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과학자를 체험하기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수학자와 과학자들에 관한 논픽션소설이다. 하나같이 현대 과학의 역사로 남은 위대한 인물들을 다루지만, 평소 과학과 거리가 먼 독자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이 실제 다룬 개념의 발전 과정을 홀린 듯 쫓아가게 될 테니.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호기심과 직관 때문일 것이다. 독자는 과학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광기 어린 호기심과 그들의 행위로 인해 아주 큰일이 벌어지리라는 직관을 애써 짓누르며 독서를 이어가야 한다. 사실 소설집에 수록된 첫 단편 「프러시안 블루」만 읽어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파괴적인 결말을. 그럼에도 끝까지 독서를 멈추지 않는 자신을 보며 숨은 과학자적 본성까지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이 소설집이 주는 스산한 체험 중 하나다. 딱딱한 과학적 지식 사이사이에 분명하면서도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채워 넣어준 작가의 솜씨 덕분이다.
이 음산한 이야기는 앞과 같은 속도와 톤으로 마지막에 도달한다. 반드시 말해져야 한다는 듯이 꼿꼿하게 간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단편 「밤의 정원사」에서는 알 수 없는 죽음들이 일상적으로 계속되는데, 명확한 인과로 설명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우연적으로, 확률적으로, 그것이 인간의 어떤 발명과 이해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 캄캄하고 섬뜩한 정원에서 나온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과학자의 불행은 자신이 하는 일의 시작과 끝은 물론 그 파워를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온다. 더 큰 불행은 그 힘이 가해지는 대상이 이 넓은 세상, 그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또 새끼를 낳는 기이한 동물처럼 과학은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마저 낳고 또 낳는다. 결국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길 멈추기로 결정하는 순간은 아주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난 후일까. 우리는 그 순간을 앞당길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제 남은 건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이 정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