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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범인은 절름발이래”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이 들까? 본인의 입으로 영화를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이 시대 최고의 반전영화를 눈앞에 그릴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영화 좀 좋아합니다 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영화 좀 좋아한다는 내 생각엔 말이다. 그 정도로 유주얼 서스펙트는 최고의 반전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잇는 최고의 반전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누가 뭐래도 <식스센스>를 꼽을 것이다. 그런데 반전영화의 즐거움은 딱! 거기까지 였다. <식스센스>이후 최고의 반전영화 혹은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최고의 반전영화 등등의 자신감 넘치는 광고문구를 그대로 믿고 관람한 수많은 영화들은 나에게 실망감만 안겨줬고, 결국 무엇 이후 최고의 혹은 무엇을 능가하는 최고의 는 내게 무엇 무엇의 아류 라는 결론만 안겨줬다. 그 때문일까? 나는 무엇 이후 최고의 라는 광고문구의 영화를 보러 갈 때에는 언젠가부터 기대를 집에 두고 갔다.
요즘 극장가에 자주 등장하는 영화 소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구멸망에 관한 이야기 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생물, 동물 식물들 심지어 사랑까지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처음과 끝이 존재한다. 물론 이때 누군가 손을 들고 “저기 불교에 윤회사상은 어쩌시려고?” 라고 묻는다면 딱히 나도 대답할 거리가 없으니 들려는 손은 다시 내려주시길 바란다. 어쨌거나 우리 인간들은 영화를 통해 지구도 언젠가 죽는다는 이론과 상상력을 펼쳐내고 있다. 영화를 통해 만나는 지구 멸망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첫째는 외계인의 침공 및 행성충돌에 의한 것이며, 두 번째는 자연재해 혹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다. 이런 류의 영화를 처음 접했던 것은 <아마겟돈> 이었던 거 같다. 뭐 내용은 간단히 지구와 충돌할 행성을 폭파시켜 지구를 구하는 내용이다. 그 후 비슷한 영화인<인디펜던스데이>라는 영화를 뒤늦게야 봤고, 이런 류의 지구멸망의 아류 작들이 지루해 질 즈음 투머로우와 미스트, 28일 후와 같은 자연재해 혹은 바이러스의 의한 지구멸망의 영화들이 등장했다. 그 또한 비슷비슷 거기서 거기가 될 즈음 똑똑한 우리 영화 관계자들은 남겨진 생존자에 관한 이야기로 중심을 옮겨 가는 기특함을 보여줬다. 지구 최후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윌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는 상당히 신선했다. 뭐 사실 신선했다고 말 했을 뿐 대단히 재미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 재미는 사실 없었다. 지구 최후의 모습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일까? 그냥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대단한 스토리 구성과 스릴러 그리고 서스펜스를 자랑했던 그런데 대체 왜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지 알 수 없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인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를 꼭 읽어보라며 나에게 권유 했다. 분명 무지한 나로써는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을 가진 건지 알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의 원작자라고 하니 마다할 이유 없이 좋다 라며 <더 로드>를 건네 받았다.
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P7- 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남자는 아들인 아이와 함께 숲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아마도 초록과 푸름을 잃은 죽은 지구의 생존자들 인 듯싶다. 그들은 황폐하고 희미한 거리를 거늘며 먹을 거리를 찾는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짐을 풀고 잠을 청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아들은 아빠가 아빠는 아들이 죽어 있지는 않을까? 서로를 찾는다. 어쩌면 혼자 남게 될 것이 두려워 자신을 위해 서로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이들은 남쪽으로 하염없이 걷는다. 그들은 그렇게 더 로드를 끝도 없이 걷는다.
