상과 그림들을 보며 나의 그 어느 시점의 삶에 한번쯤은 저곳에 닿아있기를 그려보기도 할만큼 좋았다.
다만 책 전체적으로는 저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만큼 한 나라에 대해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한정적인 계절이 담긴 점은 여행경험을 온전히 느끼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 있는 수많은 그림들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손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림을 찬찬히 보면 절대 아마추어가 그냥 그릴만한 그림은 아니어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덧붙인다면?
1. 어렸을 때 배우는 ‘기행문’에 잘 맞는 책이다. 거기에 조금은 감성적은 부분들이 있는데 발트해를 지나는 부분에 ‘거대한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갔다.’로 시작하는 페이지는 시처럼(시인가?) 짧고 간결하게 썼는데 감성적이어서 좋았다.
2. 덴마크에 대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짧다. 이전에 ‘교육’이나 ‘직업’ 관련된 다큐에서 다뤄진 나라여서 관심이 갔는데 조금 아쉽다.
3. 북유럽의 나라들에 관심이 있거나 짧은 시간 누군가가 들려주는 여행기를 읽고 싶다면 추천, 소설이나 TV에서 보던 드라마틱한 도시의 모습이나 가이드북같은 detail함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상상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