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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평점 :
내용은?
가족들에게 '빅 엔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주인공 미겔. 그는 인생의 마지막이 될 자신의 생일을 성대하게 준비하는 동안 100세가 된 어머니의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갑자기 든 생각이 자신의 생일파틴를 어머니의 장례식과 함께하는 것. 그러면서 불러모은,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거나 소식이 닿지 않았던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끌벅적한 생일파티를 맞이한다.
주요 포인트는?
줄거리만 보면 패밀리 홈 코미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읽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정확히는 ‘빅 엔젤’이라 불린 주인공과 그 가족의 ‘미국 정착기와 지금 그들이 맞이하는 우왕좌왕 생존기’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단지 한 집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보다는 확장되다보니 역시나 등장인물도 많고 관계도 복잡하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만한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이복형제의 관계라든가, 친척 간의 과한 애정 같은 게 그런 것들이다. 이해가 안간다는 거지 그게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아무튼 이런 건 그저 소설이니까-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가 ‘그들이 겪었던 미국 정착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 때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힘든 일이 있어”라는 건데 어느 세대나 그들만이 가진 고민과 여러움이 있다는게 전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살아남았고 이정도면 잘 살아내고 있다라는 마음 정도랄까. 저자도 여러차례 다른 지면을 통해 밝힌 바 이것은 자신의 과거와 가족 이야기에 기본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민자의 삶에 대한 담담한 시선이 함께 한다.
빅 엔젤은 직업 자체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직업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는 일터에 알록달록한 탈라베라 머그잔을 가져왔다. 단에는 두 단어가 쓰여 있었다. ‘엘 헤페 EL JEFE(윗사람)’. 직원들은 모두 그 뜻을 알아차렸다. 이 멕시코 아저씨가 자기를 상사라고 생가하고 있군. 물론 그들은 ‘헤페’가 아버지를 뜻하는 은어라는 건 알아차맂 못했다.
P. 16
위 이야기는 작가의 실제(정확히는 작가의 형) 경험담이라고 하니 그들이 겪었던 일들과 그에 대한 기억이 때로는 안타깝게, 떄로는 웃기게 전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갖고자 했던 여유를 다시 새기려는 듯 소설 시작은 엄마의 장례식에 늦은 죽음을 코앞에 둔 아들의 늦잠으로 시작한다. 상황이 말도 안되겠지만 주인공이 바라보는 삶과 죽음은 그저 이 세상에 있는 것과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서서히 다른 사람들에게로 관심이 가게 한다.
얼마전까지 TV드라마로 우리에게 지난 시절 기억으로 되살려 재미와 감동을 주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장대한 서사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에서처럼 중요한 역사 한페이지에 등장할만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여기엔 미국인(정확히는 시민권자)으로써 엄청나게 성공한 누가 있지도 않고, 유명인이 된 친척도 없으며, ‘빅 엔젤’조차 거물 정치인이나 지역 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과거의 회상과 현재를 오고 가며 할아버지가 무릎에 손자를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담담하게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빠는 술꾼들이 바텐더에게 그의 몫으로 지불한 술값을 나눠 가졌다.
그게 아빠가 밤에 하는 부업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낮동안에는 하루 종일 볼링장을 청소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아빠는 소변기안에 세제 블록을 채우고, 여자 화장실에 있는 아얀색 쓰레기통을 비웠다. 그리고 밤에 되면 말쑥한 크림색 벨벳 재킷을 입고 술에 취한 믹국인들을 위해 나음의 연예인 생활을 하는 것 이었다.
(중략)
그것이 리틀 엔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P. 61
거주를 옮겨 살아간다고 해도 완벽한 그 나라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영원히 고향을 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인처럼 사는 멕시코인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들이 겪었던 기억이 더 차별적이었을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더 다행스러웠던 부분도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이 주고 받는 추억속엔 거의 또 다른 이면이 있기도 하다.
뭔가 좋은 걸 사야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라 글로리오사를 위한 물건들을 샀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녀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래서 남은 음식은 자기들만 먹고 그녀에겐 주지 않는 일이 쉬웠다. 글로리오사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하니까. 그게 가족의 생존전략이라고, 그들은 글로리오사에게 말했다. 그러니 날씬해지라고.