그렇게 한 35페이쯤 읽었을까? 그들은 계속해서 남쪽을 향해 더 로드를 걸을 뿐이며, 누군가가 버린 짐에서 혹은 폐허에서 음식이 있지는 않을까? 지루하게 찾을 뿐이며, 또다시 아침이면 아들은 아빠가 아빠는 아들이 죽어 있지는 않을까? 서로의 이름을 불러댈 뿐이었다. 윽 이거 대단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나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라는 한숨이 났다. 그리고 내용도 뭐 주인공만 다르지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있자나 더 로드 말이야~ 이거 나는 전설이다 같지 않아?”라고 물으니 남자친구가 “응” 이란다. 그래 뭐 나도 조금 읽어봤으니 물을 것도 없이 대답은 “응” 이였다. 그런데 나는 전설이다 는 처음이니 신선하기라도 했지. 이건 뭐 신선하지도 않다. <더 로드>는 나에게 나는 전설이다의 아류작처럼 느껴졌다. <나는 전설이다>보다 <더 로드>를 먼저 읽었더라면 <더 로드>가 나에게 이런 수모를 겪지는 않았을 텐데 라고 아주 잠시 생각하다 나는 다시 남자친구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거 언제까지 이래? 아니 지금 계속 그냥 길만 걷고 있어. 먹을 거 찾고 그냥 계속 길만 걷고 있다니까 글쎄, 이거 언제까지 이래? 금방 재미 있어지는 거야?” 라고 묻자 남자친구가 “그거 그냥 끝까지 그러는데?” 라고 전혀 재미 없지 않다는 듯 아주 흔들림 없이 균형 잡힌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대단한 작품인데 내가 너무 무식해서 이해를 못하나 싶어 그냥 거기서 대화의 주제를 돌려 버렸다. 그리곤 나는 이 책을 덮었다. 왜? 지루하니까.
그리고 한 6개월만인가? 무언가 읽을거리가 떨어져 책장을 살피는데 읽다 만 <더 로드>가 나를 또렷이 쳐다 보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려 했는데 어느새 녀석이 헛기침을 하는 것 같다. 이번에 꺼내 들면 정말 끝까지 읽어야 될 것 같아 <더 로드>를 꺼내 들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대단한 작품이라 자나? 뭔가 있겠지? 라는 생각에 나는 결국 35페이지에 책갈피가 꽂힌 <더 로드>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래 그때는 어느 내용인지 전혀 몰랐고 이제는 조금 알 자나 일단 35페이지 까지는 읽었으니 거기까지는 쉽게 가겠지 그리고 뭐 전혀 길만 걷지는 않을 거 아냐? 라는 생각과 무엇보다 대단한 작품이라 자나! 상도 탄 작품인데 내가 몰라 보면 안 되는 것 아냐 라는 생각으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35페이지는 이제 지났다. 그들은 계속 걷고 또 걷는다. 또 먹을 것을 찾고 잠잘 곳을 찾고, 아들은 아빠가 아빠는 아들이 죽어 있지는 않을까? 서로를 걱정한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한쪽 발을 질질 끌며 그들의 앞을 걸어가고 있다. 와 이제 새로운 인물 등장이다. 이제 좀 얘기가 진척이 있으려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하던 아이와는 다르게 남자는 이를 말린다. 그리고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자고 만 할 뿐이다. 도대체 왜?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남자, 그리고 아들, 둘만 생활하기는 지루할 텐데 왜 말을 안거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람은 다리가 불편한데 왜 도와주지 않냐고?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다.
우리가 도와줄 수 없나요? 아빠? 못해 못 도와줘. 소년은 계속 남자의 외투를 잡아 끌었다. 아빠? 그만해라. 우리가 도와줄 수 없나요? 아빠? 못해. 우린 못 도와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P60-
한쪽 발을 질질 끌며 걷던 남자는 이내 쓰러졌다. 죽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아이는 어느새 울고 있다.
그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거야. 우리가 가진 걸 나눠줄 수는 없어. 그럼 우리도 죽어-P61-
나는 그제서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여행이 왜 이렇게 지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코맥 매카시의 이 책 <더 로드>가 왜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 받으며 2007년 퓰리처상, 2006년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이라는 어쨌거나 권위 있는 이 상을 수상했는지도 말이다. 이 책이 재미없었던 이유는 단연 단순한 인물구조를 들 수 있다. 아빠 그리고 아이 가끔 만나지만 숨어서 지켜봐야 하는 몇 명의 인간들, 더군다나 장소 또한 그곳이 그곳이다. 길 그리고 또 길 가끔은 폐허를 뒤지고 숲을 뒤지며 낡아빠진 기차를 만나 뒤지는 새로운 곳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제약적인 공간. 그런데 이 지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책의 주제에 들어있다. 이미 지구는 죽었으니까.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까 한쪽 발을 질질 끌며 걷던 행인을 차마 도와줄 수 없었던 건 남자의 그럼 우리도 죽어 가 모든 이유를 설명해 준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어떤 영화를 볼까? 헬스 클럽을 다닐까? 어떤 옷이 나에게 어울릴까? 의 생각은 이들에게 필요 없다. 그저 내일은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가지고 있던 먹을 것을 뺏기면 어떡할까? 얼마나 안 먹고 버틸 수 있을까? 그들의 생각은 단순해 질 수 밖에 없다. 먹고 사는 것 그저 숨을 붙이고 있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이며 그 들이 해야 할 모든 것이다. 이 책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어둡다. 그리고 이 책은 무언가 흥미로운 사건을 내세워 가독성을 높이거나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의 긴장감을 준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정말 날 것 그대로의 방법으로 지구 최후의 순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지루한 결정적인 이유는 너무나 먼 미래이거나 나에게는 닥칠 거 같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전설이다>가 지루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음을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그들의 똑 같은 패턴의 긴 하루가 지루했던 이유를 7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6개월 전 30페이지 정도만 더 읽었더라면 그때 읽기를 멈추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때의 지루함이 나에게 깨달음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머지 300페이지를 향해 가는 동안 나는 직접 그들이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지루함이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읽어 보려고 했다.
나는 남자가 타인을 경계하는 이유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지구, 그곳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식물도 나무도 어떤 동물도, 즉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인간들을 먹는다. 그곳엔 인간 사냥꾼들이 존재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누군가 나를 먹으려고 나를 잡으려 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먹이로 바라보는 그곳에서 어떻게 인간을 믿을 수 있을까? TV다큐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약육강식의 세계와 다를 것이 없다.
여기 토끼 한 마리가 있다. 토끼 뒤에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진다. 토끼를 잡아 먹으려는 육식동물 호랑이다. 토끼는 살기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려야 한다. 하지만 결국 토끼는 잡아 먹히고 만다. 그런데 토끼 뒤에 나타난 무언가의 검은 그림자가 운 좋게 초식동물인 코끼리 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토끼는 코끼리의 먹이감이 되지 않는다. 남자와 아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인기척이 들리면 그들이 육식인간인지 초식인간인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즉 인간을 먹는 사람인지, 인간은 먹지 않는 사람인지를 구분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들이 초식인간이라 한들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풀도 말라 죽어 버린 지구에서 초식동물은 더 이상 초식동물이 아니며 초식인간은 더 이상 초식인간이 아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살아야 한다.
아이는 남자에게 말한다. 죽고 싶다고 차라리 엄마 곁으로 가고 싶다고. 남자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의연한 척 하지만 죽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고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을 것이다. 아~ 정말 인류가 저렇게 끝나버린다면 내가 그들처럼 인류의 최후의 생존자가 된다면, 나는 과연 살고 싶을까?
지구는 어쩌다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까? 의 원인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그들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처럼 지구의 최후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부터 그런 생활을 시작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아이는 푸른 하늘과 바다와 산 그리고 생기 넘치는 도시에 대한 경험은 해보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갑자기 아름다운 행성 지구에 사는 것이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그리고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무수한 영화들이 <식스센스>의 반전에 아류였듯이 이 책은 나에게 영화 <나는 전설 이다>의 아류에 불과 했다. 그런데 깊이 들어갈수록 그리고 나와 주인공이 동일시 될수록 나는 <더 로드>만의 다름을 발견했고, 뼈속깊이 흡수해 인류최후에 대한 좌절과 묵시론적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 누가 먼저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먼저냐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가가 중요 한 것이다. <더 로드>는 나에게 작품이 아니다. 두려움 그 자체 이다. 여전히 혼란스럽다. 10년 후가 될지 1년 후가 될지 어쩌면 바로 10분 후가 될지 모르는 지구의 죽음 앞에 우리는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매 순간을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아~ 코맥 매카시는 70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했고, 지구는 지켜야 하는 것이며, 이 책은 나의 보잘것없음을 알게 해 줬고, 6개월 전 포기한 책을 완독 했기에 기뻐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대단한 책을 몰라보지 않은 내가 자랑스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무섭고 두렵다.