P. 352
요즘 표현으로는 웃프다고 할까. 자세히 쓰긴 긴내용이지만 앞서 글로리오사에 대해선 동네 최고 미인으로써 대할 수 있는 극찬이 가득하지만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행성에 따른 것이었다는 내용은 결국 웃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인상깊은 부분은?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있다 보니 소설의 앞 부부는 대사보다는 상황 묘사와 인물 소개가 많다. 그러다보니 문장도 길고 속도가 잘 나지는 않지만, 중간 이후부터는 묘사도 짧고, 인물 간 대화도 많아진다. 앞 부분에서 지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서사보다는 말싸움이나 극적인 부분을 말로 주고 받다 하다보니 ‘어? 이게 누가 한 말이지?”라고 의문스러울 때가 있긴 하다.
또, ‘빅 엔젤’은 우리나라의 70~80년대 아버지들처럼 강한 사람, 아니 강해 보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 지점에서는 그런 아버지를 겪은 우리들도 공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그런 느낌에 공감한다는 거지, 사건과 그에 대한 모든 대응방법에 공감한다는 건 아니다.
아버지의 유령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그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십년 전에 아버지가 뱉은 말들. 그는 앞으로 가족의 기억에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전설이 될 것이다. 그는 일어섰다. 그는 리틀엔젤에게 손을 뻗었다.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만히 앉혀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너 지금 뭐하자는거냐?”
그는 총잡이에게 물었다.
총구를 당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건만, 총잡이는 총을 쏘는 대신 그를 흘깃 바라보고 말했다.
“앉아 노인네.”
P. 479 ~ 480
바로 이어지는 대사가 멋지지만 욕설이라서 옮기지 않는다. 상황을 전체 알기는 어렵지만 가족을 위한 빅 엔젤의 멋진 모습이니 책을 읽으면 조금은 시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의 미국의 이민자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 곳곳에 있다. ‘그 시절엔…’이라고 얘기하는 건 거의 지금과 다른 걸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가 생각했던 바를 이렇게 직접 표현하는구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에 한참 왔다갔다 하다보면 배경이 헷갈릴 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최근에 쓰여진 소설이다. 중간이 ‘아이 엠 그루트’라는 영화 대사가 잠시 나오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시간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에 너무 신경쓰다 보니 소설 자체를 과거에 썼다라는 생각도 드니 이 점은 참고해야겠다. 그리고 생각보다 선정적이다. 대놓고 성인소설이라 하기엔 수위가 약하고, 일반 소설보다는 간간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묘사나, 남녀간의 성적 접촉, 그리고 중년이 지난 사람들의 성적인 농담같은 게 자주 나온다.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지만 “갑자기?!”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 그 사람들의 분위기구나-라고 생각하고 유연하게 넘어가시길.
가족 소설인만큼 어느 정도 화해와 공감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군데군데 잘 표현이 되어 있다.
“얘야.”
“아빠, 왜요?”
“날 용서해주겠니?”
“뭘요?”
그는 허공에 손을 저었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뭐가요, 아빠?”
“다 미안해.”
그는 눈을 뜨고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미니는 눈이 따갑지 않은 베이비 샴푸를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
빅 엔젤은 훌쩍였다. 물론 딱 한 번뿐이었다. 미니는 눈을 빠르게 깜박이고는 손바닥에 샴푸를 짰다.
“괜찮아요. 모두 다 괜찮다고요.”
그는 눈을 감고 딸의 손에 머리카락을 맡겼다.
P. 309
사실 이 부분은 소설 앞 부분에 보여준 빅 엔젤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기억하는 모습, 그리고 부모님이 우리 곁에서 마지막에 기억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지 않을까 해서 옮겨본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족 일원들이 부딪히며, 오해하고 서로 감정이 상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오히려 정감이 가는데,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거나 반전의 주인공이 없는 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작가가 생각하 이민자의 삶이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마지막의 잔잔함이 이해가 가는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책 마지막에 가족 구성도가 있다. 이게 앞부분에 있는게 더 낫지 않을까를 한참 생각했는데, 굳이 맨 뒤로 보낸 건 앞서 나오는 인물들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일부러 맨뒤로 보낸건가 싶기도 하다.
2. 한 사람과 그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의 미국 생존기로써 이국적인 분위기의 서사가 궁금하다면 추천, 멕시코는 역시 마약과 갱의 나라이니 마약와 살인이 끝도 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범죄소설을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다산북스(다산책방)'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